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 Aug 27. 2023

제망매가

ㅡY의 1주기에 부쳐.


누구보다 영민했던 친구는 혹시 약학 말고 의학을 전공했더라면 그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추모식에서도 문득 생각했다. 의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기는, 그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니. 수석졸업했다고 그리고 조용히 "내조의 길을 걸었다"고 신문 부고난에 크게 실리는,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어야 했다.

우린 그때 너무 어렸고, 또 교만하기까지 해서

돈이 너무 많다는 건 단점이 아닐 거야, 했었다.


아니었다. 그 길은 너무 어렵고 너무 다르고 너무...  ... 그랬다.

그걸 조언이랍시고 했던 내 자신의 무지와 교만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친구가 내 연구실에 와서 입시홍보용 책자 발송하는 일을 (즐겁게) 도와주었던 걸 기억하는 지인은 그때를 회상하며 약국에 와서 공적 마스크나 코로나 자가검사키트 소분하는 일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그러기에는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이 "스포일되어" 있었고(이건 그녀 자신의 표현이다), 무엇보다 너무 많이 오래 아팠다.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반복적인 그 단순노동을 편안해 했을 만큼 그 삶은 대단히 번잡스럽고 자기소외적이었으며 외로웠다, 고

나도 반추한다.


靈駕여

겁이 다하여 말세가 되면 대천세계도 불타고 수미산과 큰 바다도 다 말라 없어지거늘

하물며 이 육신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걱정하는 고뇌를 어찌 여읠 수가 있겠는가

.............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는 것

그것은 나고 죽는 생멸법이니

낳다 없다 그것이 다 없어지면

고요한 열반락이 거기에 있네                         


-無常戒 중에서.


내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견딘다. 떠난 사람이 남은 자에게 내게 주고 간,

어쩌면 선물.


1년이 지났으므로 이제 가슴에 묻는다. 내 미안함과 회한까지도.

편히 쉬시게. 곧 따라 갈  것이니.

작가의 이전글 두 개의 <세상의 근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