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는 남자가 있다. 그런데 이 남자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를 떠올리고 기억하게 하는 가장 강한 매개체는 그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그의 향기다. 뭐 썩 그리 좋다할만한 향은 아니지만, 상당히 독특한 콜라보가 코를 자극한다.
먼저, 매캐한 파스냄새가 감각을 강타한다. 운동을 하는 사람인건지 아니면 꽤나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인건지는 알 수 없지만, 꽤나 강력한 냄새가 퍼져나와 연거푸 자극하면 코를 찌르던 매캐함도 그저 진한 스킨로션의 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다. 여기까지는 그냥 사람냄새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강한 파스냄새 직후에 따라오는 향이 꽤 몽환적이다.
그의 주변을 은은하게 메우는 그것은 분명 허브의 한 종류인 것 같지만, 라벤더, 쟈스민, 로즈마리 등과 같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허브들의 향이 아니다. 물론 직접 물어보는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향을 물어볼 정도로 내 넉살이 좋지만은 않았다.
오늘 아침엔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음표로 가득찬 죽음의 왈츠 악보처럼 빽빽한 모양에 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따끈하게 녹아버렸는데, 때문에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사람보다 팔에 걸친 사람이 더 많았다. 거리가 꽤 되는지라 출근길부터 지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운좋게도 절반쯤 갔을때 빈자리가 났다. 냉큼 앉으려는데, 왠 걸? 옆에 그 남자가 앉아 있지 않은가? 조금 불편하면서 한편으론 반갑기도 한 모호한 상황에서 털썩 앉으니 내 옷과 부닥치며 파스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퉁겨지듯 새어나는 은은한 허브향. 옆자리에서 퍼지는 향은 더욱 자극적으로 내 코를 강타했다.
바로 옆자리에서 느껴지는 강하고 오묘한 콜라보를 베개삼아 잠시 잠든 것 같았는데 이내 깼다. 대여섯 역 정도 지났는데 옆자리를 보니 남자가 없다. 재밌는 건, 사람은 떠났는데 향이 아직 남았다. 다음 사람이 앉을 때까지 빈자리는 그 남자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도 한번 머금어 본다. 정말 묘한 콜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