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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Jul 11. 2024

다시 서쪽바다로

          -개심사 그리고 파도리가 있는.

  인생이 알 수 없는 것은 길을 잘 알며 반듯한 길로만 다닌다고 믿었던 사람에게도 가끔은 오독에서 비롯된 길-그것도 아주 중요한-을 만나는 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운명이 이끈 것인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오래 전 문학판을 기웃거리던 시절에 모항이란 단어(혹은 지명)에 꽂힌 적이 있다. 지평이라든가 음암이라든가 또 안녕동이나 초록리가 그러하듯 어떤 지명은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작품을 낳지는  못하더라도.


 스마트 폰도 없고 네비도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어느 서쪽으로 마냥 달려 해질녘쯤 모항에 가까스로 닿았다. 부스스한 시간들 속에 우연히 접한 안도현의 <모항가는 길> 에서 어미 모(母)를 떠올리고는 마치 자궁처럼 안온한 항구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곳에 가면 어머니의 품인 양 마음놓고 한번 펑펑 울 수도 있겠다고. 

 모항은 그러나 어미 모가 아니라 띠를 뜻하는 茅자를 쓰며, 시인은 태안이 아니라 더 남쪽 바다의 모항으로 길을 떠났던 것임을 아주 나중에 알았다. 아무려나. 방파제에서 바라본 서해의 일몰은 가슴을 뜨겁게 했고, "거드럭거리는" 그 모항이 아니라도 나는 괜찮았다.


 몇 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바다를, 파도를, 그리고 허락한다면 모항의 그 일몰을 다시 보고 싶어 훌쩍 길을 떠났는데 모항 가는 길 어느 언저리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이정표 하나가 파도리였다. 단박 사로잡혔고, 되돌려 목표를 다시 잡았다.

 

 파도리는 아주 작은 동네였다. 어디에도 바다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좁은 마을길 사이로 풀칠하듯 성의없게 시멘트를 바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자 아주 좁은 바다가 한뼘 펼쳐졌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그런 바다였다.

 세월이 만든 바위들과 모래톱 사이에서 그 세월만큼 닳아버린 돌 몇 개를 주워와  넖은 수반에  담고 염주처럼 묵주처럼 문대며 살았다. 모항도 파도리도 문학판도 잊고 허겁지겁 그리 살았다.


  다시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동쪽도 아니고 남쪽도 아닌 서쪽 그 바다. 나를 대신해 12시간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오래 전 인연이 있는 청년약국이 최근 아주 어려워져서 주 1회는 문을 닫고 파트를 뛸 수 있겠노라고 연락이 왔다.  맏음직한 사람이었으니 나는 좋았지만 그가 처한 재정적 상황이 마음 아팠다. 박사과정까지 마쳤던 그도 어딘가에 사로잡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의 길로  나섰고, 그리고 망하고, 그 뒤치닥거리로 힘들게 가고 있었던 것이다.

  

  파도리 석 자를 검색창에 입력하자  해식동굴, 인생샷, 태안 물때 등의 연관검색어가 주르르 떴다.  잘 차려입은 남녀가 동굴 앞에서 역광으로 또 순광으로 찍은 (인생)사진들이 모니터 한가득이었다. 십오 년 전 나는 그저 이름에 혹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다를 찾아갔을 뿐이지만 천연의 해식 동굴발견해 낸 눈 좋은 누군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늘 태안 앞바다의 2차 만조는 12시 58분.  4시경이면 동굴에 닿을 만큼 물이 빠질 터였다. 어디서 시간을 보내지.... 아 개심사!  서산 개심사는 모항과 더불어 내 어떤 매혹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변한듯 변하지 않은 숲길을 걸어 세심동 개심사에 닿았다.  

 그새 계곡의 수량이 늘어  '세심'하기에 적합한 도량이 된 건가. 개심사에 물소리라니. 생경했다.

 영지의 다리는 두 배로 굵어졌고 (극락으로 들어가는 길이 넓어졌겠구나!) 여전히 그대로인 서나무와 쓰러져 등걸만 남은 팽나무,  그리고 배롱나무.  영지의 상징이던 배롱나무는 150년 수령을 자랑한다는 간판을 걸쳤다.   

 마당에 멋진 청벚꽃나무가 있는 명부전에 들어 이제는 나와 다른  세상으로 떠난  여럿을 떠올리며 지장보살께 깊은 절을 했다. 그들이 명부에서 평온하기를 바라며, 한사람 한사람 용히 이름을 불렀다.  

 지장보살의 왼쪽이 사람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는 무독귀왕이라고 한다. 과연 지극히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불전함에다 갖고 있던 현금을 몽땅 집어넣었다.


 절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심검당에서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삽살개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사자를 꼭 닮은 순한 개였다. 절집에 있는 개는 절을 닮는가. 화암사 검둥개가 그러하더니.

 자두와 (홍)매실과 감과 모과가 익고 있는 이곳은 늘 느끼는 거지만 참 다정한 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본 서쪽 바다는 좀 낯설었다. 이렇게 너른 바다였나 싶을 만큼.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면서 유치한 짓 하나를 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글쓰기, 그거 나도 한번은 해보고 싶었거든.  

 모래밭에 쓰는 글이 무슨 힘이 있을까마는 아마도 새기고 싶었던 게지. 마음 깊숙한 어디에. 새기고 맺히도록 꾹꾹.

 만조가 지나면서 물이 조금 빠졌지만 여전히 위험한 해변을 지나  마치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처럼  허겁지겁  돌산을 넘고 또 넘어 해식동굴 앞에 섰다.

  파도와 바람 소리에  묻혀  "스마일" 하는 내 목소리를 폰이 알아듣지 못해 사진찍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인생 샷을 찍는 곳이라는데 싶어 동굴이 울리도록 여러 번 스마일을 외치다 피식 웃었다. 지금도 하루에 두어 번씩 바다에 잠겼다 드러냈다를 반복하는 이 동굴도 끝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바다에 잠기든 아니면 침식돼 모래로 스러지든.  모든 것이 무상하다. 하물며 고작 남짓 사는 인생이야 말해 무엇할까.  

돌아오는 길에 갈매기가 터라도 잡았는지 또 올라 앉아 있어 한 장 찍어주었다.

 잘 있어라. 또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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