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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Oct 20. 2023

책스타그램에 대한 단상

2020. 9. 5. 

권수정의 안물안궁 시리즈 (2) 책스타그램에 대한 단상


첫 인스타그램의 시작은 다들 그렇듯 일상스타그램이었다. 시시콜콜하게 먹고 마신 것과 간 곳과 생각한 것과.. 그런 것들을 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올리고 싶은 책도, 공유하고 싶은 문장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자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계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계정을 만든 후로는 일상 계정을 지워버렸다. 앞으로도 밥 한 번 먹을 일 없을 중고등학교 동창의 일상을 염탐하고, 잘나가고 돈 잘 버는 지인들의 삶을 구경하는 일이 시시하다고 느껴졌다. 뭐 여기까진 그냥 그랬다는 얘기고, 책 계정이 주가 되면서 일상을 여럿 노출하게 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정체성은 책스타그램이다!

책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세운 나름대로의 팔로잉 기준이자, 이 사회망 속에서 누군가와 관계하게 될 때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다. 책을 읽고 자기의 언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과 소통하겠다는 원칙이다. 그런 계정을 발견한다고 해서 모두 팔로잉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책을 베이스로 한 계정이어야 하고, 자기의 언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어야 하고, 읽는 관심사가 나와 너무 멀지 않아야 한다. 내 계정인데 좀 까탈스럽게 굴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여튼 이런 원칙 때문인지 팔로워 수에 비해 팔로잉에 박한 편인데, 가끔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1분에 2-30개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홀연히 사라지는 계정들이 있다. 내 글이 결코 짧지 않으니 대단한 속독가가 아니고서야 1분 동안 그 글을 다 읽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럴 때의 그 ‘좋아요’ 들은 그야말로 관심을 갈구하는 신호처럼 보인다. 자기 좀 봐달라는 건가?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어쩌라고.


SNS상의 인간관계가 아무렴 피상적이라고 해도, 나는 그런 방식으로 관계맺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어 그와 친해지고 싶다면, 자신의 존재감 표출에 힘쓰는 것도 좋지만 먼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게 순서다. 내가 쓰는 서평조차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소통이나 교류를 바란다는 게 무슨 어불성설인가.


팔로잉 수를 일부러 낮게 제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게시글의 수를 제한하는 효과도 있어 더욱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우리의 일상은 너무 많은 것들로 가득 차있고, 그 과잉 속에서 누군가의 글을 꼼꼼히 읽고 진심으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게 노출되는 글의 수를 반드시 줄여야만 한다. 이 글 저 글 다 읽어보고 댓글 달기에는 24시간이 모자라다. SNS를 인생의 낭비가 되게 하지 않으려면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밀도 있게 교류해야 한다. 그들에게 시간을 들이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사람을 바운더리에 들일 수 없다.


책스타그램을 하는 동안 오래 응원해주고 지켜봐준 고마운 사람들을 덥석 팔로잉하고 싶다가도, 기준을 무너뜨리기 어려워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놈의 팔로워니 팔로잉이니 하는 게 뭐라고, 사람 고민하게 하고 섭섭하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오백 명의 글도 다 읽을 자신이 없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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