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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Oct 22. 2024

(25) 가장 원초적인 형벌

- 평택 고덕 반도체 숙식 노가다

안녕하세요.

평택에서 숙식 노가다를 했습니다.

지난 글은

(1)평택 고덕 삼성반도체 건선현장 숙식 노가다 체험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784024

(2)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숙식 노가다(2)-고덕의 하루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16539

(3)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3) - 하나도 못 알아 듣다, 언어의 전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24903

(4)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4) - 어쩌다 이곳에? 당연히 돈 때문에 왔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38875

(5)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5) - 이모(E-Mo) 네트워크 이야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49953

(6)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최근 소식, 이모(E-Mo) 네트워크가 특별한 이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63337

(7)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두 계단 위에 서 있는 사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78405

(8)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이곳은 AI로부터의 피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932355

(9)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슬로우 다운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064741

(10)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공수지옥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071733

(11)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완벽한 잠을 찾아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086088

(12)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완벽한 잠을 위해 한 일, 깨달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110282

(13)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정말 이게 다야? 이렇게 간단히 살이 빠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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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저녁 식사를 아침으로 미루면서 체험한 효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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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삼성은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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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돈을 모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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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밴드 공고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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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호캉스? 노노 빌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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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메가 스트럭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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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나의 몽골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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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멋진 책 소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583266

(22)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불가리아의 100만달러 크리스틴(1)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747328

(23)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불가리아의 100만달러 크리스틴(2)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750082

(24)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대가리가 깨끗해 지는 곳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810118


가장 원초적인 형벌

어릴 적 잘못했으면 혼났습니다.

친구와 떠들다 걸리면 나가서 손들고 서 있거나 벽보고 한시간 동안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 외에 회초리로 맞는 체벌도 비일비재 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체벌의 강도도 강해졌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체벌은 숙제를 안해왔다는 이유로 책상 위에 무릎꿇고 앉으면 선생님은 회초리로 허벅지를 내리쳤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허벅지가 움찔합니다. 


사회에 나가보니 육체적인 체벌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잘못하면 맞을까봐 덜덜떠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상대방의 꾸지람, 업무적인 냉대, 뒷담화, 의도적인 무시 등 정신적인 고통이 심해졌습니다. 누군가는 차라리 맞는게 더 속편하다고 할 정도로 정신적 체벌은 더 심해졌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는 사무직은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육체적인 체벌이 없다해도 업무적인 압박이 주는 중압감은 허벅지 체벌을 능가합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퇴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많은 경우 물리적인 상처가 아닌 정신적인 상처가 원인입니다.


평택의 고덕은 조금 색다릅니다. 

이곳에 오기 전 건설현장에 대한 이미지는 거칠었습니다. 일 못하면 욕설이 오가고 망치나 장비를 집어던지는 모습을 드라마나 인터넷의 노가다 글들로 많이 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갖고 현장에 와서 그런지 모든게 조심스러웠습니다. 친절해 보이는 팀장님도 실수하면 화를 내지 않을까, 물건을 집어던지지 않을까 긴장하며 최대한 빠릿빠릿하게 일하려 노력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오자마자 모든 분들에게 인사 하고 누가 부르면 항상 뛰어서 전달하고 최대한 큰소리로 시킨 일을 복명복창하고 진행했습니다. 다행이 웃으며 너무 긴장하지 말라며 잘해주셨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며칠 안되어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서 보니 두 사람이 서로 옥신각신, 한 사람이 멱살을 잡을 것 처럼 거칠게 다른 한 사람에게 따지며 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은 나이드신 반장님이었고 한 사람은 안전관리자였습니다. 아무래도 반장님이 안전에 위배될 만한 문제를 일으켰고 그걸 지적하자 싸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무어라 하면서 관리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관리자는 “이러시면 안되죠” 라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계속 소리를 지르자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장님, 계속 말씀해 보세요”
-(화가나서 무어라 소리며 욕을 함.)
“(침착하게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예. 계속 저에게 지금 폭언폭설 하시는거죠. 예 알겠습니다. 적당히 하세요”
-(장비를 집어던지고 계속 화를 내며 달려들려 하자 동료들이 막아섬)
“(뒷걸음질 치며)왜 저에게 그런 말씀 하시냐구요. 계속 해 보세요. 예예 계속해 보세요”


보통 불같이 화를 내면 상대방도 화를 내며 싸우는게 정상인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관리자는 침착하게 촬영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상황은 화내는 사람에게 불리한 것 같았습니다. 


