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보어는 성수에 위치한 공간이다. 원래 에디션덴마크 쇼룸 겸 카페였지만, 2023년 4월 밋보어로 리브랜딩 후 간단한 식사까지 판매하는 ‘카페 겸 이터리’로 변신했다. 2023년 8월부터는 디너 예약을 통해 코스 요리도 제공한다.
나는 밋보어 론칭 과정에서 슬로건 제작을 담당했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공유해 본다.
1. 시작 - 왜 식문화인가
에디션덴마크의 이지은 대표(이후 무지)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2019년 에디션덴마크 론칭 초기에 나는 슬로건, 브랜드 소개, 제품 상세페이지 등 콘텐츠 작성을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좋은 음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무지와 자주 대화했다.
2023년 3월 오랜만에 무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무지는 '음식이 가진 좋은 영향력'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무지는 자신이 덴마크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단순한 음식만으로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닫고 놀랐다고 했다. 단순한 음식을 기대 없이 먹었는데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그 비결이 좋은 식재료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무지는 이전까지 무의식 중에 음식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음식에 대한 기존 경험과 생각
건강한 음식이 뭔지 알지 못함
건강한 음식은 맛없다고 생각함
음식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음
학창 시절에 음식이나 요리에 대해 깊게 배운 적 없음
음식을 먹으며, 살이 찌는 것에 죄책감을 느낌
음식과 연결감을 느끼지 못함
덴마크에서 생긴 음식에 관한 새로운 경험과 생각
건강한 음식일수록 맛있다는 앎
일상에서 단순한 음식 위주로 직접 만들어 먹음
요리가 즐겁고, 식재료에 호기심을 가짐
음식을 먹으며, 몸에 에너지를 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낌
음식을 통해 자연과 연결됨을 느낌
무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도 한 번도 음식에 대해 기존 관념 밖에서 생각해 본 적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니는 건강한 음식이라고 하면 다이어트를 위해 먹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항상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는데, 다이어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지의 사례처럼 일상 속에서 좋은 식재료의 음식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음식에 대한 기존 관념을 바꾸고, 사람들의 식문화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 건강한 방식으로 말이다.
'식문화에 대한 가치관을 바꾼다'라고 하면 무척 거창한 목표처럼 들리지만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건 '에디션덴마크'라는 브랜드에서 '밋보어'를 분리하는 거였다.
2. 과정 - 왜 분리인가
에디션덴마크는 기존에 서촌과 성수, 총 2개의 오프라인 쇼룸을 운영했다. 이중 성수는 서촌과 다르게 식사 메뉴를 판매하고, 레스토랑 경력 있는 셰프를 채용하는 등 더 본격적으로 음식에 대한 가치관을 담은 매장으로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일반 고객에게 이런 차이를 인지시키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고객은 성수 에디션덴마크 쇼룸을 서촌과 마찬가지로 제품을 사러 오는 곳으로 생각하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기존과 다른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밋보어다. 밋보어는 덴마크어로 내 식탁(my table)을 의미한다. 내 식탁을 무엇으로 채울지 사람들이 고민하고, 취향을 나누며 영향을 확장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네이밍이었다.
에디션덴마크가 지속가능한 식문화를 전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밋보어Mitbord를 선보입니다. 밋보어는 덴마크어로 '나의 식탁'이라는 의미예요. 에디션덴마크가 추구하는 '단순함, 좋은 품질,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담은 미식 경험을 제공하고, 식탁을 둘러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해요.
밋보어 소개글 중
이렇게 브랜드를 분리하니까 밋보어만의 브랜드 가치를 정의하기가 쉬워졌다. 나는 밋보어의 분리가 결정된 후 슬로건 제작에 참여했다. 슬로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정의하고 짧은 문장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밋보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무지와 대화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3. 끝 - 왜 밋보어인가
밋보어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경험을 통해 영감을 받고, 음식에 대한 기존 관념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자 한다. 또 밋보어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식문화 가치관을 확산하는 커뮤니티가 되길 바랐다.
그렇게 더 나은 세상(the Better)을 위해 더 나은 음식(the Better)을 먹고 마시자(Eat&Drink)는 에디션덴마크 구성원들의 철학이 담긴 슬로건이 만들어졌다.
Eat & Drink of the Better for the Better
몇 년 전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보려고 한다. 글의 초입에서 2019년 즈음 좋은 음식에 대해 자주 대화했다고 썼는데, 우리가 대화했을 때 '좋은 음식'에 대한 결론은 항상 같았다.
좋은 음식=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
그런 대화를 한 기록이 과거 2021년 11월 페이스북 포스팅에도 남아있다.
"오랜만에 만난 무지언니랑 한참 동안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지언니는 자신이 정의한 '좋은 음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연에 가까운 음식. 생각해 보면 건강한 음식일수록 맛있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준 것도 무지언니였다." (2021년 11월 13일 글)
같은 계란이어도 공장식 사육으로 생산된 것과 자연 사육으로 생산된 것은, 깊이 들여다보면, 천차만별이다. 공장식이 아닌 방식으로 만들어진 식재료가 애정과 관심이 훨씬 많이 들어가고,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식재료인 것이다.
식재료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가진 생산자와 그런 생산자를 지지하는 소비자가 많아져야 이 세상에 ‘좋은 음식’이 더 많아진다. 그렇게 음식을 먹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 자연까지도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디션덴마크는 그 사실을 믿고 있었고, 그래서 '밋보어'라는 개별 브랜드를 만드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음식에 대한 가치를 진심으로 믿고, 건강한 식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하는 커뮤니티가 되려고 하는 밋보어. 일관되고 진실한 태도로 음식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이들의 행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