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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Feb 11. 2024

몽당연필을 깎으며

- 갑진년 새해를 맞으며 하는 생각들

 단종된 크레용 타입의 아이라이너를 깎으며 새해 아침을 맞이했다. 뚜껑보다 더 짧아진 크레용은 이제 다시는 깎을 일이 없을 것이다. 여러 개를 사서 핸드백과 방, 사업장 여기저기 두고 쓰다가 이것만 남았다. 좋고 편리한 것많지만 굳이 제품을 고집했던 것은 부드럽게 그려지는 느낌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실은 깎아서 쓴다는 매력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연필을 깎지 않는다. 얼마 전 사업장에서 쓰는 연필의 끝이 무뎌지자 답답했는지 직원이 커터를 가져와 돌려 깎는 것을 보았다. 그도 나처럼 '깎아서 쓰는' 세대였던 것이다. 짧아진 아이라이너를 더는 미루지 말고 깎아야겠다 생각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어린 시절 다섯 형제의 연필을 깎아주는 건 아버지의 몫이었다. 당시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우리 아버지도 자식들을 알뜰히 챙겨주시는 분은 아니었지만 손톱과 연필은 꼭 아버지가 깎아주셨다. 아버지의 열쇠꾸러미에는  "쓰메끼리"라 부르던 길이 잘든 손톱깎기가 달려 있었다. 또 하나,  달력 뒷장으로 새 교과서의 겉장을 깨끗하게 싸 주셨는데 그것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다는 하나의 엄숙한 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았던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 큰언니는 아버지가 해주시던 일을 일정 부분 떠맡을 수밖에 없었지만 안 그래도 동생들에 치여 하고싶은 것을 많이 참고 살아야 했던 큰언니는 연필 깎아주는 것을 특히 귀찮아했다. 큰언니의 심기를 살펴 언니야, 하며 조심스레 필통을 내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 가서 잘 깎은 연필 여러 자루가 가지런히 담긴 필통 ㅡ대개는 플라스틱이나 양철로 된 필통에 그냥 담았고, 뛰기라도 하면 가방 속에서 연필 달랑거리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좀 있는 집 자식들은 자석 필통에 얌전히 꽂았다. 요즘과 달리  우리 시대 빈부의 차는 고작 그 정도였다 ㅡ을 열 때면 아주 뿌듯하고, 꽤 행복했다. 그거면 족했다.

 그렇게 해서 짧아진 몽당연필은 당연히 모나미볼펜 뒷자루에 꽂아서 더는 쥘 수 없을 때까지 썼다.

 잘 깎은 연필과 정갈하게  종이로 싼 교과서는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나도 이제 늙었는지 이렇게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큰언니 생각에 눈물 짓는 날이 많아졌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출퇴근하게 되면서 어머니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되었다.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을 때 그 악역을 맡은 것도 나였고, 친정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서울로 모셔온 것도 나였고, 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집 잠을 주무신 것도 내 방에서였다. 그 길로 어머니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 어머니는 서울로 오시는 동안 내 음전한 운전 솜씨를 칭찬하셨고 메르세데스-벤츠가 뭔지도 모르셨지만 뒷좌석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셔서 차가 참 편~안하다 하셨고, 니 방이 좋네 내 고마 여기서 살모 안 되나 하셨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하며,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고 누군가 위로하고 면죄부를 주더라도 결코 미화하거나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으면서 두고두고 자신을 벌 주고 있다. 나는 그때 내가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으셨으며 우리가 그런 어머니를, 아무리 시설이 좋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결국은 현대판 고려장일 수 밖에 없는, 요양병원으로 모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도 곧 아버지와 어머니, 큰언니를 따라가겠지만 살고 싶은 곳에서 살다가 죽고 싶은 욕심은 있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나는 집에서 죽고 싶다. 연명의료를 포기한다는 의향서를 이미 작성했고 그 내용이 담긴 카드를 늘 지니고 다닌다. 불감청 고소원, 비명횡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럴 만한 큰 덕은 내가 쌓은 바가 없으니 어림도 없을 터.

  새로 옮겨간 사업장이 시쳇말로 폭망할 조짐이 보이는데 돌파하거나  극복할 의지를 불태우기는커녕 전혀  나답지 않게 , 내 오랜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마음을 정했다. 시골 어느 한적한 곳에 작은 약국 하나 차리고 진열대 위에 쌓인 먼지나 털어가면서 요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지만 자식 생각해서 돈 아끼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돌보면서 (아니 같이 늙어가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던 꿈. 그리고 낡은 책상 하나면 족하다던 소박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지난했던 꿈을.

 갑진년 새해는, 이렇게 또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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