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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Oct 20. 2023

인스타그램 속의 언어 오염

2021. 3. 4. 

권수정의 안물안궁 시리즈 (3) 인스타그램 속의 언어 오염


좀 더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서 몇 가지 시도중인 것 중 하나는, 주말에 인스타그램을 지워두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진정한 휴식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이런저런 피드를 구경하며 밍기적거리는 것이 휴식의 전부가 아닐 텐데. 인스타그램의 ‘둘러보기’ 에는 손가락 한번 튕길 때마다 새로운 콘텐츠가 우수수 올라온다. 하나 둘 눌러보다 보면 어느새 삼십 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글을 쓰다가 사전을 검색하려고 핸드폰을 열었다가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누르고 한참을 보다가 정작 하려던 일은 못한 채 “내가 뭐 하려고 핸드폰 켰더라?” 묻게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은 왜 이렇게 중독적인 걸까. 솔직히, 팔로잉하는 책친구들의 피드는 각 잡고 읽지 않으면 그렇게 재밌지 않다. 각 잡고 읽어도 재밌진 않다. 대체로 그 사람들은 이미지가 아니라 글로, 그것도 아주 긴긴 ‘글'로 이야기하니까. 나는 그들의 콘텐츠에서 재미가 아닌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둘러보기에 뜨는 콘텐츠들은 철저히 ‘이미지화'되어 있다. 모든 텍스트를 이미지에 넣어두고 이미지를 읽게 만드는데, 대체로 옐로우 저널리즘에 가까울 정도로 자극적인 썸네일과 오염된 언어들로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한다.

언어 오염의 예시 몇가지.


‘폭로’, ‘고발’ 과 같은 아무렇게나 아무 일에나 쓴다. 고발은 애초에 '범죄를 신고한다'는 뜻이고, 폭로 또한 기본적으로 나쁜 것, 부정적인 것을 드러내어 밝힌다는 뜻이다. 학교폭력 미투가 번지자 이와 대조적으로 선행을 했던 연예인들의 행적을 밝힌답시고 폭로니 고발이니 하는 말을 너무 쉽게도 쓴다. 가슴이 철렁해서 게시물을 눌러본 사람들은 이내 안도하고, 몇몇은 ‘낚였다’고 조금은 분노하지만 그냥 그뿐이다.


인성이 ‘논란'이라고 해서 들어가보면, 민트초코나 부먹에 대한 기호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허탈하다. 한두 번은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의 가벼운 유머로 이해했지만, 갈수록 웃고 넘길 수준이 아니다. 제품마다 따라붙는 '맛집'도 마찬가지다. 굿즈 맛집, 셔츠 맛집.. 맛보면 맛이 나나? 이쯤 되면 정말 음식에 미친 게 아닐까?


편의를 위해 별걸 다 줄여쓰고(별다줄), 글자의 모양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던 것까지만 해도(KIN, 커여워)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아무렴 언어의 사회성을 인정하고 싶어도, 한 단어가 가진 고유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떤 계정주들은 초등학생도 알 만한 맞춤법을 일부러 틀린다. 사람들이 지적하는 댓글을 달게 만들기 위해서다. 게시물의 화제성을 위해서는 일부러가 ‘일부로’가 되든, 주어와 술어가 뒤바뀌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다.


지상파 방송이나 주요 언론사들의 기능이 중요했을 시절에는 자정을 요구하고 책임이라도 물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매체도 콘텐츠를 양산하는 생산자도 너무 많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나 혼자 너무 진지한 걸까? 재밌어서, 유행이라서 아무렇게나 쓰이는 언어들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이대로라면, 3년 후에는? 10년 후에는?


이렇게 ‘요즘 세대’와 ‘요즘 세태’를 염려하는 걸 보니 꼰대가 되어가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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