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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영 Jan 17. 2021

02_나의 미니멀라이프 실패기 #01

대략 분노와 광기만 남은 느낌의 소제목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 리즈시절 몸무게.

제가 처음 생활 방식으로서의 미니멀리즘을 알게 된 것은 2016년 즈음이었습니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사춘기 소년처럼 미니멀리즘의 삶을 대하는 방식, 태도, 시선, 해석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금세 여러 권의 책을 찾아 읽고 하나하나 실천하기 시작했죠.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그리고 지금도 그렇듯이, 저도 물건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물건을 버리고 공간을 비우면 복잡한 머릿속도 비워질 것 같았습니다. 단순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도 단순해질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참 순진했지요. 딱히 어린것도 아니었는데요. 


살이 쪄서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시작으로 정말 많은 걸 버렸습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언젠가 다이어트에 성공해 다시 입을 기대로 가지고 있던 옷들을 버릴 때였습니다. 앞으로 영영 제가 다이어트에 성공할 일 따위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이죠. 많은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며 깨달은 한 가지는 비싼 물건과 소중한 물건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2007년 겨울, 오랜 친구가 사줬던 만 원짜리 손목시계는 결국 아직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작동조차 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심지어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는데 말이에요. 끔찍하네요.


소중한 이들에게 받았던 편지와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리기 전에는 정말로 정말로 많이 망설였습니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버리지 않을 핑계를 열심히 찾기도 했지요. 끝내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기로 결정했지만, 지금 만약 다시 그 일을 하게 된다면 이번엔 버리지 않을 것 같아요. 추억을 물질에서 이미지 혹은 파일로 바꾸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던지요. 물건이 추억이 아니고, 물건에 묻어있는 기억이 추억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아쉽네요.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열 때면 느껴지던 냄새를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거든요. 아직도 가끔 그 냄새가 그립습니다.


기대했던 것은 여유와 평화, 남은 것은 오기와 자학

제가 기대했던 건, 어떤 자신감이나 해방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한 지난날은 깨끗이 비워지고, 정갈하고 심플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만 같았거든요. 옷가지 수가 줄면 매일 아침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질 것 같았고, 업무를 볼 때도 심플하게 접근해서 명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저커버그가 그렇게 했으니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특히 당시에는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책이나 심플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잡스병에 걸렸던 것이죠.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환자였던 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게 남은 건 후회와 아쉬움과 절망뿐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 길마다 어젯밤에 내어놓은 쓰레기봉투가 혹시라도 남아있지는 않을까 기대하고는 했습니다. 매일 밤 쓰레기봉투에 물건을 담아 내어놓기까지 그렇게도 많이 고민하고, 가슴 아픈 결정을 하고, 돌이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도 말이죠. 매일 아침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봉투를 내어둔 자리를 볼 때마다 얼마나 허전하던지요. 집이, 방이, 거실이, 주방이, 화장실이 휑할 정도로 비워지는 일보다 쓰레기봉투가 없어진 자리를 확인할 때의 상실감이 더 컸습니다. 한동안은 매일 그렇게 후회와 아쉬움과 절망뿐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말 많은 걸 버리고 또 비우고 나자 모종의 오기가 생겼습니다. 원래 기대했던 건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제가 기대했던 건, 자신감과 해방감, 여유와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이었는데 평화는 개뿔,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오기만 남았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렇게나 가슴 아픈 과정을 거쳤는데, 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데, 여기서 이렇게 그만둘 수는 없다. 뭐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버리지 말았어야 할 물건을 버려서 곤란해지거나 아쉬운 마음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는 생각으로 불편함과 곤란함을 억지로라도 기꺼이 수용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생각 없이 손톱깎이를 버렸다면 새로 사는 대신 손톱을 물어뜯어 정리한다거나, 겨울 장갑을 버렸다면 일부러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고 다니며 괴롭힌다거나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자기 학대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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