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꺼내다 놓쳐
와르르 온통 쏟아냈다
주섬 대며 주워 담다
벽 앞까지 굴러가 멈춰 선 것이 보인다
이상하리만치 시선이 빨려 들어간 곳엔
이미 사용했지만
현상하지 않은 채
온갖 것들과 뒤엉켜있던
오래된 필름이 있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의
바랜 추억들이 떠올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안에 뭐가 있을지
호기심이 생기다가
멈칫,
급작히 두려움이 몽글대며 올라온다
어리석었던 과거
아프게 지나간 사랑
지금은 곁에 없는 많은 아끼던 사람과 사물 그리고 풍경들
잊고 살았던
아니, 잊고 싶었던
반갑지만은 않은 기억들이
긴 시간을 거슬러 불현듯 날 찾아온 것은 아닐까
그 시공에 멈춰진 타임캡슐 속 파편들은
즐거움일까
아니면 비애일까
혹은 사무치는 그리움일까
한동안 멍하니 필름을 쳐다보고 있다가
조용히 다시 집어넣고 상자를 닫았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은
분명 내 미련스러운 미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