팀장님은 그 풍경을 보며 말했습니다.


“왜 저렇게 말을 함부로 하냐... 여기서는 저렇게 무식하게 행동하면 안된다. 바로 쫓겨난다”


여기서 ‘쫓겨난다’는 사회에서 “너 그렇게 일하다가 회사에서 쫓겨난다” 와는 다릅니다. 

가볍게는 며칠 출근을 못할 수도 있고 심하면 아예 현장에 출입금지 당할수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잘못을 해도 출근을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후에 주변에서 여러 싸움들을 봤지만 소리를 지르고 거칠게 말하긴 했지만 상대방에게 대놓고 욕을 하거나 밀친다던가 하는 행위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상대방에게 폭언 폭설을 했을때는 심하면 퇴출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두번째 사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습니다. 처음 왔을 때 빌라 숙소에서 어린 동생과 함께 지냈습니다. 성격도 밝고 일도 잘해서 부팀장급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이 친구도 실수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초반에 따라다니며 보조 역할을 하던 때였습니다. 


동생은 3층 높이에 있는 장비에서 무언가 고쳐야 할 것이 생겨서 어떻게 올라가서 수리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비계(임시 구조물)를 통해 올라갔습니다. 3층에 올라가서 주변에 있던 장비에 다다르던 순간,


“거기 반장님! 내려오세요”


어느새 하늘색 안전모를 쓰고 검정 옷을 입은 안전관리자가 제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 당시 워낙 초창기라 안전관리자가 왜 있고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동생은 3층에서 보더니 아차 싶었던지 최대한 안보이는 쪽으로 숨으려 했습니다. 이미 관리자는 더 큰 소리로 내려오라 하며 무전기로 상황을 전파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모든게 들켜버려서인지 동생은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고소작업시 2인1조 미수행
고소작업시 안전고리 미체결


또 내려오면서 발을 헛디뎌 살짝 다리부상까지.. 그야말로 가장 벌점이 높은 사례만 골라서 걸렸습니다. 특히 삼성에서 가장 벌점이 높은 사항이 고소작업 관련 규칙입니다. 반도체 건물 특성상 층고가 높고 워낙 거대해서 추락사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팀장님도 뛰어오고 그 외 소속된 업체 사람들이 와서 어떻게든 형량(?)을 줄일려고  안전관리자와 옥신각신했습니다. 그 결과는, 


출력정지 3일.


처음에 이 용어를 듣고 잘못 들은 줄 알았지만 정말 ‘출력 정지’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뭘 출력한다는거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정확히는 출역이라고 합니다. 나와서 힘을 쓰는 작업을 출역이라 하는데 편하게 출력이라고 합니다. 직장인의 출근을 현장에서는 출력이라고 합니다. 


결국 3일을 나오지 말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처분이 관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간 휴가를 받다니 이게 처벌이라고 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꽤 강력한 처벌이 맞았습니다. 


여기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오기 보단 돈을 벌기 위해 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사업 실패로 인해 대출을 갚으러 오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등록금을 벌기 위해 등 다양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입니다. 매일 출근해서 일당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형벌은 돈을 못벌게 하는 것입니다. 


출력정지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입니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일당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월급, 연봉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측정합니다. 아프면 병가를 낼 수도 있고 연차도 있어 한달에 하루쯤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쉴 수 있습니다. 연차나 병가를 썼다고 해서 월급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감봉이나 징계가 있어도 흔한 일은 아니지요.


