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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May 13. 2021

착하지만 얕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비밀

Harmless vs. Virtuous


1. 착한 사람들, 서럽고 서럽도다 


“착하게 살면 호구된다” 는 세상입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씁쓸한 게 사실이죠. 

분명 어른들은 “착하게 살아야 복이 온다” 고 가르쳤는데, 막상 착하게 대했더니, 복은 커녕 오히려 나를 더 함부로 대하고, 만만하게 보는 느낌이 들 때도 많습니다. 

남을 열심히 배려해줬더니, 나중에 가서 내가 그렇게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여서 혈압이 오른 경험, 저만 한 건 아닐거에요. 

이럴 때마다 저는 화도 나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게 언젠 줄 아세요? 


착한데 존중도 받는 사람을 볼 때였습니다. 


차라리 모든 착한 사람들이 만만하게 얕잡여 보이면, 결론은 단순해요. 

남들에게 착하게 대한 게 문제니까, 앞으로 안 그러면 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사랑받으면서도, 얕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럴 때 더 서럽습니다. 똑같이 착하게 대해도, 누구는 얕보이고, 누구는 얕보이지 않아요.

착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인가…” 싶어 괜히 침울해지고 쭈굴거리게 됩니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똑같이 착한 일을 해도, 더 높게 평가됩니다. 

똑같이 남들의 부탁을 들어줘도, 누구는 “와 이런 부탁을 들어주다니, 너무 고마워요. 다음 번에 꼭 은혜 갚을게요.” 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저 사람 괜찮다며 소문도 나는데, 

누구는 시큰둥하게 “고마워요” 한 마디로 끝나고, 오히려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욕을 먹습니다. 

서러움의 연속이죠.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착해도, 

누구는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누구는 만만한 호구가 되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오늘 배울 영어 단어, harmless 와 virtuous에 있습니다. 


2. 토끼는 선하지 않다. : Harmless vs Virtuous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만약 여러분이 착한데 남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상대방이 여러분을 “착하다” 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욱하기 전, 잠깐 멈춰서 생각해볼까요? 애당초 “착하다” 는 건 무슨 뜻일까요?  


#Virtuous 


흔히들, “착하다” 라고 하면 “선하다”, 즉 도덕적으로 “바르고 옳다” 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이걸 영어로 표현하면 virtuous 라고 합니다. 

Virtuous 는 Virtue 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입니다. 

Virtue 는 선, 미덕, 덕목을 뜻하는 단어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고귀한 가치라는 뜻이 있어요. 

Something of virtue 라고 하면 “가치 있는 무언가”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virtue 가 의미하는 “가치”는 단순히 가격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선, 덕, 과 같이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도덕적인 가치입니다. 

그래서 virtue의 형용사 버전인 virtuous 는 도덕적인, 고결한, 선한, 정숙한 등 다양한 뜻이 있어요. 

다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뜻들이죠?  

Virtue 와 virtuous 가 “가치”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착한 행동은 선한, virtuous 한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누군가 내게 “착하다”고 하면, 내가 “virtuous”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착하다” 는 virtuous 가 아닌, 숨겨진 두번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두번째 뜻은 바로, “무해하다” 입니다. 영어로는 Harmeless 이죠.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착하다”를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경우, “착하다” 는 말을 우리가 알고 있는 “선하다” 가 아니라, 두번째 뜻인 “무해하다” 는 말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Harmless

착하다의 두번째 뜻인 “무해하다” 는 영어로 harmless 입니다. 

Harmless 에서 Harm 은 피해, 손해 라는 뜻이고요, 여기에 “~가 없는” 이란 뜻을 가진 접미어, “-less” 가 붙어서, 해를 주지 않는, 즉 “무해한” 이란 뜻의 단어가 됩니다. 

 “착하다” 를 “선하다” 가 아닌 “무해하다”라는 뜻으로 쓸 때가 많다니, 선뜻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시를 함께 보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아이를 흔히 “착한 아이” 라고 표현하죠. 

여기서 말하는 “착하다” 도 “무해하다” 는 뜻에 가깝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부를 하는 것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죠. 어떤 도덕적인 가치를 메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공부를 안하면 다 악하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나요? 절대 그렇지 않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해도 악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부모님 말을 듣지 않는 것 자체도 악이 아닙니다. 부모님이야 속이 썩겠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창밖을 기웃거리는 아이가 선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아이는 부모에게 “무해하다” 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선생님과 부모 같은 어른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아서,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요.

