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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Dec 02. 2024

홍콩싱가포르 자금의 비밀: 5천억 원 숫자의 진실

제가 운영하는 로펌 머스트노우가 처리했던 사건들을 모티브 삼아, 드라마 형태로 작성해 보는 글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조우성 변호사 올림 - 



[2편] 홍콩-싱가포르 자금의 비밀: 5천억 원을 삼킨 숫자의 진실     


#1 거대한 운명의 문: 5천억의 숫자가 말하는 것


잠실 영원빌딩 VIP 접견실. 테이블 위에는 K제약 매각의 실사를 요청하는 R파마의 의뢰서가 놓여있었다. 매각가액 5천억 원. 


R파마의 한국법인 법무팀장 김준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희 R파마는 K제약의 신약 파이프라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면역항암제 관련 특허가 핵심이죠. 이번 실사를 통해 인수 여부를 결정하려 합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글로벌 제약사 R파마의 한국 진출은 업계의 큰 화제였다. 5,000억원이라는 거액의 딜. "올해 최대 제약업계 M&A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R파마 법무팀 김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양희범 변호사는 더블모니터 앞에서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미소지었다.      

"이번 실사의 특이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약산업 특성상 식약처 허가 이력과 임상시험 데이터의 신뢰성 검증이 필요합니다. 둘째, 특허권 존속기간과 국가별 등록 현황을 면밀히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제약사 R파마가 인수자라는 점에서 국제 제약 레귤레이션 준수 여부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허용일 변호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검은 수첩을 펼쳤다. 그의 특유의 볼펜 리듬타기가 시작되었다.. 허용일은 실사 범위를 수첩에 정리했다. 그가 마커펜으로 그려나간 실사 범위는 다음과 같았다:


실사 범위

1. 재무/회계 실사

- 본사 및 해외 자회사 재무제표 검토

- 특수관계자 거래 내역 분석

- 수익 인식 기준 적정성 검토


2. 법무 실사

- 소송 및 분쟁 현황

- 주요 계약 검토

- 규제 준수 현황


3. 지식재산권 실사

- 특허 포트폴리오 분석

- 권리 존속기간 검토

- 국가별 등록 현황


4. 규제 실사

- 식약처 승인 현황

- GMP 인증 현황

- 임상시험 데이터 검증


"제가 보기에는 말이죠..." 허 변호사는 말을 이었다. "회계법인 시절 경험으로는, 제약사 실사에서는 R&D 비용 회계처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R파마 측에 필요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했다. "실사 기간은 최소 3개월입니다. 해외 자회사 실사와 규제당국 조회에만 6주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팀에게 완전한 실사 권한을 주셔야 합니다. 모든 자료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하고, 임직원 인터뷰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수상한 숫자들의 속삭임: 홍콩과 싱가포르를 잇는 실타래


K제약 본사 6층에 마련된 데이터룸. 형광등 불빛 아래서 허 변호사는 홍콩과 싱가포르 자회사들의 재무제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수첩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빼곡했다:


홍콩법인 특이사항

- 매출 85% 분기말 집중

- 주요 거래처: BioAsia Ltd

- 결제조건: 180일 어음

- 재고자산 회전율 급감


싱가포르법인 특이사항

- 내부거래 비중 45%

- 미수금 급증

- 특수관계자 거래 12건 누락

- 현금흐름표 불일치


"무언가 이상합니다." 허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이 숫자들이 말하는 진실을 읽어내야 했다.


양 변호사가 옆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무슨 발견이라도 있나요?"


"네, 이 매출 패턴을 보세요. 분기마다 정확히 마지막 날에 대규모 매출이 집중되어 있고, 그 거래의 상대방이 모두 같은 회사예요. BioAsia Limited라는 회사인데..."


양 변호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매출 패턴은 전형적인 분식회계 징후입니다. 제가 금융조사2부 검사 시절에 자주 보던 수법이죠. 특히 제약업계에서는 매출 인식 시점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 침묵 속의 고백: VIP룸에 울리는 진실의 메아리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의 정례 컨퍼런스콜. R파마 실사팀과의 6번째 미팅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홍콩 법인의 외상매출금이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허 변호사가 화면 공유를 통해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특이한 점은 이 매출이 모두 BioAsia Limited라는 한 회사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R파마 재무실사팀장 스티브 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도 주목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BioAsia의 실체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시죠."


허 변호사는 준비해온 자료를 하나씩 제시했다.

