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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영 Jan 17. 2021

01_미니멀라이프를 책으로 배워서

대략 현시창 느낌의 소제목

미니멀리스트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깔끔하고 정돈된 환경, 늘씬하고 건강한 몸,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음가짐, 미소를 띤 온화한 얼굴, 요가와 명상, 그윽한 인센스 스틱 혹은 아로마 향, 정갈한 다기에 담긴 향긋한 차. 어쩐지 저는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미디어의 영향이겠지요. 그렇다면 미니멀리스트라 자처하며 살고 있는 저는 과연 어떨까요. 늘 지저분하고 정리 안 된 비참한 환경, 덕지덕지 살이 붙은 더러운 몸뚱이, 투쟁과 생존본능으로 가득한 전투적인 정신상태, 지워지지 않는 강아지 냄새. 뭐 그렇습니다.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쓰기에는 너무 솔직하게 써서 머쓱할 정도네요. 


보기 좋은 집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치워버리는 겁니다.


하루 종일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비벼대는 반려견 살라 덕분에 몸에서는 강아지 냄새가 풀풀 풍기지만 그게 싫지는 않습니다. 살라가 장난감일 줄 알고 물어뜯어 구멍이 숭숭 난 양말을 신고 다니지만 그것도 싫지는 않습니다. 하나뿐인 운동화에 살라가 노란색 얼룩을 튀겨도 딱히 싫지 않습니다. 난방도 단열도 안 되는 사무실이 너무 추워 그나마 단열이라도 잘 되어있는 창고로 자리를 옮겨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그것도 싫지는 않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미니멀라이프와는 아마도 꽤나 거리가 있겠지만, 이렇게나 혼돈・파괴・망가의 생활을 살고 있지만, 미니멀리스트라고 자처하기에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이 생활이 마음에 들거든요.


미디어는 많은 것을 왜곡합니다. 어쩔 수 없는 매체의 속성이지요. 제가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경우 굳이 실제보다 아름답게 그려낸다는 겁니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라이프도 마찬가지예요. 온갖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미니멀라이프도 많은 경우 그런 방식으로 왜곡되어있습니다. 책상과 의자, 노트북이 정갈하게 놓여있는 사진. 정확히 어떤 사진인지는 몰라도 왠지 떠오르지 않나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공간, 찍힌 자국 하나 없는 깔끔한 가구.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죠. 제가 지금 앉아있는 의자는 가죽이 갈라져있고 다리에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가득한데 말이에요. 이게 현실이죠. 


누군가의 실제 삶은 그의 인스타그램 피드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지지만은 않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물론, 알면서도 가끔은 배가 아프고 속상하지만 말이에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미니멀라이프를 살겠다고 마음먹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아름다운 미니멀라이프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미니멀라이프를 살게 되면 나도 심플하고 정갈하게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미니멀라이프라는 걸 실천해보면 결코 매체에서 본 것처럼 아름답게만 살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지요. 분노하고, 실망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네, 제 얘기입니다. 


충전기 없는 노트북의 최후가 이렇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어떻게 버텨서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습니다. 버티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죠. 당연히 저라는 매체를 거치면서 왜곡되겠지만, 가능한 현실적인 미니멀라이프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일단 제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실패한 과정부터 이야기해야겠네요.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요 모양 요 꼴로 살 수 있는지 정도가 되겠지요. 뭐가 됐든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이라, 할 수 있는 얘기가 실패담밖에 없어서 그게 좀 아쉽네요. 언젠가는 성공한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도 할 수 있겠죠. 제 얘기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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