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준비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로 런던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4개월도 더 지난 9월 23일. 결국, 처음 계획했던 11월 18일 자의 항공편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연락을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 모양새에도 기가 찼다. 제일 황당했던 표현은 예약한 항공편이 11월 18일에서 11월 19일로 '출발시간이 변경'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변경 變更
- 다르게 바꾸어 새롭게 고침.
메시지를 받고 굉장히 의아해서 인터넷 사전에서 괜히 단어 뜻을 검색해보았다. (기분이 나빠서 무엇이라도 꼬투리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맞다.) '변경'이란 무언가를 다르게 바꾸어 새롭게 고침이란다. 과연 '변경'되었다고 알려준 스케줄은 다르게 바꾸어 새롭게 고침이 맞는가. 해당 시간은 이미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스케줄이다. 11월 19일 오후 12:10 시간의 항공편은 4개월 전에도 운행 스케줄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11월 18일 자 항공권이 동계 스케줄 감편 문제로 '취소'되었고, 해당 일자의 항공편을 예약한 승객들의 항공편은 임의로 11월 19일 자 항공편으로 변경 조치해놓았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출발시간이 변경되었다니, 누가 보면 시간만 바뀌었다고 알아듣겠네. 이용객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유럽이고 런던이고 그냥 다 취소해버려? 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취소하면 또 수수료는 나보고 내라고 하겠지? 그렇게 순간 욱하는 감정이 보글보글 올라왔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변경사항 확인 버튼을 눌렀다. 하루 미뤄진 비행기 스케줄 덕분에 나의 소중한 하루를 손해보고 시작하는 일정으로 런던 여행이 확정이 되었다.
런던 가는 일정이 확정되니 이제는 돌아오는 항공편도 사야 할 때가 왔다. 런던으로 가는 날짜가 확정이 안되다 보니, 혹시나 어떻게 될지 몰라서 돌아오는 표를 못 사고 있었다. 혹시나 비행 일자가 완전히 다른 날로 바뀐다거나 자리가 없다고 취소처리가 될 수 도 있었기 때문에,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던 4개월이 지나고 이제야 돌아오는 항공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항공편 날짜는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휴가기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대 일주일, 앞뒤 주말 다 끼고 9일. 가는 날이 하루 줄어든 만큼 돌아오는 날짜도 뒤로 늘리고 싶지만, 작고 소소한 월급에 충성 충성하는 월급쟁이는 정해진 일자에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단지, 어느 항공사를 이용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은 가능!
아시아나를 주로 이용하는 나이기에 (보통 아시아나 항공권이 대한항공 항공권보다 저렴하다.) 돌아오는 항공편도 당연히 아시아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시아나가 나에게 빅엿을 주는 지난 4개월 동안 환율과 기름값은 미칠 듯이 치솟아 있었다. 런던 가는 항공편을 사던 4개월 전에 내가 봐 둔 항공권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와 금액 차이가 아아아아아아아주우우우우우우 많이 나고 있었다.
너무 짜증 나서, 또 한 번 유럽 가지 말까 고민했다. 이 항공권 가격에 런던에 가서 쓰는 돈까지 생각해보면, 그 돈을 한국에서 쓴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플랙스 인생이란 어떨까 하면서.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지. 다시 정신을 붙잡고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고공 행진한 비행기 티켓값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대한항공에서도 가족 마일리지를 탈탈탈탈 모으면, 유럽 편도티켓 한 장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발한 생각과 10년도 더 전에 연결해 놓은 대한항공 가족 마일리지를 한번 들여다보는 센스를 발휘한 것이다. 대한항공 이용이 적었던 나에게는 쥐꼬리만 한 마일리지가 있지만, 가족 마일리지를 다 모으면 쥐꼬리보다는 커지는 마일리지 마법을 알아낸 거지. 나는 천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 것이 바로 해결 방법일세.
아시아나에 이어 또 한 번 가족 마일리지 모아서 유럽행 편도 항공권을 얻는 기적의 마법. 이렇게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사게 되었다. 마침, 엄마 계정에 지금 안 쓰면 곧 소멸될 마일리지들이 있었고 (아주 소액이지만), 일단 이 마일리지들이 아까우니 써야겠다는 아주 합리적인 이유와 함께 순탄하게 가족 마일리지를 끌어다 쓸 수 있었다. 나는 아주 합리적이지!
대한항공 마일리지 항공권 또한 유럽 편도 항공권은 35,000 마일리지와 유류할증료, 세금 등이 포함된 추가금액 결제를 해야 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항공권 구매할 때는 23만 원 정도를 추가 결제했었는데, 이번에는 43만 원 정도를 결제했다. 금액 기준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항공사가 다르고, 출발 공항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큰 차이가 나는 걸 보면 그동안 오른 기름값과 환율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라데이션 분노가 올라왔지만, 항공권 구매를 완료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후하.
오늘의 교훈은 이거다. 대부분 신경 잘 안 쓰는 가족 마일리지를 잘 눈독 들여놓으면, 타이밍 좋을 때에 탈탈 긁어서 모아 쓰는 자가 승리자라는 것. 그렇게 나는 승리자다! 비행기표값 굳었다! 런던에서 흥청망청 놀 준비 완료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