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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Jun 21. 2024

불가리아의 100만달러 크리스틴(1)

평택 고덕 반도체 숙식 노가다

안녕하세요.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준비하며 쉬고 있지만 가끔 동료들이 전화와서 잘 지내는지, 현장 분위기를 전하곤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특히 클리앙의 도움덕분에 퇴직금을 건진 제 룸메이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현장에 있다 보면 확실히 삶의 패턴이 단순해집니다.  처음 왔을 때의 긴장감은 익숙함으로 변합니다. 현장의 흐름이 내 삶의 나이테로 새겨질 즈음 여러가지 숨어있던 욕구들이 올라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물질도 윤택해지면서 이제 딴 곳을 기웃거리는, 이른바 ‘배가 부르기’ 시작합니다.


특히 외로움에 대한 갈망이 커집니다. 매일 동료들과 일하고 또 숙소에서도 동료들과 웃고 즐기지만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관계를 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정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었습니다. 숙소의 텅빈 방,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경험하다 보면 보금자리라는게 꼭 집을 말하는게 아니란 걸 깨닫습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를 원합니다. 일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삶과 관계된 특별한 존재를 원합니다.


제 룸메이트는 20대 후반에 이곳에 와서 돈을 모으며 혈기왕성항 30대 초반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헬스가 취미이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합니다. 자연스럽게 외로움과 이성에 대한 욕구가 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피부도 매끄럽고 호감형입니다. 하지만 평택은 만남의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좋은 방법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헬로우톡’이라는 어플을 보여주었습니다. 가까운 지인도 이 어플로 만나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 친구는 순식간에 어플을 설치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이 친구에게 헬로우톡을 소개해 준 이유는 경험상 그나마 건전하고, 추가 유료 과금에 대한 압박도 없고 무료로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며칠간은 점심시간에 세계 여러나라 여성들과 번역기를 통해 이야기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이걸로 모자랐나 봅니다. 우연히 동생 핸드폰을 보니 헬로우톡이 아닌 처음보는 채팅앱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여자들이 이 앱을 사용할까?’ 싶을 정도로 뭔가 요상한 아이콘 디자인에, 살짝 불안한 이름의 앱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한번 톡을 보내려면 보석을 충전해야 하는데 몇만원씩 충전해야 하고 톡한번 보내는데 대략 500원이 든다고 합니다..! 진지하게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과연 상대방이 진짜 여자일까? AI 아닐까? 아니면 남아공 어딘가의 배불뚝이 남자 흑인이 팬티를 벅벅 긁으며 너와 채팅하는건 아닐까?ㅋㅋㅋ” 

처음에는 장난으로 이야기 했지만 이 친구의 성격을 보며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암도 젊은 사람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 건강함 때문입니다. 건강하니 암세포도 더 빠르게 퍼진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평소 부팀장으로 불릴 만큼 자기 일에 열심입니다. 이 성격이 요상한 앱들에 꽃히기 시작하자 무섭게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대화 한번 하는데 500원, 1000원 정말 세상에 돈버는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가 한 두명은 카톡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 여자가 남자가 돈을 많이 쓰는 걸 걱정해서(!) 서로 카톡 아이디를 주고 받은 것이지요. 


동생은 점점 채팅에 빠지며 일을 등한시.... 하지는 않고 쉬는 시간마다 예전에 잠을 잤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전파가 잡히는 곳으로 가서 여성과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다 한 여성과 깊은 속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저녁 10시가 되면 칼같이 코를 골며 자는 녀석이 밤 11시, 12시가 되도록 채팅을 했습니다. 잠깐이라도 방을 지나칠 때 문틈 사이로 스마트폰 불빛이 새어나왔습니다. 그 빛이 구원의 빛인지, 지옥의 빛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대화를 해도 예전엔 일에 대한 주제였다면 이젠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여자의 스토리가 상당합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어릴적부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배를 만드는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어엿한 여성 사업가로 변신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업을 하는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새벽 일찍 일어나 룸메이트와 함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 보다 더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너 새벽까지 그여자랑 톡했지?”


“형, 이번 여름에 그 여자가 한국에 온데요. 진지하게 부모님께 소개하려구요”


??


동생은 그 어느때 보다도 비장하고 진지한 모습이었습니다. 외국인에 부모님도 안계시고 불우한 어린시절이었지만 지금은 꿋꿋하게 사업가로 일하는 그녀가 정말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웠다고 합니다. 나이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해서 결과를 이루어낸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합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참 웃기지만 그때는 너무 진지해서 저마저도 믿고 응원해 줄 정도였습니다. 원래 휴가도 싫어하는 녀석이었는데(만날 사람도 없고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 팀장과 이야기 해서 그녀가 오는 날에 맞춰 휴가도 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만남이 이루어지나? 

