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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Dec 02. 2024

가면의 민낯: SNS 시대의 정의를 찾아서

제가 운영하는 로펌 머스트노우가 처리했던 사건들을 모티브 삼아, 드라마 형태로 작성해 보는 글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조우성 변호사 올림 - 


[3편] 가면의 민낯: SNS 시대의 정의를 찾아서     


#1 투명한 유리 너머의 진실


2024년 1월, 잠실 영원빌딩 4층. 법률사무소 머스트노우의 VIP상담실. 방음유리 너머로 도심의 출근 행렬이 보였다. 나는 양희범 변호사가 건넨 사건 파일을 열었다.


“법리적으로 보자면, " 양희범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는 단순한 기망이 아닌, 신뢰라는 인간의 근원적 약점을 노린 지속적 범행입니다. 재물편취의 형식을 빌린 영혼의 사기라 할 수 있겠지요. “

양 변호사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수십 장의 인스타그램 캡쳐본을 가리켰다.


의뢰인 강민준이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매일 법원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는 모습, 전문적인 법률 서적들, 심지어 변호사들과 찍은 사진까지... 완벽했어요."


허용일 변호사가 검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의 볼펜이 수첩 위를 오가며 사건의 골자를 정리했다.


- 최초 만남: 인스타그램 (2023년 7월)

- 피해자: 강민준(35), IT스타트업 CEO 자칭

- 피의자: 서하은(32), 보험설계사/예비 법조인 행세

- 피해금액: 3천만원 (투자 명목)


#2 시스템의 그물망: 디지털 시대의 함정


양 변호사가 판례 분석을, 허 변호사가 전략 수립을, 박정우 과장이 실무 검토를 맡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75인치 전자게시판에는 Risk Assessment Matrix가 떴다.


"서하은의 SNS 활동을 시간대별로 분석했습니다."

박정우 과장의 목소리가 건조했다.


타임라인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 6개월 전: 법률 용어 학습 시작

- 5개월 전: 법원 인근 카페 정찰

- 4개월 전: 법률서적 구매, 독학 시작

- 3개월 전: 로펌 외관 촬영, 변호사 행세

- 2개월 전: 강민준과 데이트앱에서 첫 만남

- 1개월 전: 투자 제안 및 금전거래 시작


블루룸에서 양 변호사가 더블모니터를 응시하며 말했다. "유사수법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침 브리핑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우 과장이 회의실 문을 노크했다. 매일 아침 6시 출근으로 다져진 그의 꼼꼼함을 알기에, 나는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다.


"대표님, 서하은 측 변호인이 제출한 자료들을 검토해봤습니다."


형사 절차에서 피고인 측이 제출한 정상참작 자료들이었다. 서하은의 변호인이 보내온 서류 속에는 의외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작년부터 법학 독학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더군요. 중간고사 성적증명서도 첨부됐는데, 상위권입니다."


허 변호사가 검은 수첩을 꺼내들며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버릇이었다. 복잡한 사건을 마주할 때면 항상 그렇게 그림으로 정리했다.


"잠깐만요..."

허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 사기와는 좀 다른 패턴인데요. 보통 사기범들은 이런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양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의뢰인 강민준 씨의 주장에도 몇 가지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죠?"


" IT스타트업 CEO라고 했지만, 회사 주소지를 방문했을 때 실체가 없었어요. 게다가 제가 확인해본 바로는 그가 서하은 씨 외에도 여러 명의 여성들과 비슷한 패턴의 관계를 맺어왔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한 순간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Risk Assessment Matrix의 점수가 새롭게 조정되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사건은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진실을 품고 있었다.


 #3 허상의 붕괴: 가면 속의 진실  

   

다음날 Morning Brief에서 나는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회의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료를 검토했다.       

박정우 과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전자게시판에 새로운 정보들이 나타났다.

- 강민준의 IT스타트업 'Next Innovation': 2년 전 파산

- 누적 채무: 3억 원 (카드빚 1억, 대출 2억)

- 현 직업: 무직 (호텔 로비에서 가짜 회의 연출)

- SNS 팔로워: 95% 구매한 가짜 계정     


양 변호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는 어디입니까?"

