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긴 연휴 중 하나인 이스터(부활절)를 앞두고 영어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은 원형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미리 준비한 이스터 관련 물건들을 꺼냈다. 계란, 초콜릿, 바구니, 계란이 잔뜩 달린 모자, 토끼가 그려진 상품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이스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또 이스터가 호주 사람들에게 어떤 날인지를 알려줬다. 토끼가 어떻게 이스터의 상징이 되었는지 이야기하면서는 토끼가 아닌 다른 동물이 이스터를 대표하면 어떨까? 같은 얘기도 설핏 꺼냈다. 토끼가 호주에서 환영받는 동물은 아닌 만큼, 호주의 토착종이나 멸종위기종인 다른 동물들을 이스터 캐릭터로 만들면 좋겠다면서.
현재 호주에는 1억 마리 이상의 토끼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토끼는 호주 땅에 살고 있던 고유 토착종이 아니다. 사냥용으로 들여온 수십 마리의 토끼가 150여 년 만에 억 단위로 번식했다. 토끼가 풀을 다 뜯어먹은 초원은 황폐해지고 그 여파로 다른 초식동물이 살아남기가 어려워지면서 호주 생태계의 고리가 연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바이러스를 퍼뜨린 적도 있지만 곧 면역력을 가진 토끼가 등장했다. 호주 땅에서 토끼를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 가능은 할까? (한편으로는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캥거루, 코알라, 오리너구리 같은 온갖 동물이 사는 호주 땅에 토끼가 없었다니. 토끼는 북극에도 있는데…!)
토끼를 호주에서 몰아내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그게 몇 마리를 죽인 결과인지는 몰랐다. 나는 챗GPT에게 정부의 조치로 사라진 토끼가 몇 마리쯤 되는지 물었다.
“호주 정부는 토끼를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약 1억 마리 이상의 토끼가 살해되거나 통제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독성 물질을 사용한 방법, 포획, 사냥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억 마리. 내 상상을 넘어서는 숫자였다. 끔찍하지만, 아주 끔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안타깝고 씁쓸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같은 탄식이 나오지는 않을 정도. 2020년에는 전해 봄부터 발생한 산불로 수억 마리의 동물들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코알라가 몇 천 마리, 캥거루가 몇 백만 마리, 새 몇 백만 마리, 그런 막연한 수치를 합해 10억 마리… 그때는 절망을 느꼈다. 하늘이 부옇거나 붉었던 동안 몇 그루의 나무가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무도 생명이지만 동물과 비슷한 ‘느낌’은 아니다. 그게 어떤 기준인지 나도 모른다. 비슷한 비보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감정이 매번 다르다는 게 이상했다.
어느 주말에 기차를 타고 근교에 놀러 갔다. 근사한 분위기의 티하우스는 잘 조성된 공원 초입에 있었다. 차를 마시고 공원을 둘러보다가 나무에 매달린 수백 마리의 박쥐를 발견했다. 멸종위기종이었다. 박쥐들이 이곳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달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있었다. 박쥐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무서웠지만 계속 보다 보니 조금 귀여운 것도 같아 집으로 돌아가 책과 기사를 찾아 읽었다. 박쥐는 또 어디에 살고 있을까? 검색하다 시드니 로열 보타닉 가든(혹은 왕립수목원)에도 한때 박쥐가 살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멸종위기종인 회색머리날여우박쥐는 로열 보타닉 가든의 중요한 수목을 파괴한 죄(?)로 가든에서 쫓겨났다. 나무도 박쥐도 다 중요한 개체들이지만 식물원의 주인공은 식물이니까 식물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 조치를 취한 걸까. 아니면 박쥐는 대체 가능한 서식지가 있지만 나무는 옮겨심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내게 박쥐의 서식지 이동을 둘러싼 소송은 선택의 문제처럼 보였다. 박쥐가 중요한가, 나무가 중요한가. 누군가는 박쥐 편에, 누군가는 나무 편에 섰다. 무엇이 더 낫고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박쥐로서는 꽤 어리둥절할 일일지도. 세상엔 중요한 게 많지만 필요한 순간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박쥐 아니면 나무. 외래종 아니면 토착종.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더 적게 남은 것? 더 약한 것? 더 중요한 것?
책 <긴긴밤>에는 코뿔소 ‘노든’이 나온다. 노든은 틀림없이 귀하고 소중한 동물이다. 노든은 세상에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흰바위코뿔소니까. 저울 반대편에 어떤 것이 올라와도 웬만하면 어려움 없이 노든을 선택하지 않을까. <긴긴밤>의 작가는 북부흰코뿔소 최후의 수컷 ‘수단’의 이야기를 보고 책을 썼다. 북부흰코뿔소는 밀렵과 난개발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수단은 무장 경호원의 24시간 보호도 받았다. 밀렵꾼의 위협이 그 정도인가, 추측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키려고 애쓰는, 말 그대로 세상에 하나뿐인 수컷 북부흰코뿔소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한다. 인간이 죽이고 다시 인간이 살리려고 했던 북부흰코뿔소는 이제 과학의 발전 없이는 종의 재생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선택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과 다른 중요한 것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책 긴긴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