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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슬린 Mar 29. 2022

중국 부자 친구가 랍스터를 사줬다

근데 왜 사준 거야?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의 한 중국인 친구가 토요일 저녁에 함께 저녁을 먹자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마침 낮에는 다른 점심 약속이 있어 들렀다가 우리 부부는 배도 부르고 약간 피곤한 상태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물어보니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고, 남편의 친한 MBA 동기의 소개로 함께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정도였다. 이번엔 그 동기 친구는 빼고서. 사실 보기로 약속은 했지만 남편도 조금 의아했다고 한다. 왜 보자는 걸까? 평소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어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인지, 우리는 이 친구도 그런 건가, 하며 친구가 알려준 식당 위치로 향했다.


지도에 나온 식당에 도착했는데, 음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만 비추는 은은한 노란 조명, 그리고 그 아래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벽에는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미술 작품들과 이 모든 분위기에 걸맞게 잔잔하게 깔리던 클래식 선율,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들까지.. 소개팅 장소라고 하기에도 조금 과하고, 특별한 날에야 한두 번 올까 말까 한 그런 분위기였다. 동그래진 눈으로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우리 부부는 더욱 궁금해졌다. 뭐 이런델 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뜻밖에도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는 본인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옆자리 남자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처음 보는 남편의 ‘그닥 친하지 않은’ 친구와, 남편도 나도 역시 처음 보는 그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 나는 결혼식 때 처음 본 하객을 향해 지었던 것 같은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그리고 아, 남편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은 이 분인가 보다, 조용히 생각했다.


남편의 친구는 메뉴판을 건네며 먹고 싶은 걸 시키라고 했다. 메뉴는 중국어로 한 번, 그리고 그 아래 영어로도 한번 설명이 되어있어 놀랐고, (그런 곳이 그리 많지 않다) 가격을 보고 또 한번 뜨악했다. 당시만 해도 위안화 -> 원화 변환이 빠르지 않아 정확한 금액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음식 가격으로는 중국에서는 처음 보는 큰 숫자였다. 그것도 메인 단품 하나 가격이. 동공이 확장된 채 흔들리던 내 눈동자를 의식했는지 남편의 친구가 웃으며 종이로 메뉴판의 가격 부분을 가리며 가격을 보지 말고 고르라고 했다. 그래, 이런 델 또 언제 오겠어? 나는 가려도 쉽게 잊히지 않던 금액의 랍스터를, 남편은 친구들이 시킨 것과 똑같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친구는 익숙한 듯 다른 전채요리 몇 가지를 주문했다.



고급지고 정갈한 요리들이 나오는 동안, 남편은 유창한 중국어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나는 중국어를 거의 못하는 관계로, 가끔 눈웃음만 지으며 눈치껏 내용을 엉성하게 추리했다. 언제쯤 본론의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한 와중에, 음식들이 너무 맛있는 나머지 점심 때 이미 많이 먹어 배부른 것도 잊은 채 열심히 먹었다. 식전 빵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곁들여 먹는 치즈는 집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콩만큼 나오는 요리들은 쪼끔만 먹어도 온갖 다채로운 맛이 나는 게 왜 조금씩 나오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메인 메뉴인 랍스터 리조또는 한 입 먹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게 맛있어서 세상에 랍스터와 나만 남겨진 마냥 코를 박고 먹었다. 랍스터에 집중한 동안, 남편과 친구들의 대화는 정말로 들리지 않았다. (원래 듣고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지만) 그리고 정신을 차린 후에 중국에서 여태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고, 친구에게 진심을 다해 (남편에게 말해달라고) 전했다.


랍스터 리조또를 먹은 나 (브런치 앱으로 봐야 움직이는.. 비운의 gif)


그렇게 맛있게 먹은 후 우리는 헤어졌다. 친구는 자신의 BMW 자가용을 타고 갔고,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남편은 적어도 밥값이 50만 원은 나왔을 거라고 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남편에게 물었다.


근데 왜 사준 거야?
- 모르겠어.
응???


정말로, 친구는 남편이 결혼 후 나와 베이징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밥을 산 거라고 했다. 내가 정신없이 먹는 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도 그저 잘 지냈었냐는 이야기, 친구가 재밌어하는 중국의 역사 이야기(친구 아버지가 역사 교수라고 했다),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 요즘 하는 일 이야기, 십 년 전쯤 가봤던 한국 여행 이야기 등…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함께 온 친구도 남편 회사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진짜 좋아하는 친구라서 함께 나온 거였다. 친구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고 베이징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네 집이 조금 잘 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대체 얼마나 부자여야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몇 번 만난 적도 없는 친구에게 50만 원짜리 밥을 산단 말인가? 그것도 황금 같은 토요일 저녁에. 조금은 벙찐 상태로 있다가, 이내 우리는 좀 많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부자일지라도’ 이렇게 남에게 쓸 수 있기나 한 걸까? 아니,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이런 크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부자가 될 수나 있는 것인가? 머뭇거리던 우리를 위해 메뉴판의 금액을 종이로 가려주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대가 없는 호의를 의심했던 것이 다시 부끄러웠다. 그것도 너무도 확신에 찬 의심이었다. 그러면서도 중국 부자는 진짜 부자라더니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야겠다, 누가 알아챌까 부끄러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몇 번 만나지도 않았지만 마음마저 부자인 친구의 마음에 든 남편이 내심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내용은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친구와 친구의 친구, 남편은 서로의 이야기를 재밌어했고, 생각해보면 굉장히 어색했을 법한 만남이었음에도, 쉴 새 없이 이어지던 대화로 어색함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중국의 역사, 문화, 사회에 관심이 많고 여러 가지 사는 이야기를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이방인 친구가 중국 친구 입장에서는 정말로 순수하게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특히 내가 자랑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조국을 좋아하는 이방인이라면! 사실 그 친구는 공산당 당원인 데다, 중국을 정말로 사랑하는 애국자이기도 했으니. 내가 가진 부를 이룰 수 있게 해 준 조국에 기꺼이 들어온, 나의 조국을 사랑하는(?) 이방인 부부에게 이 정도의 대접은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정말로 고마웠고 맛있었고, 조금 부끄럽게 배부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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