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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Oct 24. 2023

[시즌2] ep 3. 평생 단 하나의 운동을 한다면

2023. 4. 17. 

나는 키가 작다. 키가 작은 건 크게 불만이 없는데, 키가 작으니 상대적으로 다리도 짧다. 다리가 짧으면 얇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하필 몸에서 가장 튼튼한 부위가 하체다. 나이가 들면서 젖살이 빠졌는지 어릴 때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평생의 콤플렉스는 하체였다. 여리여리한 허벅지, 부러질 것처럼 얇은 종아리와 발목을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다.


한때는 하체비만의 저주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열심히 헬스장에 다녔다. 1:1 트레이닝도 받아보고, 힙어브덕션, 파워레그프레스, 라잉레그컬 등 이름도 어려운 하체기구들을 돌며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행여나 ‘헬창’들이 나를 보고 자세가 잘못됐다고 생각할까 봐 기구별 사용법을 알려주는 운동 유튜브도 많이 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를 찾아보고 공부할수록 머리가 명쾌해지기는커녕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스쿼트는 사실 허벅지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안 그래도 허벅지가 콤플렉스인데 여기서 더 튼튼해지면 어떡하지? 살이 잘 빠지는 런닝머신 속도는 따로 있다고? 대체 뭘 이렇게 알아야 할 게 많은지. 인터넷과 유튜브에 떠도는 온갖 정보에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도 여전히 정보를 습득하고 정리하는 일에 걸리는 시간은 별로 줄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쓸데없는 염려가 늘었고,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늘었기 때문일 거다.


헬스 유튜브를 찾아 볼 때마다 운동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여성들이 아무리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해도 근육으로 우락부락한 몸이 될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런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그냥 운동이나 더 하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운동을 해보니 몸에서 근육의 비중을 늘리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온 힘을 쥐어짜 웨이트를 하고 탄단지를 맞춰 식사를 챙겨 먹어도 간신히 생길까 말까 하는 게 근육이었다. 나처럼 기구 몇 가지 깔짝댄다고 해서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걱정은 그만하고 운동이나 하자. 그렇게 몇 달 저녁을 헬스장에서 보냈다. 매일 거울 앞에서 눈바디를 찍을 때마다 배가 들어가고 팔뚝살도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팔운동을 하고 나면 늘 아프던 승모근 주위에 통증이 심해졌고, 하체운동을 할수록 하체는 더 튼튼해지고 내가 바라는 모양과 멀어져가는 듯했다. 함께 운동을 다니던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내 몸은 기본적으로 살결이 단단하고 근육이 잡혀 있는 편이었는데, 이 몸상태에서 내가 꿈꾸는 여리여리하고 날씬한 하체를 만드는 데에 웨이트 트레이닝이 적합한 운동인지 점점 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헬스장을 더이상 나가지 못하게 됐고, 우연히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내게 필요했던 운동은 요가라고! 전문적으로 기술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헬스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근육을 단단하게 강화시키고 고립시키는 운동이라면, 요가는 오랫동안 굳은 상태로 살아왔던 몸을 풀고, 이완하고, 확장하는 운동이었다. 요가를 깊이 수련하고 고난도의 동작을 시도할수록 헬스 못지않은 근력이 필요해지지만, 초보적인 수련에서는 스트레칭성 동작을 주로 시도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기지개 켜는 개 자세를 의미하는 ‘아도무카스바나아사나’를 할 때면 허벅지와 종아리 뒤쪽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자극이 느껴졌다.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고통을 즐긴다는 변태처럼 이상하게도 자꾸만 느끼고 싶은 고통이었다.


앞뒤로 다리를 찢는 하누만아사나를 할 때도, 가부좌 자세인 파드마아사나를 짤 때도, 몸은 너무 아팠지만 머릿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동작에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몸으로 회복되고 싶다고. 우리가 아직 어리고, 유연하고, 부드러운 몸을 가지고 있었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요가를 하면서 내가 오랫동안 골반뼈가 앞으로 쏠린 전방경사 상태로 살아왔다는 것과, 그래서 허벅지 근육이 볼록 발달해 있었다는 것, 늘 앉아서 일하던 습관으로 서혜부 주변이 심하게 굳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상태에서 마냥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달렸다면 근육은 늘었을지언정 몸매는 더 못나게 됐을지도 모른다.


더디지만 요가를 하면서 틀어진 몸은 조금씩 회복됐다. 골반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오래 달고 살았던 생리통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 처음 헬스를 시작했을 때 내가 바랐던 여리여리한 하체는 아직(?) 갖지 못했지만, 나는 요가를 거쳐 만들어 낸 몸의 변화가 퍽 마음에 든다. 굳어지고 뭉친 근육을 시원하게 늘려낼 때마다, 점점 더 몸이 내가 바라는 모양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행여나 누군가는 요가를 스트레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운동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요가를 하면서 느낀 더 깊고 넓은 의미들을 한 편의 글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요가를 그냥 스트레칭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그 스트레칭을 한번 시작해보라고. 때로는 강한 힘을 쌓는 것보다 유연함을 기르는 게 먼저라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유연함이 더 시급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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