일용직의 세계는 다릅니다. 하루하루가 일당입니다. 아파서 빠진날은 당연히 일당에서 제외됩니다. 월말에 각자 공수를 세어 보면 옆사람과 백만원 이상의 차이가 날 때도 있습니다. 빠진 공수를 보면 괜히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제서야 자신이 일당을 받는 일용직임을 깨닫습니다. 이전에 썼던 ‘공수지옥’편을 보면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나도 모르게 빠진 금액을 생각했을 때 깨달았습니다. 결국 가장 큰 형벌은 공수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후 3일간의 출력정지를 보내고 다음날 출근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동생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서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무슨일이야?”
아 진짜 유치하게 이런걸 시키네요
“뭔데??”
내일 보시면 알거에요ㅋㅋㅋ 내일 저 봐도 모른 척 해주세요


다음 날 유난히 동생은 10분정도 더 일찍 출근했습니다. 홀로 게이트를 통과하며 현장 건물에 들어서는데 눈 앞에 굉장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대략 10명 정도의 반장님들이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각 팻말에는 그 사람의 죄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보안 규칙을 어긴 사람은 ‘스마트폰 보안을 철저히 지키자’ 라든가 또 누구는 ‘보행시 스마트폰을 보지 않습니다’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곤 다함께 합창하며 “안전 규칙을 철저히 지킵시다” 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걷다보니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동생은 ‘고소작업 시 안전규칙을 지킵니다’ 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초점없는 눈으로 “안전 규칙을 철저히 지킵시다”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민망한 웃음을 교환하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짜증나고 귀찮은 벌칙이지만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주 어릴 적 학교에서 벌 서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잘못하면 교실 복도로 나가 무릎꿇고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또는 교실 뒷편에서 서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교실의 규칙을 배워나갔습니다. 


오늘날은 인권침해로 고소될 만한 사안이지만 그 당시에는 잘못을 했다 = 육체적 고통, 귀찮음, 아픔이 당연한 공식이었습니다. 친구와 떠들면 같이 복도에 나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시간동안 욱신거리며 팔을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다음번엔 더 은밀히 친구와 떠들거나 아예 포기했습니다.


현장에서의 벌칙도 ‘몸을 귀찮게 한다’ 입니다. 복도에 두 팔을 들고 서 있는 것, 일찍 출근해서 팻말을 들고 있는 것 모두 몸이 귀찮거나 번거롭게 합니다. 


체벌은 과연 나쁜 것일까

팻말을 든 동생을 생각하며 과거 받았던 원초적인 체벌을 생각해 봅니다. 목적은 두번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게 하는데 있습니다. 체벌이 금지된 요즘은 칠판앞에 문제풀이 시켜도 인권침해라고 합니다. 체벌은 두려움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체벌무용론도 있습니다. 다만 지난 9년간 2000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의 여행지에도 데려가 봤습니다. 그 중에는 신기하게 상대방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리더십 까지 보인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성인인 저보다도 의젓할까 싶어 부모님께 물어보면 많은 경우 체벌을 했습니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 합니다. 여행지에서 이 친구의 모습은 전생에 장군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리더십 있고 친구들을 솔선수범 돕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한 아이는 부모님이 고학력, 전문직에 굉장히 부유했습니다. 온실 속 화초일거라 편견을 가졌지만 배려심도 많고 리더십도 뛰어났습니다. 여행지에서는 걷기 힘들어 하는 아이의 짐까지 자신이 대신 들고서 가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돌아와서 어머님께 몰래 비결을 물어보니 “잘못하면 뒤지게 패요.(실제로 한말) 그것밖에 한게 없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당사자도 잘못하면 ‘뒤지게 맞았기’ 때문에 이젠 동생도 괴롭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자기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배려도 전혀 없는 이기적인 아이도 만납니다.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이런 경우 부모님은 방치형이거나 체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체벌 무용론을 맹신했고 자신은 아이를 때리는 훈육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막상 수업이나 야외 활동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자기만 생각할까 싶을 정도로 공감대, 배려심이 부족했습니다. 


팻말을 들고 있던 동생, 리더십도 뛰어나고 배려심도 많은 동생에게 나중에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 맞고 자랐다고 합니다.


