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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Nov 26. 2024

5억의 미스터리: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1편] 5억의 미스터리: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1 거울 속 진실: 5억의 미스터리


오전 9시, 허용일 변호사가 들고 온 계약서는 이상했다. 강남 반포동 아파트 매매가격이 시세의 절반 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시세 8억대 아파트가 5억에 나온다는 건, 내 경험으로는 분명 미심쩍은 부분이었다.

"대표님, 양준서 씨 사건인데요..."


허 변호사는 수첩을 펼치고 거래 구조를 그렸다. 매도인과 매수인, 그 사이를 이어주는 화살표. 그의 수첩에는 법률적 분석보다 사람의 사연이 더 많이 담기곤 했다.. 

"그제 오후에 급하게 상담이 들어왔습니다. 반포동 래미안 아파트 35평형을 5억에 매수하기로 했는데, ABC저축은행에서 대출심사가 지연되고 있답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을 들었다.

 "시세보다 3억이나 낮은 매물이라... 대출기관도 의심스러웠을 테지. 매도인 측은 왜 이렇게 싸게 판다는 거지?"

 "매도인 박민혁 씨가 해외 사업 자금이 급하다면서 빠른 매각을 원한다고 합니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됐고, 매수인도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재무제표까지 모두 확인했습니다. 특히 근저당 관련 기록도 깨끗했고요."


 허 변호사가 수첩 페이지를 넘겼다. "양준서 씨는 현재 4억의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퇴직금 2억, 기존 전세보증금 1억 5천, 그리고 친척들에게 빌린 5천만원이라고 하네요. 나머지 1억은 ABC저축은행 담보대출로 충당할 계획이었는데..."


 "그럼 의뢰인이 구체적으로 변호사에게 원하는 건 뭔가?"


 "첫째는 대출 지연의 법적 문제가 없는지 검토, 둘째는 이 거래 자체의 안정성 점검입니다. 중개사가 계약금 1천만원은 우선 자기 책임 하에 걸어놓겠다고 했다는데, 이 부분도 좀 걸리네요."

 중개사가 그렇게까지? 흠… 물론 중개사는 계약이 성사되면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테니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직감적으로 이 거래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렴한 가격에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잡으려는 의뢰인의 절박한 심정도 이해가 됐다.

양준서는 딸의 어깨를 감싸안은 채 상담실에 앉아있었다. VIP룸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14살 소녀는 책상 위 계약서를 묵묵히 바라보았다.양준서의 전세계약은 다음 달이 만기였다. 보증금 1억 5천만원이 이번 매매계약의 일부였다.


"허 변호사, 이번에는 어떻게 진행했지? 법리 검토부터 실무까지?"

"네, 양희범 변호사님이 법리검토를, 박정우 과장님이 실무검토를 맡았습니다. 다만..."

허 변호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사실... 그제 첫 상담에서 제가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의견을 드린 바 있습니다. 등기부등본도 깨끗하고, 매도인의 급매 사유도 이해할 만했거든요. 거기다 의뢰인 사정이 너무 급하셔서..."


#2 흔들리는 확신: 허변호사의 선택


나는 허 변호사의 불편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사무실 내규상 5억 원 이상의 거래는 반드시 내게 사전보고가 필요했지만, 그는 이미 계약에 대한 검토의견을 의뢰인에게 제시한 상태였다. 허 변호사의 지금 심정은 자신이 이미 '괜찮다'고 한 말을 번복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해가 갔다.

"알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 변호사는 그런 편이다. 법리보다 사람의 사연에 먼저 귀 기울이는 그의 방식이, 때로는 우리가 놓치는 진실을 짚어내곤 했다. 나는 허 변호사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자네가 괜찮다고 했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제서야 허 변호사의 어깨에서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양희범 변호사의 포커스룸에서는 관련 판례 검색이 한창이었다. 더블 모니터에 비친 차가운 불빛 속에서, 그는 왼쪽 주머니의 볼펜을 돌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법리적으로 보자면..." 

양 변호사의 입에서 늘 나오는 말이 시작되었다. "매도인의 급박한 사정을 매수인이 교묘히 악용한 폭리 거래가 아니라는 점만 확실히 해두면 좋겠습니다."