 이 질문은 법정에서 우리가 마주할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었다.

 .

#4 정의의 저울: 법정에 울리는 진심


서울중앙지법 517호 법정. Risk Assessment Matrix는 우리에게 90%의 승소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현실의 복잡다단한 결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한다.

Triple Check System으로 우리가 확보한 증거들이 차곡차곡 재판부에 제출되었다.


서하은이 피고인석에 섰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입었던 정장 대신 소박한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SNS 속 그녀의 화려했던 필터는 모두 벗겨지고, 스물다섯 살 청년의 날것의 표정만이 남아있었다.


"법정의 공기는 무거웠다. 증거와 진술이 쌓여갈수록 사건의 실체는 더욱 모호해졌다.     

"피고인, 최후진술을 하시겠습니까?"


재판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하은이 떨리는 손으로 준비한 메모지를 펼쳤다. 그러나 그것을 읽지 않았다.


"저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거짓으로 시작된 법조인의 꿈이, 어느새 제 존재의 근간이 되어있었습니다. 마치 가면이 실제 얼굴이 되어버린 것처럼요."


그녀가 최후진술을 계속했다.     


"처음엔 연기였습니다. 그저 강민준 씨의 환심을 사기 위한 거짓말이었어요. 하지만... 매일 밤 독학사 교재를 펼치면서, 그 가면이 진짜 내 얼굴이 되길 바랐습니다. 거짓말처럼 시작된 꿈이... 어느새 진짜가 되어있었어요."


양 변호사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허 변호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숙였다.


재판장이 양형 심리를 마치고 잠시 휴정을 선언했다. 30분 후, 법정이 다시 열렸다.


선고가 시작되었다. 재판부는 서하은의 범행 동기와 과정, 자백과 반성, 그리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고려했다고 했다. 벌금형과 2년 보호관찰이 선고되었다.


법정 밖에는 취재진들이 몰려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카메라는 이미 다른 '특종'을 향해 있었다. SNS를 뒤흔들었던 이 사건은, 결국 수많은 디지털 기사 중 하나로 묻히게 될 것이다.


나는 잠시 피고인석을 바라보았다. 서하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선고 내용을 적은 종이를 떨리는 손으로 접고 있었다. 그녀의 꿈은 이제 어디로 향하게 될까.    

 

#5 승리의 그림자: 뒤틀린 진실의 민낯


선고 직후, 법정 밖에서 또 다른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취재진들 사이로 한 기자가 급하게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동료들에게 무언가를 전했다. 취재진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녁 뉴스의 속보로 터져 나왔다.

"가면 속의 가면: IT스타트업 대표 사칭 피해자의 정체는 연쇄 사기범... 디지털 시대가 낳은 새로운 사기극의 민낯"

"'억대 투자 유치' 허위 이력으로 수십 명 기망... 강민준 씨의 충격적 정체"


아침 브리핑 시간, 박정우 과장이 들고 온 신문들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헤드라인마다 숨겨진 진실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SNS 사기 피해자의 충격적 정체... '파산한 가짜 CEO'"

"3억 빚에 쫓기다 SNS 사기 피해자로..."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 IT스타트업 사기극의 전모"


양 변호사가 자신의 블루룸에서 판례 검색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더블모니터에는 강민준의 과거 범죄 기록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대표님, Morning Brief 시작해도 될까요? 방금 검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강민준 씨가 어제 밤 출국했다고 합니다."


허 변호사는 자신의 검은 수첩을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흑색 만년필이 페이지 위에서 잠시 멈췄다. 그가 그린 도표에는 이제 서하은과 강민준이 만들어낸 거짓말의 거미줄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Triple Check System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요? 우리가 믿었던 의뢰인이 사실은..."


사무실 화분의 마른 흙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절이 바뀌어도 진실의 씨앗은 좀처럼 싹을 틔우지 않는 법이다. 돌이켜 보니 의뢰인의 진술은 모순으로 가득했다. 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덮고 있었다.


