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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안개 속에서 피어난 계략 - 초선차전

by 조우성 변호사


[조우성 변호사의 톡스토리] 적벽, 안개 속에서 피어난 계략 - 초선차전의 진실과 허구


기원후 208년 겨울, 장강은 안개로 자욱했다. 조조의 80만 대군(과장된 수치지만 당시로선 최대 규모)이 남하하여 강 건너 동오를 압박하고 있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수적 열세 속에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삼국지연의는 제갈량이라는 천재 군사의 기상천외한 계략을 펼쳐 보인다.


주유는 제갈량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했다. "3일 안에 화살 10만 개를 준비하시오." 당시 화살 제조는 노동 집약적 작업이었다. 대나무를 깎고, 깃털을 다듬고, 촉을 벼리는 데 숙련공도 하루 수십 개가 한계였다. 10만 개는 수백 명이 몇 달 걸려야 할 물량이다. 주유는 제갈량이 실패하길 은밀히 바랐다. 유비 진영의 힘을 약화시킬 명분이 될 터였다.


제갈량은 담담히 수락했다. 그는 노숙에게 청했다. "배 20척과 짚, 그리고 검은 천을 구해주시오. 다른 것은 묻지 마시오." 노숙은 의아했으나 물품을 준비했다. 제갈량은 각 배에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빽빽이 세우고 검은 천으로 덮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안개를.


3일째 새벽, 장강에 짙은 안개가 깔렸다. 제갈량은 배 20척을 이끌고 조조 진영 가까이 접근했다. 북과 징을 요란하게 울렸다. 조조군 진영은 발칵 뒤집혔다. 안개 속 기습 공격이라 판단한 조조는 섣불리 병사를 보낼 수 없었다. "활로 막아라!" 명이 떨어졌다. 수만 개의 화살이 안개 속으로 쏟아졌다. 짚 허수아비에 화살이 빗발쳤다. 제갈량은 배를 돌려 반대편도 화살을 받게 했다. 양쪽에 화살이 가득 꽂히자 배는 무거워졌다.


해가 뜨고 안개가 걷혔다. 조조는 그제야 깨달았다. 허수아비였다는 것을. 화살을 쏟아부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제갈량의 배는 유유히 돌아갔고, 선상에서 "승상께 화살 감사하단 말씀 전해주시오!"라는 조롱이 들려왔다. 조조는 이를 갈았으나 이미 늦었다. 10만 개의 화살은 동오-유비 연합군의 것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연의의 창작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기록이 없다. 대신 손권의 장수 감녘이 유사한 전술을 썼다는 기록이 오서(吳書)에 남아 있다. 나관중은 이를 제갈량의 일화로 재구성하여 그의 지략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역사적 허구임에도 이 이야기는 깊은 교훈을 담는다. 정보의 불균형, 자연 조건의 활용, 적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 전쟁은 단순히 병력과 무기의 싸움이 아니다.


적벽대전은 결국 조조의 대패로 끝났다. 화공에 의해 조조군의 전함들은 불타올랐고, 북진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초선차전이 실제로 있었든 없었든,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혜는 때로 수만 병력보다 강하다는 것. 안개는 걷혔지만, 제갈량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에서 지략의 대명사로 영원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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