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의 한양 도성 성곽 너머에 북정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골목마다 작고 낡은 집들이 모여있는 조용한 동네인데, 성곽길에서 도심이 내려다보이고 가끔 산책하는 사람들 외에는 북적이지 않는 한적한 곳이라 가끔 감사원 길을 따라 오르곤 한다.
성북동 하면 떠오르는 큰 저택들이 모여있는 부촌과 내가 산책로로 삼는 북정마을은 성북로를 가운데 두고 맞닿아 있다.
북악산 기슭의 두 마을은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언덕에 각 위치해 있는데, 북정마을이 성벽에 기대어 북쪽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부촌은 당연히 남향을 하고 맞은편 언덕의 정상까지 솟아 있다.
북정마을 뒤편 성곽길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새소리 멀리 나무들이 서로 부비는 소리, 노 다니는 개와 고양이들로 꽤 정다운 느낌이다.
다만 북향인 탓에 항상 그늘져있는 것이 흠이다.
추운 겨울에 산책을 할라 치면 볕이 좋은 날에도 간밤에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있어, 심우장 가는 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고개를 들어 맞은편 언덕으로 시선을 두면 커다란 저택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다 못해 열감이 느껴지기에 서글픈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며 무엇이 부족한지 견주어 보거나 이런저런 생활의 조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언제쯤이면 성북로와 같은 인생의 반환점 너머 볕이 드는 마을에 다다를 수 있을지 계산하며 살아간다. 어느새 결핍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나는 무작정 볕이 드는 곳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기로 다짐했다.
대신 내가 가진 것들이 '필요한 곳에서 잘' 쓰이도록 하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이런 생각에 막상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해보려니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일을 하며 글도 쓸 줄 알고, 강의하는 것도 (잘한다고 할 순 없어도) 꽤 즐기고, 기타 연주도 할 줄 알고 어설프게 노래도 할 줄 아는 사람.
직업상 사람들의 말도 잘 들어주는 편이고 가끔 요리를 하면 맛있다는 소리도 듣는다.
다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나처럼 구구절절 적어 본다면 너무 많아 놀랄 것이다.
이런 평범한 능력들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 고민해보니 갑자기 막막한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작은 능력들을 쓸모 있게 사용한다는 것은 내 실력과는 상관없는, ‘마음’ ‘정성’의 문제이다.
아무리 글을 쓰는 능력이 있다 해도 누군가를 위해 편지 하나 쓰지 않는 삶이 있는가 하면, 이제야 글을 깨우친 아이들은 삐죽한 글씨로 꼭 편지를 쓰더라.
아이들이 적은 첫 편지의 쓸모란,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는 기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