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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비 Dec 15. 2023

40살에 석사.

주경야독, 샐러던트의 삶에 뛰어들다.

2022년도 5월, 11년 째 다니던 회사에 병가 휴직을 냈다. 사직서 못지 않게 오랜시간 품고 있기도 했지만, 휴직을 결정하고 보고하는덴 다소 충동적이었다. 건강검진에서 2년 연속 불안, 우울증세의 수치가 높게 나왔고 근무하다 말고 사내 상담센터에 급하게 전화해서 1시간 동안 상담받으며 울다 나온 적도 있었다. 쏟아내고 울고 나니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미뤄두었던 정신건강은 꾸준히 나빠지고 있던 거였다. 

연차와 10년 근속 휴가까지 다 붙이고 나니 약 7개월 가량 쉬었다. 


회사를 쉬면 여행도 다니고 바쁘게 지낼 줄 알았다. 근데 생각보다 아무 의욕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난 늘 하고 싶은게 많고 하고 싶은거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막상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게 스스로도 꽤 충격이었다. 

거의 한 달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보냈던 것 같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또 소파에 앉아 유투브를 보고 지나간 드라마를 정주행하면 5시 정도가 됐는데, 그 때 아차! 하면서 허투루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며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물론, 지나고 나니 그 시간도 필요했던 것이 맞았다.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할 의지도 생기지 않았던 말 그대로 번아웃 상태였기 때문에 채워질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한 달 정도 지나니 몸을 움직이고 싶어졌고, 다시 운동을 등록했다. 오랫동안 해왔던 크로스핏인데 번아웃과 함께 운태기도 와서 슬렁슬렁하고 있던 터였다. 크로스핏은 자기 성취감에 하는 운동이라 #오운완 정도로는 만족되지 않는데, 쉬는 동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박스에서 기거했더니 멈춰있던 퍼포먼스가 조금씩 향상되고 안 되던 동작에 도전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운동으로 되찾은 활력은 다른 것도 하고 싶게 만들었다. 


평일 낮 시간에, 지역 문화센터에서 하는 강의들은 언감생심이었지만, 평일 낮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지금 구청문화센터, 주민센터 홈페이지를 처음으로 들어가보니 평일 낮 시간의 강좌들이 좌르르 펼쳐졌다. 물론 수강신청 기간이 있고, 인기 강좌는 이미 마감이라 바로 수강할 순 없었지만, 다음 달 수강신청일을 체크해두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설렘 +1이 생겨버렸다. 뭔갈 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 자체가 큰 변화였다. 

동네 주민센터에서 3주 과정 민화그리기 수업이 있어 신청했다. 민화라니-

그림을 배우러 다닌 적은 없지만,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하고 잘 그리고 싶어한다. 사회초년생일 땐 취미수집가를 자처하며 홍대로 일러스트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었다. 그래봐야 연필드로잉, 수채화, 아크릴, 유화에 관심있었지 민화를 그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튼 5주간 토요일 아침에 모란도를 그리러 다녔다. 20대 친구부터 80대 할머니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민화는 인내심이 많이 필요했다. 한번에 색을 올린다고 진하게 시작하면 민화 고유의 매력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옅에 여러번 색을 쌓아올려야 한다. 성격 급한 나는 몇번 실수를 거듭한 끝에 아주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5주간의 모란도 작품이 끝날즈음, 민화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근처에 너무 전통스럽지 않으면서 (주어진 도안만 따라그리게 될 것 같고, 기초만 배우다 흥미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림 톤이 세련된 화실을 찾아주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등록해야지 하곤 5주의 수업이 끝난 그 다음주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고 바로 등록했다. 


주민센터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결혼 전 엄마랑 왕초보반부터 시작해서 중급반까지 올라갔다. 2년 정도의 수력이 있었다. 인터넷 신청 시스템이 아직 안되어 있어서 오프라인에서 줄을 섰다. 6시에 갔는데 벌써 줄이 건물을 몇바퀴 두르고 있었다. 기존 회원들이 먼저 연장을 하고 남은 자리만 신규로 입성할 수 있다. 몇 자리가 남았는지, 원하는 시간대가 아니라도 맞출 수 있는 나는 아침반을 선호했지만 마지막 남은 단 한 장, 저녁 7시 화, 목반에 문을 닫고 입성할 수 있었다. 번호표를 받고도 등록까지 또 대기였다. 총 2시간 반을 기다리고서야 드디어 회원카드를 받았다. 그렇게 수영도 다시 시작했고, 라탄공예도 배웠다. 


소소하고 즐거운 취미를 즐기며 휴직시간을 보내고 복직을 했고, 벌써 1년이 지났다. 

약 6개월 정도는 꽤나 많이 회복된 모습으로 다시 일도 재밌게 했다. 언제 쉬었냐는 듯 쉬었던 시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덕분에 다시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점점 내가 휴직을 했던 이유는 번아웃뿐만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만큼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느 정도 자기 만족감이라는 게 채워져야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느껴져 공허했고,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회사 일이 아닌 다른 걸 배워보고자 시작했던 다양한 취미들은 취미에 머물렀다. 내가 느끼는 공허함은 그것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까? 이 일을 계속 하는게 맞는 걸까? 

그래도 난 이 일이 좋기는 한데...고민들이 꼬리에 꼬릴 물었다. 


갑자기 졸업한지 13년이 된 학교의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졸업한 학과를 클릭했고, 이전에는 없었던 특수대학원이 신설되었다는 소식을 보았다. 

두근두근-

학부시절 사회학, 심리학, 미디어학 3개를 전공했다. 이중전공이 필수였던 학번이라 2개 전공은 기본이었지만, 이중전공을 미디어학을 하리라 굳게 다짐했던 내게 심리학이 먼저 선수를 치면서, 심리학을 이중전공으로 하고 그래도 마음이 남았던 미디어학을 복수전공했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 처음으로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었다. 

문과도 이과도 아닌 두 가지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점도 좋았고, 아직도 연구하고 있는 영역이 많은 학문인 점도 좋았다. 그러나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에 취업을 바로 하게 되면서 대학원 생각은 금방 사라졌고, 학교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던 내가 졸업한지 13년 만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특수대학원 소식을 보고 또 다시 두근두근했다. 

전일제로 운영되는 일반대학원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회사를 다니며 공부를 할 수 있는 특수대학원, 그것도 심리학 특수대학원이라는 점이 마치 나를 다시 부르는 것 같았다. 

아직 졸업생도 배출되지 않은 대학원이지만, 어쩐지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직장생활 10년 이상한 중간관리자인 내가 MBA나 언론홍보대학원에는 전혀 동하지 않았던 학구열이 학부시절 열망했던 학문에 다시 작은 불씨가 지펴지니 걷잡을 수 없었다. 


24년 전기 지원은 10월 달이었다. 내가 알아본건 8월이었고, 아직 3달이나 남았었는데 나는 거의 매일 학과 홈페이지를 들어갔고, 학과사무실에도 연락하여 입학설명회는 언제하는지, 언제쯤 공지를 띄우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대학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주변에 이미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이렇게 또 공부를 많이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조금은 자신감도 생기고,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또, 하고 싶은 게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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