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석 May 13. 2024

TMI 미용사를 만났다.

설마 했던 수다, 하지만 애정과 열정이 있었다.

이발을 했다.

“찾으시는 분 없으세요?”

“예.. 없어요”


배정된 디자이너분은 남자였다. 처음이었다.

내가 앉자마자 살짝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혹시 고양이 키우시나요? “

아.. 예..


”오 반가워요. 어떤 종이예요?”

“몇 살이에요? “


너무나 뜬금없는 질문 폭탄에 사고가 마비되고 말았다. 가장 꺼려하는 TMI형 미용사를 만날 줄이야...


내가 왜 키운다고 했을까. 하지만 오전까지 기침의 원인이 알레르기일 가능성도 있다고 해서 안 그래도 고양이털과 한바탕 하고 난 후였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았다.


급기야 그는 휴대전화에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맙소사! 제발. 조용히 머리 좀 깎고 나가면 안 될까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점차 대화가 진행되자 단순 잡담에서 전문지식의 영역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고양이가 귀여운 게 아니라 일본제 ***상표 45번 빗을 사용하면 좋다거니와 털이 너무 빠지면 사료의 단백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등 거의 카운슬링 영역으로 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와의 관계, 문제점등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자르면서도 술술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전직 브리더 출신이라고 한다. 나에게 또 자신이 참여했던 해외 캣쇼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사진에는 그와 고양이의 행복한 순간, 시상식들이 담겨 있었다. 이 정도면 단순 집사가 아니라 그야말로 전문가, 박사의 영역 같았다.


순간 어느 사진에서 그가 고양이를 안고 캣쇼에서 찍은 사진이 보였다. 그 구도, 표정. 나와 굉장히 닮아있다. 고양이에 관심 없는 사람은 캣쇼든 뭐든 유별나다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가끔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의 메이커페어에 다녀온 사진들이나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나의 열정을 칭찬해주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유별나다는 표정을 보내기도 한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들과 함께 해외에 다녀온 게 기적 같고 대단한 거 같다. 사진을 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기도 하고 그때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거기서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작품을 안고 찍었다. 마치 그가 고양이를 안고 해외 캣쇼에 나간 것처럼.

둘 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한다. 큰 이익이 안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한 이유는 상대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내 직업에 대해, 내 일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 낭뜨.. 정말 신기한 도시. 언젠가 이곳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겠다.

거의 한 시간가량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게 애정과 전문성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TMI라면 어느 분야든지 듣고 싶어 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