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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슬린 Oct 08. 2021

좋은 글과 나쁜 글 판별법

맑은 동태탕 같은 글을 쓰기 위하여

언제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하지만 쉽게 시작하기가 렵다. 쓰다가도 너무 많은 생각에 가로막혀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마저도 부지런한 성격이   막힌 글들은 작가의 서랍에 꾸겨진  기약 없이 갇혀있다. 쓰던 노트를 찢어 버리는 따위의 환경 파괴를 하진 않아서 다행이다. 시간과 전파는 좀 낭비했겠지만.


좋은 글을 읽을  느끼는 짜릿한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와 어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돈을 주고서라도 배우고 싶은(돈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유쾌함으로 정신없이 끌고 가다가 묵직한 감동으로 머리를 한 대 때리며 마무리하는 글을 보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글 한 편에 내가 조련당하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내 글은? 비록 짧은 글이지만 슬쩍 세상에 나가 바쁜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물론 바쁜 현대인들은 저마다의 나쁜 글 판별 알고리즘을 가지고 시간을 아끼고 있을 거다. 나도 아무 글이나 닥치는 대로 읽지는 않는다. 오히려 편식이 조금 심한 편이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엄마의 노력 따위는 알게 뭐람! 정직하게 뱉어버리는 아가들처럼 나도 3초 정도면 나쁜 글을 판별해버린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이게 정말로 훌륭한 방법은 아닌 걸 알지만 브런치에 부유하는 수많은 글들 중 읽을지 말지를 내가 판단하는데 채 3초가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내 친구가 쓴 글도 잘 안 읽히는 걸 보면 아는 사람 프리미엄도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내 글을 시간을 내 여러 번 읽고 또 읽는 사람도 아마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시간을 내 읽으려 들지 않는 글들은 대개 이 중 하나일 때가 많다.


겉멋이 잔뜩 들었거나,

혐오와 독선의 냄새가 나거나,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끝말잇기 같은 글이다. (친한 선배의 부탁으로 대입 자소서를 첨삭해준 경험이 있는데, 그때 본 수많은 학생들의 글이 이랬다. 여기서 내가 끊어주지 않으면 1,500자를 한 문장으로 끝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열심히 마침표부터 찍어줬던 기억이 난다.)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글은 고춧가루 팍팍 친 빨간 맛보다는 그릇 바닥까지 보이는 마알간 동태탕 국물 같은 글이다. 생긴 건 아무 맛 안 날 것 같은 맑은 국물이지만 한 술 뜨면 명태가 생전에 헤엄치던 바다의 맛도 나고 육지에서 나고 자란 파, 무, 고추 등 여러 재료들의 맛이 천천히 느껴지는 기분 좋은 맛. 조미료는 넣지 않을수록 좋다. 거기에 비린 맛을 잡고 개운한 맛을 내기 위해 수없이 고민한 주인장의 시간과 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맛.


시원하고 개운하고 어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맑은 맛을 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솔직함과 용기다. 예컨대 소고기 1그램 없이 소고기 맛을 내는 국은 (만들기는 쉽다) 맛은 있을지 몰라도 매일 먹고 싶은 맛은 아닌 것처럼, 술수와 트릭, 치장과 과장으로 맛을 낸 글들은 나 같은 글 편식쟁이들의 시간을 얻지는 못한다. 차라리 용기 있게 ‘소고기의 맛을 내기 위해 대기업의 피나는 노력으로 만든 조미료 맛 글’이라고 하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그렇다. 내가 글을 쓰기 어려운 것은 이렇게 좋은 글 대한 눈이 높기 (라고 합리화를 엄청 하고 있다)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직 솔직함과 용기가 부족한 탓이다. 아직 글을 쓸 때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하고, 때로는 그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 나의 동태가 썩어 빠진 동태일지라도 갖은양념으로 수습해 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린내 나는 채로 그냥 작가의 서랍에 묵혀두기도 한다. 언제쯤 나의 비틀어진 동태를 있는 그대로 맛있게 끓여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타고난 요리사나 작가들은 없지 않냐는 진부하지만 진리의 논리를 되새기면서 조금씩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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