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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Apr 13. 2023

성실하게 보낸 시간의 가치

온전한 책임과 체계적인 반복 작업이 주는 기쁨


나는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 거의 6년 내내 도서부였다. 도서부원들은 매주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에 도서실에 앉아서 학우들의 책 대출이나 반납을 도와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주 1회 정도는 점심을 먹지 못하고 도서실에 달려가던 기억이 난다. 방과 후에 도서실을 지키고 있었던 기억도 있다.


지루할 수도 있는 일인데 십 대 때의 나는 그런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누군가 반납한 책의 위치를 찾아서 돌려놓는 일, 정확한 위치에 있지 않은 책을 원래 위치로 옮기는 일 같은 것. 한가할 때면 구석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재밌다는 건 상대적이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지루한 일도 재밌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니 그때의 내가 얼마나 흥미롭게 느껴지는지. 14살의 나는 인정받는 것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소심하고 조용했지만, 매주 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책임감을 갖고 정말 성실하게 했다. 그러면서 나름 즐거워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기쁨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의 회사, 일도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정확한 단어를 골라내는 일, 잘못 놓인 단어의 적절한 위치를 찾는 일이니까. PO나 디자이너에 비해 눈에 띄지 않고,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갖기도 어렵고,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반복적인 작업이 정교해지는 것을 느낄 때 마음속으로 기쁘다. 도서부와 같은 마음으로 지냈구나. 이제 3년 지났고, 앞으로 최소한 3년은 더 이렇게 지낼 수 있겠구나. 이상하게 행복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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