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의 피칭이 화려할 수록 마운드에 설 기회는 줄어들었다. 적어도 경기가 어려워지고 추격할 가치도 사라졌을 때 그토록 바라던 마운드에, 그러니까 무대로 말하자면 핀조명이 집중되는 중앙무대에 올라설 수 있었다.
오늘 경기도 말아먹긴 글렀구나 싶어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경기를 지켜보던 코치가 불러세웠다. 그리곤 불펜에서 몸을 풀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직 희망을 버릴만한 경기가 아닌데, 충분히 긴박한 경기인데, 왜 불펜 대기를 지시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경기는 8회초 1 대 1 동점 상황, 그렇게도 초라한 어깨를 이끌고 마운드에 올라섰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더 없이 나빴다. 이런 상황에 내가 피처라니,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있을까.
다음 날 조간신문 스포츠면에 나를 다룬 기사가 올라왔다. 1면 상단 기사였고 그 중 내 이야기는 한 문장 정도 할애되었다.
'8회 바깥쪽 낮은 커브볼을 밀어쳐 승리의 쐐기포를 날렸다.'
그러니까 나에 대한 이야기는 낮은 커브볼, 따지고 보면 단 한 문장도 되지 않았다. 언제나 패전조 투수인 나에겐 비난 받을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