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작가 Jun 25. 2021

나는 왜, 죄 없는 너희들이 불편한가

공격할맘 없는 대상과의 사투. 우리는 이걸 원맨쇼라고 부른다.



테이블에 앉아 일을 하려는데 눈앞에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섬찟한 기분.

고개 대신 눈만 들어 올려 본다.



그저 하얀 벽.



바깥 햇볕이 잠시 구름에 가렸었나 싶어

다시 일에 집중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검은 물체가 공중을 왔다 갔다 한다.

봤다. 분명 보았다.



곧장 주변을 살펴 저 침입자를 잡을 만한 종이를 찾는다.

저놈은 나의 속내를 알아챘는지

내 손이 닿지 않을 천장에 안착했다.

그러고는 몇 시간째 꿈쩍을 않는다.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라!!!


설거지를 하면서도 힐끔.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힐끔.


화장실을 가다가도 힐끔.



나의 눈짓에는 불안이 서려있다.

언제라도 저놈이 나를 덮칠까 공포에 휩싸여

자꾸 힐끔거린다.



쳐다본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면서

저놈이 덮친대도 그럴듯한 방어 하나 못하고 나자빠질게 뻔하면서

괜한 경계 태세를 갖춘다.

덩치는 저놈보다 몇 만 배는 클 텐데.



안 되겠다.

저놈을 죽여야겠다.

불안이란 풍선이 부풀더니 터지기 직전까지 가자

공포에 휘몰아친다.

심장이 요동치고 힐끔거리는 시선의 주기가 짧아졌다.



한편, 저놈은 그 자리 그대로 있다.



천장 아래 의자를 놓고 올라서려는 순간

어떤 질문이 스쳐 지나간다.



저놈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네가 뭔데 저놈의 평화를 깨는 건데?



그렇지.

저놈은 죄가 없지.

나를 해친 적도 없지.

그저 내 영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제외하곤

저 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는걸.



나라는 인간은

나의 평안을 깨는, 하지만 무엇도 하지 않은,

저 생명체가 왜 그다지도 불편할 것이었을까.



내 멋대로 통제 가능한 이 구역 내에서

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생명체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죄명은 무엇이라 해야 하지.



내가 이 구역 왕이니,

반역죄라 해야 하나.

아니지, 반역은 저지르지 않았는걸?

아니지아니지, 왕의 불안을 야기한 것만으로도 반역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개소리를 지껄이는 중에도

저놈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천장에 붙어있다.



공격할 맘 없는 대상과의 사투. 

우리는 이걸 원맨쇼라고 부른다.





@YOGURTRADIO



매거진의 이전글 속절없는 눈송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