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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경 Mar 17. 2016

김창주라는 남자(1939.5.2~) 11

눈 속을 걷다 ( 일본 아오모리 여행기 5 )

 유카타를 걸치고 아오니 온천 탐방에 나섰다. 다리 같기도 하고 오솔길 같기도 한 길을 지나 도착한 노천탕은 지붕은 덮여 있으나 사방이 갈대로 엮은 방풍벽으로 둘려 있어 유심히 보면 밖에서 살짝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었다. 살짝 안개 낀 날씨에 수증기가 연기처럼 솟아오르니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니 양 옆에 쌓인 5-6m 높이의 눈벽이 보였다. 이곳은 눈이 하루 종일 내리지만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아 부드럽고 새하얀 눈이 그대로 간직된다. 그 설벽에 누우면 얼마나 부드럽고 푹신할까 파묻혀 보고 싶었다. 비록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호기 있게 눈 속으로 뛰어들었다. 발끝에 칼날 같이 예리한 무언가가 닿아 섬뜩했지만 바라보던 이들이 박수를 치니 용기백배, 눈덩이를 몸에 안고 뒹굴어댔다.

 눈 속에 파묻혔다 다시 탕에 들어와 몸을 녹이니 온 몸이 찌르르했다. 몇 번이고 반복하니 재미도 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간 눈 위를 걸으며 넘어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만 나는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젊은 일행들 못지않게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박수를 참 많이 받았다. 그 박수 맛에 아이처럼 계속 뒹굴었다.

 숙소에서 올려다 보이는 언덕길, 그곳이 사색에 좋다고 소개하기에 딸과 함께 올라갔다. 어제 차를 타고 들어올 때는 엄청난 급경사여서 겁먹었던 곳이다. 그 길을 걸어서 올라보니 길 양 편으로 호스 장치가 되어 있고 길이 얼지 않도록 온천수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꼭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폭만큼 아스팔트가 드러나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주변에 쌓인 눈을 보고 두려워했던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샤워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물 덕분에 옷이 흠뻑 젖었지만, 주변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눈이 내려도 제설차가 바로 작업해 길을 내니 온천 이용객들이 불편 없이 차를 탈 수 있었다. 멋진 풍경화 속 인물이라도 된 듯 맛있게 담배 한 대 피고 있으려니 인터뷰하듯 카메라를 갖다 대며 딸이 물었다. “아빠, 눈을 보니 어떠세요? 한 말씀하세요!” 나는 주연배우라도 된 듯 눈 덮인 앞산을 향해 외쳤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자유하다! 나는 이제부터 새로운 나다!”
만세를 부르듯 어깨를 쳐들고 소리쳤다. 진실된 외침이었다.

 함께 오지 못한 언니들에게 이 영상을 보내주라 했다.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이 여정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이 순간 나만큼 행복한 이가 없을 것만 같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마주친 일행에게 코스가 좋다며 꼭 올라갈 것을 권했다. 산책로를 안내하는 듯했지만 실은 우리만의 행복한 시간을 자랑한 셈이었다. 오늘 밤은 한 잠에 끝날 것 같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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