나를 힘들게 하지 않고, 귀찮게 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규칙에 잘 따르는 “착한” 사람들은, 선하다기 보다는, 내게 무해합니다. 

그리고 무해한 것에 사람들은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인생에 대한 수많은 명강의로 유명한 조던 피터슨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해한 토끼보다, 선한 괴물이 되라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강연의 일부를 함께 보겠습니다. 



If you’re harmless you’re not virtuous. 

무해한 사람은 선한 게 아닙니다. 

You’re just harmless. You’re like a rabbit.

그냥 무해한 거죠. 마치 토끼처럼요. 

Rabbit isn’t virtuous. It just can’t do anything except getting eaten. It’s not virtuous.

토끼는 선한게 아니죠. 잡아먹히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건 선한 게 아니에요. 

If you’re a monster and you don’t act monstrously, then you’re virtuous. 

당신이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괴물임에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게 선한 거죠. 

But you also have to be a monster. 

하지만 당신은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괴물이 되어야 합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의 말에 따르면, 무해함과 선한 것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선택” 입니다. 

무해한 사람들은 착하게 사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요. 착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앞서 피터슨 교수가 말한 것처럼, 토끼는 당장 우리의 목을 물어뜯어 우리를 죽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못합니다. 

토끼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건, 선해서가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저번 영상에서 말했듯, 사람들은 당연한 것에는 가치를 두거나 감사하지 않아요. 


제가 최근에 키보드를 샀는데, 저는 그 키보드한테 “오늘도 타자를 쳐줘서 내 일을 도와줬네, 고마워.” 라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건 애초에 키보드가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당연한 사실이니, 오히려 키보드가 잘 안 쳐져서 제 일을 방해하면 제조업체에 전화해서 환불을 요청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저를 위해 모든 일정을 다 미루고 달려와준 친구에게는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할 거에요. 그 친구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 도와주는 걸 선택해 준거니, 너무 고맙고, 어떻게든 나도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가치, virtue 를 두는 건, 착한 걸 선택한 사람들이에요. 

즉, virtuous 한, 선한 사람들이죠. 

주인공을 가로막는 괴물처럼, 얼마든지 상대에게 맞서 싸우고,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갈등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주인공을 도와주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에요. 

사람들은 이런 “착함”에 가치를 두고, 그런 사람을 존중합니다. 


그럼 반대로 누군 존중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나와 갈등을 일으킬 수 없는 사람들이겠죠. 

Harmless 한 사람들입니다. 


Virtuous 와 harmless, 둘 모두 “착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 둘의 가치는 사뭇 다르죠. 


불행히도 세상에는 타인과 갈등을 일으키는게 너무 두렵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갈등 상황에 놓인 것 자체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갈등이 생기느니 차라리 내가 희생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성향 자체가 동정심이 넘치고,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어요. 

이런 분들은 너무 안타깝게도, 본인은 최선을 다해서 착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이 분은 피터슨 교수가 말한 것처럼 “선한 괴물” 이 아니라, “무해할 수 밖에 없는 토끼”입니다. 

사람들은 이 분들이 애초에 갈등을 두려워하는 걸 잘 알아요. 

그러니 이 분들이 열심히 착하게 살아도, 여기에 가치를 부여하거나 크게 감사해하지 않아요. 

이 분들에게는 처음부터 갈등을 피하는 선택지 단 하나만 있기에, 당연히 착할 수 밖에 없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터슨 교수가 이렇게 말합니다. 


But you also have to be a monster. 

하지만 당신은 먼저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괴물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요. 


3. 선한 괴물이 되는 법  


자 그럼 괴물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여기서 말하는 괴물은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굴고, 사사건건 싸움을 거는 쌈닭이 아니라, 필요할 때 타인의 앞길을 가로막고 훼방도 놓을 수 있는, 즉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타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게 굉장히 쉽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타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오죽 우리한테 “착하게 굴라” 고 가르쳤나요. 무해해야 보상을 받았고, 갈등을 일으키면 호되게 벌을 받았는데, 그 가르침을 갑자기 뒤엎으려니 겁이 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갈등을 평소에 일으켜 본 적이 없는 갈등 초보자 분들은, 처음으로 자기가 먼저 갈등을 일으키려고 할 때, 마치 적진에 출장해서 적장의 목을 따러 가는 장수가 된 마냥, 과하게 비장해지기 쉬워요. 

