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를 내서 말하기 시작했다
진돗개를 반려하며 맞이한 가장 큰 변화는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늘봄이와 인연을 맺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그래서 공공예절과 식사예절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그중에서도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일이 제일이었다. 때문에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러 근처 슈퍼마켓에 가거나 집을 나설 때마다 "안녕하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몰상식한 어른들을 마주할 때면 부모님은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노인을 공경하는 것'과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는 양립할 수 없는 명제였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 노인을 공경하라며?"라고 물어보곤 했는데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어른은 아니야"라는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추론과 유추가 어려운 어린아이에게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는 해석하기가 어려웠지만, 점차 세상에 대한 경험치가 증가할수록 부모님의 언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함부로 나의 몸을 만지는 노인과 양보를 강요하는 노인. 대뜸 큰 소리로 침을 튀겨가며 전화를 하거나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는 젊은이들에게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며 자위하는 노인들을 그간 너무나 많이 목격해왔다.
사실 이러한 노인들을 마주한 것은 늘봄이 이전에도 무수했지만, 이들이 직접적으로 내 생활 반경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영원히 내 바운더리 안에 들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몰상식한 사람들이 2019년, 늘봄이를 입양 이후로 대거 영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은 동네 변두리를 걷다 "그 큰 개새끼를 왜 안에 처 들어오게 하냐"는 할머니의 욕설을 들어야만 했고 대뜸 "개새끼를 왜 밖에 끌고 다녀!"라며 눈을 부라리는 할아버지의 혐오를 마주해야 했다. 단순히 '개를 데리고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불같이 화를 내는 그들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런 예고장 없이 불쑥 찾아오는 무례함 심신이 지쳐갔다.
하루는 꽃피는 계절 5월에 북서울꿈의숲에 방문했다가 노부부와 인사를 나누는 늘봄과 내게 어떤 아줌마가 다가왔다. 그녀는 대뜸 "저런 큰 개를 왜 데리고 다녀. 그럴 거면 입마개를 해야지"라는 무례한 언어를 내뱉었다. 마치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분명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무언가가 탁, 하고 풀리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녀에게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입마개 의무 견종이 무엇인지 아는지, 또한 '저런 큰 개'라는 표현이 혐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을 아는지, 나아가 이 두 가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본인의 언어가 상당히 예의 없음을 지적했다. 여자는 나의 대꾸가 본인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지 "나이도 어린 게"라는 말을 이어갔다. '나이'와 '무례'가 서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나와 밝은 인사를 나눴던 노부부가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이 우르르 내 주변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아가씨는 엄마 없어?", "그니까 왜 큰 개를 데리고 다녀", "이 아가씨 웃기네"라는 2차 가해가 시작됐다. 그간 소위 '어른'이라 자칭하는 '상식 없는 어르신'들에게 지친 나는 따박따박 그들에게 대답했다. '엄마는 있지만 당신 같은 엄마는 없다', '그럼 이곳에는 작은 개만 데리고 다녀야 하냐', '아줌마도 재미있으시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사실 오랫동안 말과 언어를 다루고 있는 내게 이러한 대꾸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내가 대꾸하지 않았던 건, 아무리 상식적인 대답일지라도 그것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향하면 내가 '젊은 여자'라서, 내 말투가 불친절하기 때문에 쉽게 '싸가지 없는 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어떤 한 중년의 여인이 스쳐 지나가듯 "개새끼 주둥이를 왜 안 틀어막아"라고 말했다. 집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뒤돌아 "아줌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반문하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그 후로 당신의 무례함에 사과하라는 내게 "싸가지 없는 년, 예의 없는 년" 각종 "년"을 쏟아냈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경찰을 불렀다. 재미있는 점은 경찰이 출동하자 마치 늑대 앞의 양처럼 "아니 선생님,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저 여자분이 큰 개를 끌고 가길래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전에 없던 예의 있는 중년의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내가 길거리에서 당한 수모는 말하기 입이 아플 정도로 많다. 처음에는 울어도 보고, 가만히도 있어보고, 무시도 해봤다. 그런데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나면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자꾸 '왜 그때 이런 말을 하지 못했지'라는 후회가 남았다. 그 후로 나는 길거리에서 싸우기로 다짐했다. '싸우기로 다짐했다'하니 조금 이상한데, 그저 내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왜, 이어지지 못한 인연이나 사건들에 우리는 쉽게 아쉬움을 느끼지 않나. '그때 이랬다면', '그때 내가 이 말을 했다면'하고 당시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계속해서 후회한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현존'하기로 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한 안 좋은 시선 역시 파생되기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그간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배려 덕분에 세상에 이러한 차별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그간 전공 서적에서나 논문에서 볼 수 있었던, 혹은 인터넷에서만 존재하던 일들이 내게 발생할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일전에 나는 오랫동안 만났던 한 연인을 '온실 속의 화초'라며 놀려대곤 했었다. 세상에 고민이라곤 하나 없어 보이던 그라서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와 내가 별반 다를 게 없는 신세였다. 어쩌면 그와 나 모두 든든한 부모님과 좋은 지인들, 그리고 '배움'이라는 안전장치 아래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늘봄과 함께하며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약자의 문제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배려하는 나', '또래보다 성숙한 나'라고 취해있던 스스로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은 자신이 직접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모른다. 마치 그간 내가 '온실 속 화초'임을 몰랐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