"BioAsia Limited는 홍콩에 등록된 페이퍼컴퍼니입니다. 주소지엔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리고 이 회사가 발행한 180일짜리 어음... 모두 현금화되지 않은 채 계속 갱신되고 있습니다."


양 변호사는 검사 시절의 경험을 살려 분석했다.

"여기에 싱가포르 법인과의 순환거래까지 더해보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약 2,000억원 규모의 가공매출이 부외부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회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실수를 찾아낸 것인가.


다음날 아침, 나는 R파마 아시아 총괄 법무팀과의 긴급 화상회의를 마치고 결단을 내렸다. K제약에 강도 높은 실사 공문을 발송하기로 했다.


공문은 세 가지 핵심 질의로 구성되었다:

1. BioAsia Limited와의 거래 증빙 일체
2. 최근 3년간 홍콩-싱가포르 법인 간 내부거래 현황
3. 미회수 외상매출금에 대한 건전성 평가


36시간 후, VIP룸의 조명을 의도적으로 어둡게 조절했다. K제약 재무팀장 박성민이 도착했다는 박정우 과장의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박성민은 손가락으로 태블릿을 두드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례가 없는 수준의 실사네요." 

박성민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다른 회계법인들은 늘 눈감아주었습니다. 제약업계의 특수성을 이해한다면서..."


양희범이 날카롭게 끊었다.

"특수성이라고요? 법 앞에 특수성은 없습니다. 분식회계는 범죄입니다."


박성민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지난 5년간 임상 3상에만 3,000억이 들어갔습니다. 글로벌 임상은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데, 매 분기 적자를 보고하면... 주가가 폭락하고 자금조달이 끊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 변호사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말이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R파마와의 딜이 무산되면 K제약은 생존의 기로에 설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밝히는 게 최선입니다."


#4 한밤의 증거: 새벽을 지키는 내부고발자의 기록


데이터룸에서의 다섯 번째 밤, 허 변호사가 수천 개의 이메일을 분석하던 중 특이한 패턴을 발견했다. 


"이상합니다. 2년 전부터 꾸준히 경고성 메일이 있었네요."     

피로에 절어있던 양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의 메일인가요?"


"김태준... K제약 전 재무이사입니다. 작년 초에 갑자기 사임했더군요."


이메일에서 규칙적인 내부고발 패턴이 발견되었다.


양 변호사가 눈이 반짝였다. "잠깐, 그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요."

그가 검사 시절 인맥을 총동원해 확인해보니, 김태준은 금감원에도 비슷한 내용의 제보를 했었다고 했다. 다만 당시엔 증거가 부족했다.


나는 즉시 IT 포렌식 전문가 강민호를 투입했다.

"이 이메일 서버에서 김태준 전 이사의 흔적을 모두 찾아주세요."


강민호는 KAIST 전산학 석사다운 날카로운 분석력을 보여줬다.

"메일 메타데이터만 봐도 규칙적인 패턴이 보입니다. 매월 말일마다 경영진에게 보고서를 보냈고... 모두 자정이나 새벽 시간대네요. 마치 누군가 모르게 기록을 남기려 한 것 같아요."

그때였다. 서류 검토 중 김태준의 내부고발 보고서를 발견했다. 2년 전 김태준이 자신의 운명을 걸고 이사회에 제출했던 그 내부고발의 증거였다.


[회계처리 위험성 경고 및 개선방안]

- 매출채권 대손충당금 과소계상 위험

- 연구개발비 자본화 기준 위반 가능성

- BioAsia Limited 실체 조사 필요성

- 해외법인 내부거래 적정성 검토 권고


Case Review 직후, 허 변호사가 김태준의 자택을 찾아갔다. 그의 검은 수첩에는 이미 예상 질문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서울 변두리의 조용한 아파트였다.


"이사님, 저희는 머스트노우..."


"알고 있습니다." 김태준의 목소리는 무게가 있었다.

"요즘 K제약 실사 소식이 업계에 파다하니까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거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서류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2년 동안 매일 밤 기록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어요..."



그가 건넨 USB의 파일들이 하나둘 열렸다. 각 폴더마다 날짜별로 정리된 증거들... 그리고 마지막 수정 시간은 모두 자정과 새벽 2시 사이였다. 누군가 철저히 계획하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폴더 1] 해외 매출 조작 자료

- 가공의 거래처 목록

- 허위 세금계산서 템플릿

- 내부 지시 이메일


[폴더 2] 임상시험 관련

- 수정된 결과 보고서

- 원본 데이터와 수정본 비교

- 담당자 지시 메모


[폴더 3] 특허 관련

- 주요 특허 만료 일정표

- 은폐 지시 문건

- 대체 특허 허위 신청 자료


강민호가 USB의 파일들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파일의 생성 시간과 수정 이력이 모두 온전합니다. 디지털 포렌식으로도 완벽한 증거력을 갖추고 있어요."