하지만 피터슨 교수는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이것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내가 하기 싫거나 버거운 것부터 “No”라고 말하는 거에요. 



You have to be a bit of monster so that you can say “no.” 

당신은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종의 괴물이 되어야 해요. 

Part of how you regulate your interactions with other people is to negotiate. 

사람들의 관계를 조절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협상하는 겁니다. 

And you cannot negotiate unless you say “no.” You can’t do it. 

그리고 “아니오” 라고 말하지 못하면, 협상도 없죠. 

And it causes conflict to say “no,” and if you don’t like conflict, which is basically the definition of being agreeable, then you can’t tolerate the conflict, and so then you can’t negotiate on your own behalf, so then you keep losing, and you’re bullied. 

“아니오” 라고 말하는 순간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갈등을 싫어하는 상냥한 사람이라면 이런 갈등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을 위해 협상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계속 사람들에게 지고, 괴롭힘 당하게 되죠. 

So you have to develop your inner monster a little bit.

그렇기에 당신은 자신 내면의 괴물을 조금씩 키워야 합니다. 

And that makes you a better person, not a worse person. 

그렇게 했을 때 당신은 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에요. 



너무 멋진 말 아닌가요? 

제가 본 상냥한 사람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상대가 의견을 말하면 거의 바로 그 의견에 맞춰줄 준비를 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피터슨 교수 말처럼, 잠시 멈춰서, 내 안의 괴물을 키워보는 거에요.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저 의견에 정말로 동의하는가?” 부터 살펴보는 겁니다.

만약 “아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내 의견은 달라” 라는 말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의 앞을 슬쩍 가로막는, 괴물이 조금 되어보는 거에요. 

물론 처음부터 내 생각대로 잘 흘러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씩, 상대방의 말에 no 라고 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설득하는 실력도 늘게 될 거에요. 


저는 이 팁을 잘 활용해서 일을 할 때도 굉장히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직업이 여러 개인데, 그 중 하나는 프리랜서 번역가입니다. 


제가 처음 번역 일을 시작했을 땐, 고작 스물 한 살 때라 여러모로 사회경험도 없고 순수했습니다.  

막 대학생이 되었던 지라,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이 없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저는 제가 아는 유일한 고수익 용돈벌이인 과외를 해서 돈을 벌었는데, 어느날 아르바이트 공고에 번역 아르바이트 공고가 떴더라고요. 번역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기에 덜컥 지원했고, 그렇게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첫 발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대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렇게 시작한 번역 아르바이트는 신세계였습니다. 이전에 용돈벌이를 하던 과외 알바는 무조건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로 가야 하고, 과외순이/돌이의 성적이 올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는데, 번역 아르바이트의 경우 시간과 장소가 상관이 없었어요. 짬짬이 나는 공강 시간에 아무데서나 일을 하고,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도 하니까 너무 편하고 신세계였습니다. 


그래서 번역 일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제가 그 당시 할 수 있는 최대의 어필을 했습니다. 

바로 착하게 구는 거죠. 


번역 일을 맡겨주시는 PM 측에서 요구하는 건 군소리 없이 다 했어요. 3시간 안에 끝내달라면 그렇게 했고, 페이가 조금 낮다 싶어도 했고, 번역 작업 외에 추가로 편집해달라는 의뢰도 모두 오케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점점 별별 요구가 다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한 번은 번역 일을 제 시간 안에 모두 완벽하게 마쳤는데, 갑자기 PM 분께 연락이 온 거에요. 

“탐구토끼 씨, 추가로 수정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요. 

번역을 잘못한 게 있나 싶어 긴장해서 “네, 어떤 부분을 수정할까요?” 하고 대답했더니 

지금 번역한 내용을 엑셀로 옮겨서 새 파일로 만들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30분이면 끝나는 일이니 금방 하실 수 있죠? ^^” 하는 얄미운 카톡과 함께요. 