손들고 벌서는 것, 팻말을 들고 있는 것

현장에서 보면 많은 것들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으로 상대방을 훈육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사회에서 잘못하면 시말서, 이른바 반성문을 작성하지만 그걸로 얼마나 반성을 할까요. 군대 장교시절에도 ’원인분석’ 이라는게 있었습니다. 왜 잘못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제출하라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간부들 끼리 “에이, 원인분석 쓰면 되지” 라고 치부해 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갓 입대하고 후보생(훈련병 장교버전)일 때는 잘못하면 무조건 엎드리거나 개구리 점프 등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는 벌칙이 많았습니다. 이 또한 체력이 좋아지며 익숙해지지만 역시나 반성문이나 서류로 제출하는 법칙보다는 몸이 느끼는 고통이 더 큰 법입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규칙을 지키려 했습니다.


현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안전과 관련되기 때문에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확실한 벌칙이 필요합니다. 직접적으로 돈을 못 벌게 하거나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창피를 주거나 몸을 불편하게 합니다. 


장비를 던지고 소리지르는 것

이전 글에서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끈끈해질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직접 들고 움직이고 몸이 부딪히는 일이 많다 보니 사무적인 관계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합니다. 말 뿐만 아니라 몸짓, 표정 등 상대방과 언어 이외의 신호들을 교환하기에 자기도 모르게 사회적인 관계보다 깊은 대화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과의 마찰도 강한 편입니다. 


종종 우리팀에서도 자신은 일하는데 다른 팀원들은 놀고 있거나 정리정돈을 안하면 현장이 울려퍼질 정도로 큰 소리로 욕을 하거나 때론 장비를 던지기도 합니다. 상당히 거친 표현이지만 즉각적이고 바로 알아듣습니다. 아차 싶어 바로 정리정돈을 하면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합니다. 사무적인 관계에서는 이런 피드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카톡이나 메일로 불만을 말한다 해도 바로 답장이 오는 것이 아니고 설령 온다해도 오해의 소지들이 다분합니다. 


고성이 오가고 장비를 집어던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성격이 거친 사람들만 온다고 생각했지만 와석 직접 일해보니 많은 것들이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합니다. 특히나 생명, 안전과 관련되어 있는 일들을 귀찮다는 이유로 어기는 일도 비일비재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사무직에서 볼 법한 방법으로 훈육(?)을 하는게 훨씬 위험합니다. 어릴 적 손들고 벌을 서고 매를 맞는 것처럼 육체적인 패널티가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하는 곳입니다. 눈 앞의 공사 현장은 오토캐드 속의 도면이 아닌 실제로 땅을 파고 철골 기둥을 박고 배관을 설치하고 백만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곳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건 사회보다 위험하고 훨씬 다양한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들과 함께 안전하게 작업하려면 어떤 잘못이든 바로바로 패널티를 부여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릴 적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적 배움이 평생을 간다 할 만큼 한번 고착화된 버릇을 고치기 힘듭니다. 무엇이 배려있는 행동인지 아이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배웁니다. 요즘은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아이들에게도 즉각적인 피드백 보다 왜 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르칩니다. 참을성이 있는 아이는 이해하고 잘못을 고치지만 급한 아이는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과거였다면 능지처참을 당해야 할 범죄자가 몇년의 길고 긴 법정싸움과 변호를 통해 굉장히 낮은 형량을 벌을 받거나 집행유예를 받습니다. 당사자는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그것조차 과하다며 항소를 합니다. 


피드백이 길어지면 그만큼 혼탁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명백한 한사람의 잘못이 나중에는 쌍방과실이 되고 결국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진 까닭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명백한 잘못을 가릴 수 없으니 모든 피드백들이 길어집니다. 


아침에 팻말을 들었던 동생이 퇴근합니다. 

장난스럽게 내일도 시위(?)할 준비 되었냐고 물어봅니다. 

“앞으론 조심해야죠. 귀찮아 죽겠어요”


어찌보면 사측의 훈휵(?)이 잘 통한 것 같습니다. 마치 학교 복도에서 벌서던 아이가 한 말투같았습니다. 3일후에 동생은 모든 패널티에서 해방되었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동생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벌을 다 받은 것이지요. 빠른 피드백과 뒷끝없는 깔끔한 결과.


어쩌면 나중에 아이를 키울 때 참고가 될 듯한 날들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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