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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Sep 20. 2021

‘우리’가 되기 위해 다른 존재를 외면하지는 않았나

로트만의 '문화와 폭발'과 영화 <우리들>



오늘날 ‘무슨 문화’, ‘무슨 문화라며 규범화시켜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불안정한 기호체계에 의해 규정된 문화체계를 보편화시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다른 것들을 타자화하고 배척하지는 않았을까. 반문화로 여겨지는 것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반대이지도, 타자이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로트만에 따르면, 역사적 현실을 언어로 정리한 논리적 현실은 추상적인 모델을 생성하여 보편화시킨다. 인류의 역사는 모든 보편적 인간이 하나의 선을 따라 발전해온 것 아니다. 한 줄로 서서 민중의 발전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간들이 발전시켜온 것이다.


여기서 모순은 문화 자체는 체계화를 시킴에 있어서, 기록을 남기고 체계를 만들기 위해 먼저 보편화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누군가가 주관을 가지고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보편화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보편 모델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위는 모델에 의거해서 표현될 수 없으니까 표현 자체를 하지 않아 버린다. 나중에는 이런 행위들이 허용될 수 있는 규범의 일탈로서, 즉 양상, 기형, 범죄, 영웅주의 등의 이름으로 인식 속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는 군집된 인간의 행위와 규범화시킬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인간 행위의 대립 속에서 체계화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나는 지금 오늘날 ‘무슨 문화’, ‘무슨 문화’라며 규범화시켜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불안정한 기호체계에 의해 규정된 문화체계를 보편화시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다른 것들을 타자화하고 배척하지는 않았을까. 반문화로 여겨지는 것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반대이지도, 타자이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사실 문화를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내가 더 공부가 필요한 것 같고, 영화 <우리들>을 보며 떠오른 '우리'의 의미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영화 <우리들>은 첫 장면부터 설렘과 초조함을 동시에 자극한다. 학교 체육시간, 피구게임을 위해 각 팀 주장이 팀원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편을 가르는 모습이 나온다. 자기가 선택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설렘과 초조함을 동시에 안고 있는 주인공 ‘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이는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선택받아서 팀원이 되는 학급의 왕따였다. 설렘과 초조함의 외줄 타기 끝에는 자괴감만이 남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들>은 선이가 새로운 친구 ‘지아’와 알아가고, 나중에 선이가 왕따인 걸 알게 된 지아는 학급 분위기를 주도하는 ‘보라’와 보라의 주변 친구들과 친해지고자 선이를 무시하게 된다. 그렇게 선이와 지아, 보라 이렇게 세 명이 중심으로 그리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초등학생이 아닌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도 같았다. 각자가 가진 환경과 기질, 능력, 욕구 등이 복잡하게 얽혀 배신과 선택, 배제가 뒤따르는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피구게임에서 어쩔 수 없이 팀원으로 끼어든 나는 과연 진짜 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가 만든 ‘우리’ 안에 들어가기 위해 혹은 ‘우리’를 만들기 위해 다른 존재를 외면하거나 배척하진 않았을까. 그 존재라고 하면 타인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나의 또 다른 면을 말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내가 나의 어떤 면을 부정하면서 억지로 ‘우리’라는 구조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을까를 말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어떤 기준에 의해 보편 모델을 만들어 결속력을 강화했지만, 동시에 그 구조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배척과 제거, 그 구조에 끌어들이려는 일종의 폭력성까지 갖추고 있다. 타인, 혹은 개인의 정체성은 거부되고, 그렇게 이뤄진 개인들의 집합체 안에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이 진짜 ‘우리’인가, 더 나아가 그것이 진짜 ‘문화’인가. 무언가를 규정하고 정의 내리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고 있다.


규범화된 것과 아닌 것 사이의 충돌 속에서 예상치 못한 측면이 드러나고, 거기서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바흐친을 통해서 배웠다. 인간은 그 목소리들로 자신을 새롭고 입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고,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 그 충돌이 결국 자기를 돌이켜보는 중요한 매개 역할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문화의 흐름 중에는 통일된 하나의 문화로 향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날카롭게 그 경향을 바라보고 고찰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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