“금방 끝나는 거면 본인이 하세요 ^^” 란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네, 알겠습니다” 라는 카톡을 치는데, 울컥 했습니다. 

미리 말해준 내용도 아니고, 아무리 봐도 클라이언트 측에서 갑작스럽게 요청을 했는데, PM분이 본인이 일을 하기 싫어 제게 미뤘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습니다.   

하지만 잘 보이고 싶었던 “착하게, 착하게” 를 되뇌이며 수업 하나를 희생하고 일을 마쳤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렇게 해줬으면 에이전시 측에서 고마워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돌아온 건 더 열악한 조건에 더 무리해진 의뢰였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고, 저는 그럴 때마다 혼자서 끙끙 앓았어요. 


그런데 그러던 제가 이제는 척척 페이 협상을 합니다. 

제 주위 프리랜서 번역가 분들은 거의 페이 협상을 하지 않아요. 애초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없으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페이를 협상해서 번역료를 더 받았다고 하면 굉장히 놀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과 달리, 한국은 임금을 적극적으로 협상하는 문화가 아니잖아요. 

다들 대체 어떻게 페이 협상을 하냐고 비법을 물어보세요. 


그런데 그 비법은 피터슨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no” 를 말하는 겁니다. 

무리한 의뢰가 오면, 이제는 “이 조건으로는 진행하기 힘들다. 진행시키길 원하면 페이를 더 달라” 고 얘기를 한 거죠. 

이렇게 얘기하면 주위 번역가 선생님들이 굉장히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일이 끊기지 않나요?” 하고 두려워하세요.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저는 훨씬 존중받았습니다. (물론, 실력도 뒷받침되어야 제 말이 먹히겠죠.) 


예전에는 PM 분이 갑자기 던진 자잘한 잔일들도 넘기면 넘기는 대로 다 제가 처리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마음을 굳게 먹고, “지금 주신 추가 요청은 이전에 미리 합의된 바가 아니네요. 추가 요청에 해당되기 때문에 페이를 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처럼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리한 요구에도, “일을 맡겨주신 건 감사하지만, 제가 시간이 촉박해서 내일까지 끝내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처럼 no 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상 착하려면, 내가 무너지겠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잔뜩 지쳐 있었기에, ‘일이 끊기려면 끊기라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늘 순순히 길을 내준 제가, 길을 막기 시작하자, 처음엔 움찔하던 상대가, 시간이 지나자 먼저 저와 협상을 하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추가로 페이를 드릴게요. 얼마를 더 원하시나요?” 라는 페이 인상 제안부터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습니다.) 

“바쁘실텐데, 이번 건을 잘 맡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도 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는 정중한 인사까지 꼬박꼬박 들려 왔습니다. 

무리한 요구는 알아서 점점 줄어들고, 힘든 일은 무리해서 받지 않으니 훨씬 살 것 같더라고요 

일을 끊어낼 각오로 던진 no 가, 오히려 훨씬 일을 수월하게 해줘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일을 하는 저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제가 한 일에 대한 가치는 달라졌습니다. 

무해한 토끼가 아니라, 선한 괴물인 걸 알려주기만 한 것으로요.


그때부터 저는 차근차근, 내 안의 괴물 (inner monster) 를 세련되게 다듬어 왔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조건 harmless 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세련된 괴물이 되어야, virtuous 해진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은 저. (녀석...조금은 성장했구나) 

그래서 이제는 처음 제시된 조건을 "수락할까 말까"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협상하지?" 처럼, 협상의 대상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한 괴물이 될 때, 서러운 토끼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것 같아요. 


나는 세상을 착하게 대했는데, 세상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서러우시다면, 

혹시 나는 “선하다” 와 “무해하다” 어느 쪽의 착함에 더 가까운지 한번 곰곰히 되짚어 보세요. 

그리고 “무해하다”에 더 가깝다면, 조금씩 내 안의 괴물을 키워 보세요. 

피터슨 교수가 말한 것처럼, 그 괴물은 당신을 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줄거에요. 


오늘 칼럼에서 다룬 영어 문장 필기노트와 오늘의 명언, “If you’re harmless you’re not virtuous.”를 필사하는 필사노트도, 피터캣 클럽 홈페이지 “Archive” 에 올려두었습니다. 더 깊은 공부가 하고 싶으시다면 자유롭게 다운로드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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