이게 외국 스타일인가?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불과 동생에게 채팅 어플을 알려준지 2달도 되지 않아 결혼을 결심한 상대를 만났다는게 신기했습니다. 제3자가 보면 정말 이상한데 세상에 여러가지 일들도 있고 미술 선생님이 숙식 노가다 하는 일도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생각했습니다.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부모님에게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동생을 보며 3가지 단어가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성의 외모도 상당했습니다. 연예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미인이었고 재력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배우자를 채팅 어플로 만난다고? 그것도 대한민국 경기도 평택시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비하가 아니라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한 이 상황이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사진들도 몇가지 이상했습니다. 

배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보통 연인에게 보내는 사진이면 셀카를 찍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진들이 다 제 3자가 찍어주거나 삼각대로 설치해서 찍은 듯한 각도로 전신이 나오게 찍었습니다. 

동생의 흑역사 박제. 지금도 동생은 저에게, 클리앙에게 고마워합니다.

(링크는 다음글에 남길게요!)

예를들어 이제 곧 다른 나라에 출장간다고 하면서 공항에서 찍은 사진인데 굳이 전신이 다 나온 사진을 찍어 보냅니다. 대체 누구에게 찍어달라 했을까요? 꼭 그렇게 매력을 어필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한번도 통화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두세달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굿모닝 점심에 사진찍어 보내고 저녁에 굿나잇하는 상대인데도 한번도 목소리를 들은적이 없다고 합니다. 카톡으로 하면 보이스톡이 당연히 되지 않냐 물어보니 자기가 사업중이라 통화가 어렵다거나 아프다거나, 아님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등 계속 빙빙 둘러댔습니다. 


그 동생은 철썩같이 믿으며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동생에게 “헤이 브로, 아이러브유” 라고 하며 일부러 배를 긁으며 여자 흉내를 내며 놀렸습니다. 


그리고 점차 약속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8월 중순에 오기로 했고 7월 말이 되면서 동생은 영어공부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아예 핸드폰에 영어 회와 앱을 깔아서 항상 화면을 켤 때마다 오늘의 단어가 나오게 하고 저에게도 회화 시험을 요청했습니다. 불과 몇달 사이에 맹렬히 공부하는 동생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정말 성욕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구나..”

-그런거 같아요.


“그런데, 혹시나 말이야, 진짜 그런일 없겠지만… “

-뭐가요?


“그냥 내 생각인데 그 여자가 한국에 오기 전에 갑자기 비행기표를 잃어버린다거나 지갑을 도난당해서 갑자기 너에게 돈을 요구할 수도 있을거 같아”

-예? 그 여자 돈 많아요


“응 그렇지. 근데 갑자기 너도 돈벌겠다고 해주면서 코인을 사라고 할 수도 있고 …”

-ㅋㅋㅋㅋㅋ 에이 형ㅋㅋㅋㅋㅋ

(지금도 동생은 이 대화가 소름돋는다고 합니다. )


그여자가 오기 2주전이 되었습니다. 이미 팀장에게 휴가는 받아놨고(평소 일만하는 녀석이 휴가를 쓴다길래 신기했다고 나중에 말하시더라구요 ㅋㅋ) 이제 어떻게 만나고 서울 어디를 가고 또 뭘 먹을지 구체적인 계획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동생은 또 쾡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슨일이야?”

-아 큰일났어요.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사업 계약하고 한국오려고 했는데 볼리비아 쪽에서 배 부품이 통관에 갑자기 걸려서 지금 발이 묶여있데요

“혹시 너한테 돈 빌려달라고는 안해?”

-그런 얘기는 없고 갑자기 연락이 잘 안돼요.. 하……


지금 생각하면 그쪽 팀(?)은 정말 치밀했던것 같습니다. 절대 돈얘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돈은 충분하다는 설정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며칠 후 동생은 또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형 기업은행 계좌 비대면으로 만들 수 있나요?”

-왜??

“하… 며칠만에 연락왔는데 자기 사업 자금이 묶여있다고 혹시 돈을 좀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야….!

“형이 한 말도 있고 해서 저도 살짝 의심되서 물어보는거에요”


“그사람들 아프리카나 어디에서 배 벅벅 긁으며 지금 너랑 대화하고 있는거라고!!!!!!!!!!!”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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