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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aron Apr 20. 2016

비 오는 날의 수채화

Macaron 감성살롱

내 손에 붓이 있다면. 지금 하늘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그 붓에 적셔 내 마음 허공에 우산을 하나 그려주고 싶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억의 소나기로부터 이제 겨우 빗물이 말라 오들거림을 겨우 숨 고르고 있는 내 머리 위로 우산 하나 그려주고 싶다.

날은 풀리고 봄은 다가오는데 따스한 봄햇살이 아무리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도 봄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음지가 마음 언저리에는 존재한다. 그곳은 아직 녹지 못한 눈이 웅크리고 있는 작은 겨울. 수많은 시간과 인연들이 거쳐가고 점점 그 시간들을 덤덤하게 마주하는 법을 배워가지만 마주하는 기억의 흔적의 수만큼 작은 겨울을 품은 음지들이 내 마음에 얼룩덜룩 돋아나 있다.

한 번 들어온 것들은 거의 없앨 수는 있어도 완벽히 없앨 수 없다. 추억, 기억이란 것들은 아무리 기력이 쇠하고 더이상 아무 힘을 쓰지 못해도자기 한 몸 누일 만큼의 작은 땅을 뻔뻔하게 요구하고 내 마음에 드러눕는다. 어차피 1년 365일 평생 햇빛 한 번 닿지 않을 쓸모없은 귀퉁이 음지 한 뼘 주어서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말이다.

꼭 비 오는 날이면 먹먹해진다. 비 향기가 나는 날이면 표정은 평온한데 마음 한 켠이 자박하게 내려앉는다. 가만히 마음으로 울고 싶다. 내 마음 한 가운데 있는 성루에 올라 관망해 본다. 좁았지만 항상 푸르른 새싹과 밝은 햇살만 가득하던 내 영지. 전보다 많이 넓어졌지만 조그마한 음지들 때문에 흡사 얼룩진 것처럼 보이는 내 마음이란 영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비 오는 날이면 그 빗물을 붓에 찍어 내 머리 위로 작은 우산 하나 그려주는 것 뿐. 원치 않아도 공존할 수 밖에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인가 보다, 그리고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자유의지로 택할 수 없는 숙명이고. 얼룩덜룩해진 내 마음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지나간 세월만큼 돋아나는 피부 위 검버섯처럼 내 마음도 같이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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