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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ity Sep 18. 2016

몽상가들 : '청춘의 경계'

#2. 몽상가들(The dreamers, 2003)

영화  <몽상가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포스터  (우리나라 포스터는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많이 바뀜.)
시놉시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던, 
청춘들의 자유로운 유희!  

영원할 것 같았던 청춘의 열기, 사랑, 그리고 꿈… 
아름다운 시절에 바치는 거장의 러브레터

자유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1968년 파리, 영화광인 미국인 유학생 매튜는 시네마테크에서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를 만나 가까워진다. 부모가 휴가를 떠난 이사벨과 테오의 집에서 한 달간 지내게 된 매튜는 영화와 음악, 책, 혁명 등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며 특별한 추억을 쌓는다. 자연스레 이사벨에게 사랑을 느끼는 매튜, 하지만 이사벨은 테오와 떨어지려 하지 않고 세 사람의 특별한 관계는 계속되는데…

[출처 : 다음 영화]


'본능, 탐욕, 고립, 그리고 예술'


예술 공부를 하지 않은 내가 '예술이다. 아니다'라고 운운할 수는 없겠지만,

감독이 만들어낸 영상미는 예술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 이사벨(에바 그린)이 비너스 조각상의 모습으로 등장할 때는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오는 수준이었는데, 

반복되는 고전영화와의 장면 전환 역시 감독의 천재적인 재능을 그대로 보여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몽상가>들은 연출적으로나, 영상미, 배우들이 연기까지 삼박자가 완벽했다.

그래서인지 더 불편했다.


-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사벨과 테오, 매튜의 '에고(자아)'와 '이드(본능)'가 가득 차다 못해 폭발하는 모습, 그 자체 그대로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아마도 불편했으리라. 그렇게 그들은 자신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켜 버린다. 


그들을 보는 내내, 숨구멍 하나조차 찾을 수 없는 유리병 속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자아와 본능이 뒤엉켜 유리병은 뜨거운 입김으로 달아오르지만, 스스로 문을 만들거나 유리병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동시에 자신으로부터 쉴 새 없이 타오르는 열기가 유리병을 결국 깨뜨릴까 두려워한다.


-

영화 <몽상가들>의 여러 후기에서 '청춘'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철없음'과 '청춘'은 같은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종종 사람들은 '나는 영원히 피터팬처럼 살고 싶어.', '나는 철들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근데, 과연 '철 없이 사는 것'과 '청춘처럼 사는 것'을 동일시할 수 있을까.


철없다,
=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다.      

청춘,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①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②또는, 그 시절

[출처 : 네이버 사전]


이 둘은 사전적으로부터 다르다.

사리를 분별한 만한 지각이 없다는 얘기는 '내 멋대로', '나 꼴리는 대로'를 의미하고, 

결국, '철들고 싶지 않다.'는 말은 '내 인생을 책임지고 싶지 않아.'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내 멋대로'와 '인생을 책임지는 것' 역시 동일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철들고 싶지 않고, 내 멋대로 살고 싶어 하는 주변 사람들을 미루어 봤을 때,

그들의 인생에 매우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이기적이라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영화 <인투더와일드>

이와 관련해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편지 한 장만 남기고 가족들에게서 훌쩍 떠나버린다. 그가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기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도, 떠남도 모두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상처 때문에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길뿐이다.


훌쩍 떠나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이, 이사벨과 테오, 매튜의 삶과 자유가 낭만적이고 멋져 보이긴 하다. 하지만 그들 주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왜 보지 못하는 걸까. 존중과 배려 없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를 바 없다. 


-

미국 사상가 겸 문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욱 청춘의 정의를 고민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말해주듯

세상을 마주하지 못하는 청춘은 몽상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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