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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Nov 28. 2024

프란츠 카프카의 "성"

노랑잠수함의 허탈한 북리뷰

성  | 펭귄클래식 6

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홍성광 (옮긴이)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2008-05-26

원제 : Das Schloß (1926년)


 이 책 제목을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시절이다. 아마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본 것 같은데, 물론 읽지는 않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이 무척 야한 소설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도 여자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제목인 성을 性으로 상상했었다.     


 펭귄 클래식으로 이 책을 읽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야한 소설로 상상했던 성은 性이 아니었고, 城이었다.


 이 책을 읽는 데 꽤 오래 걸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어딘지 모를 시골 마을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고민과 생각,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정치질과 비루한 모습을 마치 마이크로 렌즈를 들이대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 같은 묘사...

 실수로 몇 페이지쯤 건너뛰었다고 한들 전혀 문제 될 것 같지 않은 그런 이야기의 전개다.     


 큰 줄거리는 이렇다.

 어떤 마을에 측량사로 채용된 남자 K는 아주 추운 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길을 뚫고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 심지어 측량사로 일을 시작할 방법조차 찾지 못해 쩔쩔매는 K는 성을 찾아간다. 가도 가도 성은 가까워지지 않고 모습조차 분명하게 알아볼 수 없다. 그러는 와중에 술집에서 만난 여급과 연애를 하게 되고, 마을 촌장의 배려로 학교 관리 일을 맡게 되지만 여전히 자신을 측량사로 채용한 건 누구이고 성의 어느 부서 담당인지를 알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꽤 분량이 많은 편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K가 측량사로 정식 부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그의 일을 해결해주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는 와중에 숙박업소 여주인, 마을 촌장, 학교 교사, 측량사와 눈이 맞아 결혼하기로 한 여자의 사랑을 빼앗는 데 성공하는 측량사의 조수, 심지어 마부의 사연까지, 온갖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주욱 늘어 놓는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한 줄이 내 머리를 꽝 때렸다.

 “...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그녀가 한 말은”

 * 작품은 완성되지 못하고 여기에서 중단된 채로 끝난다.     


 뭐라고?

 미완성이라고?

 그런데 고전 소설이라고 오랜 기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왔다고?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즈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어렵게 어렵게 K가 측량사로 마을에 정착하며 이야기가 끝나나 보다. 아니면 결국 실패하고 마을을 떠나며 끝날까?

 작품 해설에서 말하기를 카프카는 이 이야기를 K가 죽을 때쯤 마을에 정착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중단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책을 읽으며 꽤 오랜 세월이 흐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불과 일주일 남짓이나 될까 한 며칠간의 기록이다. 아마 카프카는 이 책을 쓰면서 시간의 흐름에 대해 딱히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싶다. 아침과 저녁이 연이어 등장하고 내키는 대로 새벽도 온다. 거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다.


 성을 읽으며 얼마 전에 읽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해설을 보니 이 책의 내용과 묘사, 등장 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시도가 있는 것 같다.

 정신분석학적인 시도에서부터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해석의 디딤돌이 될만한 것들은 다 붙여서 시도해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 느낌을 한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마치 화장실에서 뒤를 제대로 닦지 못하고 팬티를 입은 것 같은 느낌?”     


https://youtu.be/J8Y6LGyT5-c

 홍성광씨의 “카프카의 생애와 <성>”이라는 제목의 작품 해설 몇 줄 옮겨 본다.     

 * 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카프카를 평하며 ‘현대인의 정신상황을 정밀하게 기록하는 지진계’와 같다고 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뒤 카프카의 작품은 예언과 종교적인 측면에서 단테의 작품에 비유되었고, 철학적인 면에서는 실존주의로 해석되었으며, 기법상 비유의 차원에서는 특이하고 완벽한 상징법의 전범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카프카는 사후에 20세기 문학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특히 그의 이른바 ‘고독의 3부작’인 <소송>, <성>, <아메리카? 가운데 <성>은 카프카의 정신세계를 기대로 반양한 작품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아울러 20세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카프카의 작품은 읽을수록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만든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후기구조주의의 해체주의적 글 읽기에 있어 모범적 범례가 되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의 문맥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 마지막에 가서 K는 마부 게이슈테커의 임시 마부가 될 운명이지만 작품은 완성되지 못하고 중단된다. 그리고 이렇게 카프카의 삶과 작품은 끝나고 만다.     


 **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유대계 독일 작가로,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를 다룬 소설가이다.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구한 실존주의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는 평을 받는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라하의 독일어를 쓰는 중간계급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자수성가한 상인이며 독선적이었던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다.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그는 줄곧 남의 손에 키워졌는데, 그의 나이 두 살, 네 살 때 동생인 게오르크와 하인리히가 태어났지만 곧 죽었고, 이후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인 1889년에 여동생 엘리가, 또 1년 뒤에는 발리가, 그 2년 뒤에는 오틀라가 태어나지만, 이 세 자매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광기에 희생당하고 만다. 아버지와의 불화와 동생들의 잇단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는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낸다.     

1901년 프라하의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 진학한 카프카는 주로 문학과 예술사 강의에 흥미를 보였으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1906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1년간의 수습 기간을 마친 뒤 일반 보험 회사에 입사한다. 1908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 보험 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로는 죽기 2년 전인 1922년까지 그곳에서 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한편, 오후 2시에 퇴근하여 밤늦도록 글을 썼다. 이 무렵 유럽의 노동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카프카는 공무 출장과 노동자들과의 접촉 등 이곳에서의 업무를 통해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에서 개인의 소외와 무력감에 대해 보여주는 깊은 통찰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19년 각혈을 했으나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다 증세가 악화되어 결국 요양소와 여동생들의 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는 죽을 때까지 함께한 도라 디만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비로소 일찍이 맛보지 못한 삶의 애착과 행복을 경험한다. 도라는 그의 곁을 밤낮으로 지키며 간호했지만 1924년, 병약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출세,결혼 등의 중압감에 쫓기며 글을 쓰다가 폐결핵에 영양부족까지 겹쳐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카프카는 평생 불행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카프카는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도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유서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워줄 것을 부탁했을 만큼 쓰는 것 외의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12년에 『실종자』, 『변신』을 쓰기 시작했고, 1914년에는 『유형지에서』와 『심판』 집필에 들어갔다.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를 탈고했다. 1917년에 폐결핵이 발병하여 여러 곳으로 정양을 다니게 되고, 1922년에 『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결국 폐결핵으로 1924년에 빈 교외의 키어링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이 외에 대표작으로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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