양 변호사는 쉴 새 없이 메모를 해가며 법적 검토를 시작했다.

"이 정도면... 분식회계 혐의를 넘어 자본시장법 위반의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허 변호사는 회계분석에 몰두했다 

나는 R파마에 최종 실사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75인치 전자게시판에 정리된 실사 결과는 명확했다.


[최종 실사 결과 요약]

1. 회계 분식 규모: 5,500억원

- 가공매출: 1,200억원

- 부외부채: 2,000억원

- 연구개발비 과대계상: 800억원

- 기타 분식: 1,500억원


2. 법적 리스크

-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 분식회계 형사처벌 가능성

- 임상시험 데이터 조작 의혹


3. 기업가치 영향

- 실제 순자산: 당초 평가의 30% 수준

- 향후 3년간 추가 자금조달 필요액: 8,000억원

- 회계감사 의견 거절 위험


R파마 아시아 총괄 법무팀장 제임스 리와의 화상회의가 시작되었다.


"실사보고서를 검토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정직하고 철저한 실사 결과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위험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R파마도 큰 손실을 입을 뻔했네요."


#5 무너지는 성곽: 진실이 드러내는 것들


"긴급 이사회가 소집되었습니다."

박정우 과장의 전화를 받은 것은 실사 결과 발표 다음 날 아침이었다. K제약의 주가는 장 시작과 동시에 급락을 시작했다.     

"R파마와의 인수가 무산되었다는 보도 직후, K제약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혜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보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매출 과대계상 2,300억, 부외부채 2,000억, R&D비용 자본화 오류 1,200억... 총 5,500억 규모의 회계처리 위반사항이 발견되었습니다."

김태준의 제보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압수수색 이틀 만에 전·현직 경영진 3명이 구속되었다.


주가는 일주일 만에 90% 가까이 폭락했다. 협력업체들은 계약을 파기하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대출금 상환을 요구했다.


연구소에서 온 박준영 박사의 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개발 중인 신약들은 어떻게 됩니까? 암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인데..."


허 변호사가 검은 수첩을 넘기며 현실을 직시했다.

"연구원 487명, 영업직 292명, 생산직 156명... 협력업체까지 총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생계가 위험해졌습니다."


양 변호사는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다. 그의 책상에는 K제약 직원들의 호소 메일이 수십 통 쌓여있었다.


업회생절차 신청 후 M&A 시도까지 포함한 회생계획안이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부채비율 873%와 5,500억 원의 분식회계는 회생 가능성을 완전히 잠식했다. 법원은 분식회계로 인한 부실이 너무 크다며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6 정의의 대가: 법과 진실 사이의 그림자


그날 저녁, 텅 빈 사무실에서 우리는 김태준이 보낸 마지막 이메일을 읽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너질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요?"


30년 역사의 제약회사가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 「맹자」의 구절이 떠올랐다. '生,亦我所欲也;義,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舍生而取義者也.'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로움도 내가 원하는 바다. 이 둘을 모두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리라’.


K제약의 주력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삼십 년의 역사가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 K제약은 영업을 중단했다 임상 3상을 앞두고 있던 신약 개발은 모두 중단되었다. 연구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수천 명의 직원들은 실업자가 되었다.


허용일의 검은 수첩에 마지막 메모가 적혔다:


- 전 임직원 해고

- 특허권 일괄 매각

- 채권단 손실 3,200억 확정

- 주주 손실 8,900억 추정

- 협력업체 연쇄도산 우려


#7 새로운 시작: R파마가 보여준 희망     


R파마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해왔다. K제약의 핵심 연구인력 200명을 채용하고, 주요 특허를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시아 법률자문을 전담해달라는 제안도 덧붙였다.


"정직한 실사야말로 최고의 경쟁력이었군요." 제임스 리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법과 정의가 만드는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나무의 그것처럼 깊고 어두웠다. 그 그늘 아래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었는가.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진실은 길을 찾아내는 법이다.


무실 한켠에 놓인 K제약의 실사보고서를 보며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나니...' 우리가 지켜낸 것은 어쩌면 진실이라는 근본이었을지도 모른다.

     



不虛美, 不隱惡" (불허미, 불은악) 

"선한 것을 과장하지 않고, 악한 것을 감추지 않는다" 

사마천, 『사기』 태사공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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