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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툰 Aug 30. 2023

삼성? 안 가요.

2008년 6월. ROTC 출신 육군 장교였던 나는 2년여의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제 곧 군바리의 티를 벗고 사회로 나가야 할 때. 다행히 당시에는 'ROTC 전역자 전형'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제일모직. 신방과 출신이었던 나는 전공을 최대한 살리고자 홍보나 광고팀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영업직 포지션을 열어놓고 있었고 그나마 제일모직만 '경영지원'이라는 두루뭉술한 포지션으로 모집하고 있었다.


서류를 통과하고 SSAT를 보고, 면접을 거쳐 일단 최종 합격이 됐다. '오 삼성에 이렇게 쉽게 들어가다니 인생 잘 풀리네.'라는 기분 좋은 성공감. 그리고 합격자들을 제일모직 본사로 불러 간단한 OT가 진행됐다. 삼성그룹과 제일모직에 대한 단순하고 지루한 설명이 끝나고 인사팀은 합격자들을 데리고 회사 근처 고깃집으로 갔다. 앳된 얼굴에 고루한 정장을 입은 십 수 명의 합격자들이 어색함을 깨려 관심도 없는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를 묻고 답하고 있을 무렵, 인사팀 직원이 외쳤다.


"상무님 오셨습니다! 일동 기립!"


아직 군인티를 벗지 못했던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최대한 절제되고 빠르고 예의 바른 자세로 꼿꼿이 일어섰다. 회식 중 등장한 상무님은 합격자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의 손을 잡았을 때, 하마터면 '중위! 안! 제! 민!'하고 관등성명을 댈 뻔했을 정도로 그의 아우라는 굉장했다.라는 건 뻥이고 내 기준에는 그냥 평범한 동네 중년 아저씨였다. 하지만 내 주변 합격자들의 눈빛은 달랐다. 존경과 부러움이 그들의 눈에는 가득했다. '그깟 상무가 뭐 대단하다고...'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한편으론 '저 딴 상무를 뭘 저렇게 존경의 눈으로 보는 거야?'라고 다른 합격자 친구들을 하찮게 생각했다. 그렇게 상무가 함께하는 저녁 회식이 한창일 무렵, 내 근처에 앉은 한 친구가 상무에게 말했다.


"상무님! 저의 꿈은 제일모직에서 상무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평범한 아부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그 친구의 말 중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서 꽂혔다. 그래, 꿈. 나도 꿈이라는 게 있었지.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꿈. 김태호처럼 유명한 PD가 되는 꿈. 그리고 나는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원래의 계획은 이랬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면 일단 생계를 해결해야 하니 남부럽지 않은 일반 회사에 일단 취직한 후, 직장 생활과 PD준비를 병행한다. 그리고 1년 안에 PD 시험에 합격한 후 자연스럽게 일반 회사원에서 PD로 전향한다. 이런 그럴듯한 계획이 있었다. '꿈'이라는 단어에 처맞기 전까지는. 그때의 나는 스물여섯이었다. '꿈'이라는 단어 하나에 가슴이 두근두근대는. 그렇기에 현실과 타협한 회식 자리에서의 내가 견디기 어려운 속물같이 느껴졌다. '이건 너무 비겁한 거 아니야? 정말 꿈을 이루길 원한다면, 그 자릴 박차고 나와 당장 내일부터 굶더라도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내 안의 소리가 가슴속에서 메아리쳤다.


회식이 끝난 후 집에 오니 가슴이 벅차기 시작했다. '그래! 삼성도 한 번에 합격한 나야! MBC, KBS, SBS가 날 기다리고 있다고! PD 시험이란 게 무슨 사법고시도 아니잖아. 내가 가진 재치와 창의력이면 단 번에 합격할 수 있어! 현실과 타협하지 말자 안제민!' 뭔 놈의 혼잣말을 그렇게도 많이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무척이나 자의식이 과잉되었던 것 같다. 뭐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넘쳤던 거고. 그렇게 나는 삼성을 그만두고 짧은 PD 지망생 시절을 마치고 곧장 PD가 되기로 결심했다. 잠시동안 수입이 없는 빈궁한 삶이 시작되겠지만, 위대한 PD가 되는 길에 그것은 오히려 훌륭한 자양분이 될 거라고 자위했다. 컴퓨터를 켜고, 네이버에 들어가 인사 담당자에게 메일을 썼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얼마나 스스로가 대견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오랜만에 저 메일을 꺼내보니 좀 부끄럽기도 하다. 그냥 그만둔다고 담백하게 쓰면 될 걸 왜 저렇게 구구절절하게 썼는지 원... 스물여섯 살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심각한 중2병이었다. 그렇게 나는 삼성을 포기하고 PD 지망생 생활을 시작했다.



*방송국놈 12년은 인스타 툰으로도 연재 중입니다. 보고 싶으신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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