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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재형 Apr 19. 2021

너는 이제 화가처럼 보인다

황인찬 <희지의 세계>를 읽고



나도 써봤다. 너는 이제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늦게 일어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여행길에 갑자기 드로잉 북을 꺼내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A를 그리면서 사실은 B를 뜻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오프닝 다과를 준비하지 않는다. 너는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해질녘 골목을 이리저리 걷다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일상이야말로 나의 주된 소재라고 적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붓이 지나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한번 더 꾸욱 누르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관객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빈곤이 예술의 동력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붓과 담배와 술잔을 동시에 들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다른 화가의 재료와 기법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전시 서문을 절대로 끝까지 읽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는 도슨트의 말은 모범생처럼 한 마디도 놓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너는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라는 초년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화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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