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정 Oct 20. 2023

출판사의 책 협찬에 대하여

2020. 8. 17. 

권수정의 안물안궁 시리즈 (1) 출판사의 책 협찬에 대하여


북스타그램을 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서평을 썼던 적이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처음으로 나름 인지도 있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을 때, 첨으로 책을 협찬받는다는 기쁨에 냉큼 수락했었다. 두 권의 단편 소설을 받았고 서평을 썼다. 다른 한 번은 작은 출판사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힘썼던 여러 여성의 연성문을 모은 책을 제안했는데,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 수락하고 서평을 썼다. 그러나 두어 번의 경험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협찬 받아 서평을 쓰는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하지 않기로 했다.

첫째, 시간이 없다. 책을 읽는 데도 시간이 들어가고 서평을 쓰는 데도 시간이 들어간다. 집에는 내가 읽고 싶어서, 내가 선별해서 사다 둔 책이 넘쳐난다. 전업 서평가도 아니고 직장 다니며 남는 시간에 짬짬이 읽고 쓸 뿐인데, 나와 취향이 맞을지 안 맞을지도 알 수 없는 책을 위해 시간을 들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서평은 더하다. 출판사에서 책 제공의 대가로 원하는 것이 구조적이고 짜임새 있는 고오급 서평은 아니라고 해도, ‘내’가 대충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짜로 받은 책에 대충 서평을 쓴다는 것도 별로 좋은 자세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스트레스가 된다.


둘째, 선별하기가 귀찮다. 다른 북스타그래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전부 다 수락할 수 없으니 나름의 기준을 두고 선별해서 받는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하자면 기준을 세워야겠고, 연락이 오면 그 기준을 바탕으로  수락하든 거절하든 답장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준을 세우는 것은 ‘일’이 아닌가? 정중히 거절하는 답장을 적어 보내는 것은 ‘일’이 아닌가? 둘 다 나에게는 신경 쓰이고 품이 드는 일이다. 언제부턴가는 서평 요청을 아예 읽지 않고 있다. 유진목의 말처럼, 그냥 ‘셔터를 내려’버렸다.


셋째, 페이가 없다. 책을 협찬해주겠다는 출판사 치고, 돈까지 주겠다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앞에서 말했듯, 책 협찬에는 ‘읽고 쓰는’ 노동이 수반된다. 만 몇 천원 아끼겠다고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도 모를 책을 받아서,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서너 시간 이상 소요될 일을 한다는 건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영세한 출판 업계의 현실을 알고 있고 이런 방식의 홍보를 그 자체로 비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나는 돈을 준다면 생각이라도 해보겠지만, 책만 주면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출판사에서 모집하는 서평단에 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먼저'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거칠게 말해, 홍보를 대리해달라는 제안에 돈이 빠져있다는 건 좀 몰염치하지 않나 싶다.


넷째, 내가 아니어도 된다. 위와 이어지는 이유인데, 나한테만 제안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북스타그래머들에게 같은 제안을 뿌리면 수락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제안에는 돈이 빠져있다. 굳이 '나'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페이 제안이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나도 별 미안함 없이 거절하면 되는 것이다(그럼에도 거절 메시지는 보내기 힘들다).


다섯째, 신간에 관심이 없다. 대체로 서평 제안은 신간을 홍보하기 위해 오는데, 나는 누구보다 먼저 신간을 읽고 싶은 욕심도, 그래서 책이 어떻다는 건지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차라리 믿을 만한 분들이 먼저 읽고 판단해주면, 그걸 보고 읽든 말든 하는 게 차라리 좋다. 인생은 짧고 시간은 없는데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 감별사를 자처하겠는가. 북스타그램의 제1목적은 내 독서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제2목적은 약간의 과시와 읽기에 대한 자발적 강제이고, 제3목적이 있다면 좋은 책을 알리자는 것이다. 내가 선별해서 읽은 책 중에 좋은 것이 있다면 추천이야 하겠지만, 굳이 나서고 싶진 않다는 거다. 검증(자체에 회의를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된 책만 읽기에도 24시간은 짧다.


이외에도 돈 들여 산 것이 아닌 만큼 어지간히 나쁘지 않으면 혹평을 안(못) 하게 되어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등 뭐 여러 이유가 있고, 고로 앞으로도 별 일 없으면 출판사에서 받는 책으로 서평을 쓸 일은 없을 거다.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살 수 있을 만큼의 벌이가 있어 기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