뉴스 속보가 다시 울렸다. 검찰이 강민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6 정의의 미로: 디지털 시대의 함정


한 달 후, 캐나다 밴쿠버에서 발신된 강민준의 이메일이 내 모니터에 떴다. 검찰의 출국금지 요청이 늦었던 걸까. 아니면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것일까.


"변호사님께 마지막 인사드립니다. 50번째 취업 거절을 받았습니다. 검색창에 제 이름을 넣으면 전부 '가짜 CEO' 기사뿐이더군요. 한국에서의 제 삶은 이미 끝났습니다. 새 출발밖에 없겠죠."


허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자신의 검은 수첩을 펼쳤다. 그의 정갈한 글씨로 이번 사건의 마지막 메모가 적혀있었다.


- 1심 선고: 2024.1.15

- 피고인 서하은: 벌금형, 보호관찰 2년

- 강민준 출국: 2024.1.15 (선고 직후)

- 검찰 수사 착수: 2024.1.16

-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 2024.2.15

- 사건 종결: 2024.2.20


"해외도피죄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 변호사가 더블모니터에 띄워진 형법 조문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캐나다와의 범죄인인도조약을 고려하면..."


그가 말끝을 흐렸다. 잠시 후 양 변호사는 자신의 SNS 계정을 열었다. '완벽한 변호사의 일상'이란 해시태그 아래 늘어선 게시물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Must-Know Legal Review의 마감이 다가오는 새벽, 나는 습관처럼 조깅을 나섰다. 차가운 겨울 공기는 마치 날카로운 진실처럼 폐부를 파고들었다. 달리는 동안 내내 이 사건의 본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법정에서의 승리라는 지도 위에 정의의 좌표를 찍으려 했지만, 그것은 마치 바람을 움켜쥐려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한 사람은 보호관찰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도망자가 되었다. SNS의 가면은 벗겨졌지만, 그 아래 진실의 민낯은 여전히 모호하기만 했다.


#7 디지털 시대의 정의: 가면과 진실 사이에서


디지털 시대의 정의는 마치 프랙털과 같아서, 들여다볼수록 같은 패턴이 끝없이 반복된다. 우리가 찾은 진실은 결국 또 다른 미로의 입구였을 뿐


Must-Know Legal Review 마감을 앞두고 나는 사건 기록을 다시 펼쳤다. Risk Assessment Matrix가 보여준 숫자들이 차갑게 빛났다. 처음 90%였던 승소 가능성이 무색하게,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정리하실 겁니까?"

허 변호사가 그린룸에서 나오며 물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수첩에는 사건의 전말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했지. '정의는 비례적 평등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SNS 시대의 비례적 평등이란 과연 무엇일까. 가면을 쓴 자와 가면을 벗은 자, 도망친 자와 남은 자 사이의 평등은..."


Triple Check System의 마지막 단계로, 박정우 과장이 정리한 최종 보고서가 도착했다.


사건 종결 보고

- 피고인 서하은

* 현재: 보험설계사 퇴사

* 법학 독학사 과정 지속

* 월 소득 180만원으로 감소

* SNS 계정 전체 삭제

- 전 의뢰인 강민준

* 현재: 캐나다 도피

* 인터폴 적색수배 진행 중

* 국내 다수 피해자 추가 발견

* 검찰 수사 본격화


양 변호사가 내게 물었다. 

“대표님, 우리는 승소라는 나무를 보았을지 모르나, 정의라는 숲을 놓친 것은 아닌지요?"..


"Morning Brief 시작하시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새로운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스트노우의 시스템은 차가운 빛을 내며 작동했다. 시그널 메신저에는 새로운 의뢰인들의 메시지가 쌓여갔다. 모니터 속 끝없이 스크롤되는 SNS 피드를 보며 나는 잠시 멈췄다. 우리가 찾는 진실은 과연 어디쯤 숨어있을까.

 새로운 사건 관련 메시지가 도착했다. 새로운 의뢰인이었다. 나는 잠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의 SNS 프로필 사진 속 미소가 서하은의 그것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假之物也,待之以誠" (가지물야, 대지이성)

"거짓된 것이라도 진심으로 대하면 참된 것이 된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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