박정우 과장은 7시 출근 후 벌써 실거래가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내부 검토가 필요한 사안입니다만..." 그의 신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근 5년간 이렇게 낮은 가격은 처음이네요."


강민호가 개발한 위험도 평가 프로그램이 모니터에서 깜박였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수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KAIST 출신다운 그의 알고리즘과 내 15년 경험이 만나 탄생한 프로그램이다.


"대표님, 새로운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마침 강민호가 시그널 메신저로 연락해왔다. "이제 법원 판례 데이터베이스와 실시간 연동됩니다. 부동산 거래의 경우 실거래가 편차도 자동 분석되고요."

 강민호의 위험도 평가 프로그램이 화면에서 깜박였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수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 항목의 특성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다. 특히 부동산 거래의 경우, 실거래가 편차와 매도인의 신용도가 높은 가중치를 받는다.


화면을 보니 이번 사건의 위험도가 상당히 높게 나왔다. 특히 '시세 대비 거래가격 편차'와 '매도인 신용도' 항목이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하지만 나는 허용일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이라도 때로는 놓치는 것이 있고, 그걸 사람의 직관이 잡아내기도 한다. 그의 소탈한 성격 뒤에 숨은 날카로운 통찰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으니까.


"좋아, 진행하지." 나는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며 말했다. "다만 매도인 박민혁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필수입니다. 강민호에게 포렌식 분석을 의뢰하고."


#3 디지털 추적자: 은닉된 진실을 찾아서


3개월이 지난 어느 늦은 밤, 나는 사무실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때 시그널 메신저가 요란하게 울렸다. Emergency 채팅방에서 박정우 과장의 긴급 메시지가 올라왔다.

"대표님, 양준서씨 상대로 소송이 제기되었답니다. 매도인 채권자들이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했습니다."

"우리은행 외 3개 금융기관, 총 채권액 12억..." 나는 소장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소장에 적힌 채권액은 총 12억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4개 금융기관의 이름이 줄지어 있었다'"


Morning Brief에서 양희범은 더블모니터 앞에서 왼쪽 주머니의 볼펜을 돌리며 판례분석을 이어갔다. “2019년 대법원 판례의 핵심은 매수인의 선의 입증입니다. 관련 판결에서 제시된 4가지 판단기준을 보면…”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허용일의 표정을 살폈다. 허용일은 Risk Assessment Matrix를 다시 검토했다.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Case Review 시간, 강민호의 포렌식 보고서가 스크린에 떴다. 그의 분석 프로그램이 박민혁의 온라인 활동 기록을 표시했다. 두바이 부동산 개발사와의 이메일, 현지 법률사무소 연락처, 장기체류 비자 검색 기록. 

매도인 박민혁의 SNS 활동과 이메일 기록을 추적한 결과, 두바이행을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Emirates Property LLC와의 접촉 기록, 현지 법무법인과의 교신... 모든 것이 재산 은닉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허 변호사도 나도 뭔가를 놓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수상한 정황들을 바탕으로, 의뢰인을 보호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작업에 들어갑시다."

시그널 메신저가 다시 울렸다. 양준서였다. ABC저축은행이 대출금 만기를 앞두고 압박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자금으로는 1억이 부족한 상황.


 "대표님..."양준서가 전화로 상황을 전했다. 계약금 지급 기한이 내일까지였다.

양 변호사가 유사 판례를 검토했다. 선의의 매수인 보호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이었다.

강민호의 데이터 분석이 첫 번째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부동산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물에서 시작된 작은 의심이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대표님, 양준서 씨 계약을 중개한 정미경 공인중개사의 온라인 활동을 조사하던 중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강민호가 보낸 첫 메시지였다. "그리고 계속 조사하다 보니, 매도인 박민혁의 수상한 행적도 포착됐습니다."

 화면을 넘기자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박민혁의 중동 부동산 개발사들과의 SNS 교류, 두바이 현지 법률사무소 팔로우, 장기 체류형 비자 정보 검색... 여기까지는 정황 증거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민호는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정미경 공인중개사가 최근 부동산 중개 커뮤니티의 비공개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최근 강남 일대 수상한 급매물 거래에 대한 제보'라는 제목의 익명 게시물이었다. 시세보다 30-40% 낮은 가격으로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댓글이었다.

