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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Jan 10. 2022

개와 함께 산다는 것

나의 사회성을 기르는 일


뒤돌아 생각해보면, 나는 공부를 할 때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낯선 이들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나의 사회성을 커버해주었던 건 20대 초반의 때 묻지 않은 감수성 덕분이었으리라. 대학시절 동안 꽤 오래 사람들을 상대하는 CS 아르바이트를 했고 직장을 다녔음에도 ‘낯선 것’에 대한 경계가 강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님마저 나와 대화를 하면 마치 ‘직장 상사랑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을까.


 

그만큼 직업을 바꾸기 위해 진학했던 대학원은 일종의 인생을 건 사투 같았다. 효율성을 중시하고 기회비용을 따지는 성격을 가진 탓에 내 일주일은 사람들과의 대화도, 모임도 최소한이었다. 한 때는 과제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너무 배가 고파 컵라면을 먹으며 “왜 사람은 배가 고픈 걸까? 너무 비효율적이다”라고 생각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제를 모두 갖춘 알약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라고 말이다.



그만큼 내게 먹는 일은 딱히 즐거움을 주지도 않았고, 그저 살기 위해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당시에 그 누구도 내게 ‘빨리 졸업을 해라’, ‘논문을 써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저 빨리 졸업을 하는 것이 당시 최고의 목표였다. 빨리 돈을 버는 것, 그게 내 전부였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단순하고 긴박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6시 30분쯤 학교에 가서 오후 3-4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 밀린 과제와 공부를 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회사에 출근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 이렇다 할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은 등/하교 출/퇴근 때마다 짜증을 일으켰고, 시간의 흐름도 내게는 없었다. 봄이 오면 봄이 오는구나,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구나. 그저 학기와 방학, 계속되는 나 자신에 대한 붕괴를 느끼면서 버텨냈다. 논문을 제출하고서 졸업을 막 앞뒀을 때 내 몸은 많이 아팠다. 마치 그간 버텨낸 게 용했을 만큼.



전반적으로 늘봄이를 만나기 전의 나의 삶은 이랬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하고, 배우고 싶은 분야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동네를 거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빠와 새언니가 동네 근처에 좋은 카페가 생겼다, 유명 맛집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들을 때면 ‘동네에 대한 애정이 참 많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우리 동네는 너무 낙후됐으니까, 노년 인구가 많으니까, 그런 핑계들로 좋은 것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연찮게 길가에서 내게 말을 시키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었다. 설령 시킨다고 하더라도 대개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만큼 동네의 풍경이나 변화가 쉬이 눈에 띄지 않아서 내가 사는 동네는 언젠가 내가 떠나야만 하는 곳이었다.



나는 우리 동네에 그렇게 많은 노인이 있는지 몰랐다. 가끔 그들 중 누군가 내게 말을 시키더라도 불편하고 어색했다. 노인들은 대부분 곧장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고, 대개 할 말이 없으면 외모에 대한 이야기나 신상에 대한 말을 늘어놓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마치 나를 아는 듯 자연스러운 스킨십은 덤이고. 누군가와 가까운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내게 그러한 순간들은 곤혹스러움 자체였다.



그런 내가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어색하게 예의를 갖추느라 딱딱하기만 했던 말투도 "할머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친절한 언어들로 바뀌게 되었다. '이모'라는 말은 실제로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에게만 쓰던 내가 동네 가게 이모에게 "이모,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어릴 적, 내 부모님은 다른 것보다 어른들에게 하는 인사를 가장 중요하게 교육하셨는데, 성인이 된 후로 먼저 인사를 해본 게 늘봄을 만난 이후가 처음이었다.



어느새 늘봄과 걷다 보면 동네에 없던 맛집과 카페가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는 오빠와 새언니처럼 '이번에 저곳에 가봐야지'하고 생각한다. 먹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주제에 먹고 나면 평가도 해본다. 봄이 오면 동네의 벚꽃 나무가, 여름이 오면 습해진 온도를, 가을이면 갑자기 서늘한 공기를 느끼고, 추운 겨울에는 길 위의 생명체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반려인생 4년 차, 어느덧 내가 이 동네의 사계절을 오롯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개를 키운다는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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