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여행, 나의 작은 우주
‘어릴 때 내린 결론은 무르기 힘들다’고 말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셰이엔, 셰이엔은 15살 때 아버지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했고 그때부터 화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30년 동안 지속되었다.
30년 동안 아버지와 연락 한 통 하지 않았고, 항상 짙은 눈 화장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하얗게 덧칠해진 피부, 덥수룩하게 부풀린 펑키한 머리로 한 손에는 항상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현재까지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자, 셰이엔 본인이 말했듯 ‘너무 오랫동안 아이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임종 소식이 전해진다. 30년 만에 고향에 간 셰이엔은 아버지의 일기장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과거 유대인 수용소에 있을 당시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던 나치 전범을 한평생 찾고 있었다는 사실.
셰이엔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아버지이지만, 가족 대표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먼 여행길에 오른다. 자취를 감추고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린, 아버지를 괴롭혔던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떠난 길에서 셰이엔은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한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셰이엔을 이끈다.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마치 우리들 인생의 단면처럼 다가온다.
주인공 셰이엔처럼 과거에 갇혀 현재가 권태롭게 느껴지는 것도 우리의 인생이고, “차가 정말 맛있네요.”라는 셰이엔의 말에 “아니 형편없어. 잘 만들려고 늘 애쓰지만 전혀 나아지질 않아.”라고 외치던 나치 전범의 부인이 한 말처럼 잘하려고 늘 노력하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감사할 줄 아는 게 제일 좋은 것’이라던 술집 문신남의 말처럼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역시 우리의 인생이다.
또한 셰이엔과 통화하던 이웃집 친구가 ‘고통은 종착역이 아니래요. 사람들은 가끔 그냥 떠나나 봐요. 우리 오빠도 떠났고…….’라고 했듯이 영문도 모른 채 홀연히 사라질 수 있는 것 또한 우리 인생이고, 또 어느 날 갑자기 날 찾아오는 것이 있다는 것 또한 우리의 인생 같다.
여행이 무르익을 때쯤 마냥 어리게 보였던 셰이엔이 말한다. ‘두려워도 한 번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순간을 선택해야 한다. 나에게 그런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떠난 여행이 마냥 쉬운 여행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두려웠을 것이다. 여행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 테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바로 여행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셰이엔에게 자꾸만 일어난다. 셰이엔은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모든 걸 단정 지을 수 없는, 내가 만들어낸 나의 작은 우주 안에서 혼자 방황하고 표류할 때 이 영화를 만났다. 영화는 내게 ‘삶 = 여행’이라는 절대 공식을 심어줬다. ‘여행’이라는 정의 아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다.
그 안에는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있었고, 이야기가 있고 노래가 있었다. 그것이 곧 한 편의 영화이자 그게 바로 삶이라고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가 알려줬다.
물론 이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인생 영화’로 다가갈 수 없겠지만, 나와 비슷한 결의 고민을 하던 사람이 있다면 분명 영화 속에서 익숙한 것을 다시 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본인만의 인생 여행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속도와 이야기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찾고 영감을 수집하는 여행 같은 시간이 되길. 그렇게 더 빛나고 소중한 나의 일상과 우리의 일상을 조용하고 뜨겁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