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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Mar 19. 2017

매화나무 아래서


집안에 먼 친척뻘이 되는,  내 젊은 날 많은 힘이 되어주시던 형님이 당뇨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기에 먼 길을 달려 병문안을 갔다. 실로 오랜만의 상봉이었다. 어쩌면 바쁘다는 것은 핑계에 가까웠을 것이다. 우리는 얼싸안으며 나는 더 빨리 오지 못한 죄송함에 얼굴을 들지 못했고 형님은 “사는 것은 누구나 다 똑같단다. 가족들도 일 년에 몇 번이나 만나 지겠냐, 우리네 바쁜 일상을 이해하고도 남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하시며 그저 내 등을 토닥여주셨다.      


78세, 아직은 먼 길을 준비하기엔 이른데 형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것 같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7남매의 맏며느리, 형님은 많이 배우지는 못하셨어도 돈복은 있으셨던 모양으로 남편이 가져다준 박봉에 당신의 좋은 뜨개질 솜씨로 알뜰하게도 돈을 모아 몇 군데 땅을 사놓고 대도시로 이사했는데 소도시에 사놓은 땅이 뛰고 뛰어 비교적 경제적 부를 누리셨단다. 내가 본 형님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현모양처’ 셨는데 당신에게는 소박하기가 그지없으셨다. 술은 입도 못 대면서 당신의 남편을 위해 집안에 약술로 가득 채웠고 양말은 물론 속옷까지 풀 먹여 다림질하여 대령했더란다. 자식들이 취직을 하자 생활비는 한 푼도 받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번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더 보태서 결혼도 하기 전에 서울에 아파트를 사주었다고도 했다. 그런 형님이 내게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뭣 할 것이냐, 너는 절대로 그 누구에게나 네 모든 것을 다 주지는 말아라.”하신다.     


형님의 시댁은 윗대서부터 대대로 답답할 정도로 말없는 집안 내력이 있는데 어쩌면 두 남매가 그대로 꼭 닮았다 했다. “애들이 어릴 적에 속 썩임 없이 많이 착했다. 그래서 참 고마웠는데 커서는 그 말없음이 내가 참 많이도 외롭더라. 당뇨가 심해서 병원 입 퇴원을 몇 번 하기는 했어도 딸은 퇴근하면 방안에 들어앉아 물어본 말에 대꾸도 없지,  아들과 며느리는 병문안을 올 때마다 2인실 침대가 비어있으면 반대편에 앉아 한 시간이 넘도록 지 자식과 셋이 뭣이 그리 좋은지 웃고 떠들고 엄마는 투명인간 취급하는데 속이 터져 보다 못해 쫒아버렸다.’는 것이다.  '서운하실 법도 하시겠다. 그러면 두 내외를 불러다가 이러이러하니 내가 서운하다.' 그렇게 말을 해 보셨냐니까 “나이가 몇 갠데 그것을 꼭 말을 해야 알겠냐~!! ” 하시는데  미뤄 짐작하건대 하루 이틀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고 소통의 부재가 쌓여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꽤 많은 세월을 보육현장에 있었다. ‘나이 들면 철든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철이란 것은 어쩌면 개인의 운명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돌이 지나고 걸음마를 때기 시작하면 곧 대소변을 가리게 되며 좋고 싫음을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을 한다.  학교에 입학하는 시기가 되는 6~7세가 되면 글을 쓰고 셈을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어른과의 대화가 가능한 나이가 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거나 집안 환경이 열악하여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경우가 있고, 가장 문제가 되는 또 한 가지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나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두 부모 중 하나만이라도 정상적인 사고를 지녔다면 아이를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이 지극히 정상으로 태어났어도 어린아이는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어른들이 제대로 된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비뚤어지기 십상이다. 이미 삐뚤어 가는 아이는 부모가 아무리 가르쳐준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고 또 많은 상처를 받고 나서  스스로 일어서기 전에는 철이 들기 어려울 것이다.  늦게라도 철드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요즘 세상에는 부모 등에 빨대를 꼽는 자식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사회적으로도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형님, 지 자식을 낳아보고도 부모 속을 모른다면 말이 안 되는데, 형님이 그동안 다 해주셨으니 걔가 뭘 알겠어요. 형님 탓도 있습니다. 다음에 오거든 둘을 꼭 불러다가 말을 하세요. 이외로 단순한 사람들은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분명하게 말을 했는데도 애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나 같으면 아예 인연을 끊을 거유~!!” 했는데 형님 왈, 내버려 두라신다. ㅠㅜ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햇볕은 따스했고 새가 울었다. 바야흐로 봄이다. 매화 밭에 서 있으려니 취한 듯 머리가 아득하다. 이 좋은 날, 형님을 모시고 왔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울컥 죄송한 마음이 든다.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멀리 와 버렸고 이제는 정말 전화를 자주 드려야지 생각한다.      


윙윙거리는 벌의 날갯짓이 듣기 좋아 찍으려니 벌은 어찌나 오두방정을 떨든지 포기했는데 매화나무 아래 고무 통에 뭐가 있다. 들여다보니 감사패와 공로패가 그것도 꽤 많이... 흙먼지가 쌓인 채로 담겨있다. 1982년도. 35여 년 전에 받은 상패들이다. 어쩌면 이 매화나무를 심은 분은 이미 작고하신 게 아닐까 싶다. 안 그러면 당신이 받은 자랑스러운 상패를 저리 내놓으실리야 없지.  나무가 잘 전정이 된 것을 보니 그 자식들이 외지에서 왔다간 모양인 것일 게다. 공로패나 감사패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공식적인 행사장에서 낭독하고 전달받는, 개인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상패이지만 자식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그렇더라도 굳이 밖에 내어놓아 사람들 눈에 뜨이게 하고 눈비를 맡게 해서 쓰다니 원~ 씁쓸하다.


비록 어르신은 안 계시지만 그분이 심은 매화나무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향기를 실어 나르고 벌과 나비를 불러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매실은 술에 담겨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니, 그리고 여기 내가 매화향기에 취해 사진을 찍고 있으니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2017.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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