 "저도 같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매수자 피해가 걱정되어 거절했는데..."

"혹시 거래처가 P사업자인가요? 저희도 비슷한 경험이..."

"IP 추적 결과 이 게시물이 정미경 씨의 중개사무소에서 작성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강민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묻어났다. "더군다나 이 글이 올라온 시점이 양준서 씨와의 계약 직전입니다."

나는 커피를 한 잔 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건 범죄의 영역이다.’


허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허변의 실무썰' 에 유사 피해 제보가 이어졌다. 강남 일대에서만 열 건이 넘는 사례가 모였다 


그의 채널은 머스트노우의 히든 카드가 되었다. 소탈한 말투로 어려운 법률 문제를 설명하는 그의 영상들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종종 의미 있는 제보가 들어오는 창구가 되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허 변호사가 설명했다.


"강남 일대에서 박민혁과 비슷한 수법으로 이뤄진 거래들이 제보되었습니다. 제보자들이 저희 로펌을 신뢰하고 연락해주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4 정의의 그물: 사기꾼의 마지막 비행


관련 제보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수사기관 제보를 고민하게 됐다. 양희범이 Triple Check System으로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10건 이상의 유사 피해 사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대표님," 양 변호사가 왼쪽 주머니의 볼펜을 돌리며 말했다.

 "법리적으로 보자면, 이는 단순 민사 사건을 넘어선 사기 행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피해 규모도 상당하고요."

 나는 검찰청 중앙지검 모 부장검사와 통화를 했다. 머스트노우가 수집한 자료들은 금세 수사의 실마리가 됐다. 강민호의 빅데이터 분석은 특히 검찰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식의 급매물 패턴이 최근 6개월간 총 12건 발견됐습니다." 강민호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검찰 수사관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거래에서 매도인 측이 해외 도피를 준비한 정황이 포착됩니다."


검찰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강민호의 분석이 밝혀낸 도주 정황 덕분에,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예약한 박민혁을 인천공항에서 검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채권자취소소송에 대한 준비서면을 철저히 준비했다. 양 변호사가 더블모니터로 관련 판례들을 분석하는 동안, 허 변호사는 정미경 공인중개사를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실은 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어요." 정미경의 진술은 사건의 분수령이 됐다. "박민혁이 해외 도피를 준비하는 걸 알면서도, 양준서 씨의 절박한 사정에 마음이 흔들려서..."


서울중앙지법 308호 법정. 양준서는 증인석에 앉아 사실관계를 진술했다.  채권자 측은 매매가격의 현저한 차이를 지적했다. 시세 8억 대비 실거래가 5억이었다.


 "피고는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임을 알고 있었죠?"

 "네, 알고 있었습니다." 양준서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건 매도인의 급한 사정 때문이라 들었고, 정상적인 매매계약서와 중개계약서도 모두 확인했습니다. 저는... 그저 딸아이와 함께 살 집을 찾던 평범한 가장이었을 뿐입니다."


 재판부는 우리가 제출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했다. 박민혁의 사기 행각이 드러난 정황들, 정미경의 증언, 그리고 무엇보다 양준서가 정상적인 절차를 모두 준수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판사가 판결을 선고하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원고의 채권자취소청구를 기각한다." 재판장은 양준서의 '선의'를 인정했다. 부동산 실거래 신고, 대출 심사, 계약서 검토 등 모든 과정에서 매수인의 정당한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양준서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매매대금 5억 원, 시세 차익 3억 원. 숫자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5 승리의 대가: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


판결 일주일 후, 양준서는 등기부등본을 들고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이름으로 된 첫 부동산 등기였다. 

다음 날 아침, 판결문 요지를 사내 시스템에 등록했다. 선의의 매수인 보호, 실거래가 검증, 계약 절차 준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허 변호사의 책상 위에는 새로운 사건 파일이 놓여있었다. 나는 'Triple Check 시스템 필수'라는 메모를 남기며 미소 지었다. 그가 이제 진정한 머스트노우의 변호사로 성장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양 변호사의 포커스룸에서는 이미 더블모니터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왼쪽 주머니의 볼펜을 돌리며, 그는 또 다른 사건의 판례를 검토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새로운 사건 파일이 책상 위에 놓였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서류 속에, 또 다른 누군가의 절실한 사연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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