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재형 Oct 08. 2020

나는 피아노에 싹수가 있다

피아노 치며 생각한 것들





피아노를 공식적으로 배운 것은 9살이었다. 특별한 관심 없이도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피아노 학원 문을 노크하던 시절이었다. 등록하고 첫 수업을 받자마자 난 깨달았다. 아 이거 진짜 노잼이다. 체르니 이외에는 별다른 선택지와 상상력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손가락 구타가 문화였던 시절에 오히려 피아노에 흥미를 가지는 어린이가 이상한 쪽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집에 돌아가면 방바닥에 누워 가장 격렬한 퍼포먼스로 엄마에게 땡깡을 부렸다. 한 달 동안 이어진 땡깡에 엄마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엄마는 원장께 상담 전화를 걸었다. 그만두겠노라는 통보에 원장은 맞받아쳤다. 그렇잖아도 아드님이 피아노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고. 그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 듣고 삼국지의 조조를 떠올렸다.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게 둘 수 없다는 조조의 선언처럼 나 역시 피아노가 날 버리기 직전에 선빵을 날린 것이 아닌가! 후훗 피아노 따위! 내겐 드래곤볼 만화책과 팽이치기를 같이 할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렇게 내 유년시절의 피아노 경험은 음계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뒤끝 많은 나로서는 때늦은 변론을 해야겠다. 한 아이의 예술적 재능을 판단하는 그 원장의 기준은 지금의 내가 겪었어도 기꺼이 신뢰할만한 것이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미대를 졸업하고 잠시 아동미술 선생으로 활동하며 ‘새삼’ 깨달은 점이 있다. 한국의 예술교육이란 테크닉과 재능을 동의어로 자주 착각하고, 그 기준으로 선별된 아이의 창의력을 모조리 갉아먹기로 작정하는 공식적 루트를 아이에게 제안한다. 내가 보기로는 저학년까지 대부분 피카소급 세계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 어른들에게 적절한 칭찬을 받지 못해 예술계에서 이른 은퇴를 선언하거나, 반대로 간택 받은 아이들은 영혼 없는 기술 수업을 받으며 그저 그런 수준으로 쇠락하는 운명에 처한다. 심하게 요약했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이런 교육 환경을 뚫고 아티스트가 된 모든 동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는 ‘재능 없음’으로 판별된 피아노와 달리 그림만큼은 어릴 때부터 칭찬을 많이 듣고 자랐다. 부모님은 나의 잠재력을 일깨우고자 수소문하여 미술 과외를 시켜주었다. 프랑스 유학 어쩌고 선생님의 집에 방문하여 정기적으로 미술을 배웠다. 그저 드래곤볼 초사이언 손오공 캐릭터를 매일 그리고 싶던 초등학생에게 ‘전문 코스’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내가 왜 꾸지람을 들으며 일평생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화분이니 물병이니 하는 것들을 그려야 한단 말인가. 또 수채화를 그릴 때 붓을 물통에 잘 헹구지 않아 팔레트에서 다른 색과 조금이라도 섞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혼날 각오를 해야 했다. 미술 과외와 관련한 기억은 하나밖에 없다. 나는 그림을 그렸고 선생은 화를 냈다. 결국 프랑스 유학 어쩌고 선생에게도 이별을 고했다. 지금 그 선생님을 만난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선생님, 제가 그래도 어디서 방귀 뀔 만큼은 그려봤는데요, 붓에서 색이 예상치 못하게 섞여야 더 예술입디다. 


 시간이 흘러 비록 아르바이트지만 미술 과외 선생님이 된 나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었다. 초등학생에게 흥미 이상의 교육은 없다는 철학으로 임했다. 정민이라는 아이는 딱 봐도 미술에 흥미가 없었다. 퇴근을 기다리는 직장인의 마음으로 수업을 영혼 없이 버텨내기 일쑤였다. 나는 매주 새로운 시도를 해야 했고 드디어 정민이가 좋아하는 미술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정민이는 형태를 그리고 색을 칠하는 지루한 고전주의 회화의 방식보다는 흰 도화지에 바로 색을 칠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인상주의 회화의 방식을 선호했던 것이다. 우리는 반 고흐의 그림을 즐겁게 멋대로 모사했고, 정민이는 시계를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으며, 결과물 역시 꽤 훌륭했다. 문제는 부모였다. 내가 퇴장하고 나면 정민이의 그림은 자주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어른들이 동의할만한 ‘그림 잘 그리네’의 기준은 획일적인 경우가 많다.(학교나 학원 미술 선생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문제) 나는 아이들의 그림에 깜짝 놀란 적이 많지만, 정작 그 그림을 격려해 주고 칭찬해 줄만한 어른이 그 아이 주변엔 없었다. 


 피아노 교육이라고 딱히 다를 리 없다. 내게 재능 없음을 선포했던 그 피아노 학원 원장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러나 기회 하나를 잃은 것은 아쉽다. 그분 덕에 조기교육을 말아먹어 쇼팽콩쿠르 우승에 도전할 타이밍을 놓친 것을 생각하면 분하다. 괜히 입장 쫄리고 기분 더러울 때는 이렇게 남 탓 사회 탓을 해야 속이 후련하다. 아니지, 실은 그 원장께 고마운 마음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엄마를 꾀어 괴로운 마음으로 계속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했더라면, 나는 이 악기에 정이 확 떨어져 성인부터 시작된 피아노 늦바람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섣부른 기대와 조급한 판단으로부터 해방된 이 세계에서는 늦은 바람이라도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 땡깡 놓던 9살 아이는 소위 '예술가'로 훌쩍 성장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자가 진단쯤은 할 줄 안다. 나는 피아노에 싹수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