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러운 아오니 온천 ( 일본 아오모리 여행기 4)
이틀간 머물렀던 스카유 온천을 떠나 도착한 곳은 아오니 온천이었다. 온전히 호롱불에 의존해 지내야 한다니 눈과 귀가 어두운 나로선 두려운 곳이기도 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한 곳이라는 것은 알고 왔지만, 이렇게 깊은 산골에 있을 줄이야. 대형버스는 출입이 불가능해 우리 일행은 작은 버스 세대에 나눠 타고 이동했다.
버스가 갈지 자(之)로 눈 덮인 산길을 내달리니 겁 많은 나로선 위기의 연속이었다. 마치 눈썰매가 달리는 듯 거침없었다. 안전벨트에 의지한 채 눈을 감고 있으려니 가슴이 뛰었다. 아무 두려움 없이 어깨에 기대 잠든 딸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길이 언제 끝나나 궁금해 실눈 떠 보니 출발할 때 눈길도 무서웠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버스는 눈 터널을 쏜살같이 지나고 있었다.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작은 버스로 1000m 넘는 높은 산을 넘는다는 것은 “스릴 있다”느낄 수도 있겠지만 곡예 중의 곡예였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오래전 놀이공원에서 느껴봤던 급경사에 눈을 번쩍 떠 보니 이 곳 저 곳 호롱불을 밝힌 고풍스러운 목조건물 앞이었다. 소형버스 세울 공간도 옹색한 좁은 계곡이었다. 숙박하는 방은 물론 다다미방이고 건물이 향나무로 지어져 실내에서 풍기는 냄새가 좋았다. 곳곳에 우리나라 50년대 농촌에서 볼 수 있었던 호롱불이 있고 난방 역시 석유곤로였다.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듯 적절하게 다음날 아침까지 필요할 만큼 연료를 채워놓았다. 어두컴컴한 복도와 다다미방... 밤이 되면 불편한 시력을 가진 나에겐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동하는 료칸마다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어 새로운 여행지에 온 듯 느껴졌다.
온천 탕 역시 가마솥과 노천 선녀탕, 눈 내리는 정경을 볼 수 있는 실내탕 등 아기자기했다. 전통을 이어가는 고집스러운 곳이다. 첨단을 달리는 일본인이 과거 모습 그대로인 온천을 즐기기 위해 위험천만의 계곡을 지나 찾아오는 것을 보면 전통이란 참으로 오묘하고 소중한 것이다. 40년 전 동경의 긴자에서 가락국수를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가락국수 맛이 특별히 좋아 오기보다는 한결같은 조리방식과 맛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기에 때문에 손님이 많았고, 나 역시 꼭 가봐야 할 집으로 그 집을 소개받았던 기억이 났다. 국숫집 주인은 일본 명문 동경대학교 법문학부 출신인데 가업이기에 자신도 대를 이었고 자식에게도 권장코자 한다고 했다.
고풍스럽고 정중한 식사대접은 이곳도 변함없었다. 주문을 받을 때마다 한 잔씩 주인장이 직접 심혈을 기울여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 맛도 일품이었다. 마음까지 고즈넉한 이곳 매력에 처음의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