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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영 Apr 06. 2017

오늘도 비움

물건이 없어도 우아한 취향이 남는다

미니멀 라이프를 꿈꾼다. 누구나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단지, 나는 물건이 많은 것보다 적은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만 나의 이러한 성향을 잊어버린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핫딜과 인스타 속 잇 아이템들에 카드 결제 알람 문자가 계속 띵동 거 린다. 봄바람이 살랑거렸는지, 3월은 특히나 그랬다. 집 앞에 언제든지 내 돈을 기다리는 대형 쇼핑몰에 생겼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4월 고지서가 날아오기도 전에 마음이 막 두근거린다. 한바탕 정리가 무색하게 쌓여있는 옷장에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책이었다. 내가 왜 가벼운 삶을 지향하는지, 다시 한번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속에 각인시켜준다. 특히 <오늘도 비움>은 책이 나왔을 때부터 읽고 싶었다. 아마 그랬다면, 3월에 무의미한(최근 시발 비용이라고 불리는) 소비를 하지 않았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작가의 블로그 글을 빠짐없이 다 읽었다. 책은 글들이 조금 더 정돈되어, 하나의 에세이를 보는 느낌이다. 특히 과거 섹스 앤 더 시티 속 캐리 언니 부럽지 않은 신발장을 자랑하던 작가가 '건강'이라는 문턱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살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아한 탐구생활'이라는 블로그명처럼 당시 얻은 우아한 취향이 여전히 정갈하게 묻어난다는 것도.  



이것 하나만 있으면 더 편해질 텐데 싶어 내 삶에 들인 물건들 중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 경우를 곱씹어 본다. 러그 외에도 수많은 물건들이 생각난다. 그중 다시 들이고 싶은 물건은 단 하나도 없다.


무심코 홈쇼핑 채널을 돌리다가 덜컥 사게 된 가전제품들이 많았다. 저것만 있으면, 집안일의 굴레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워킹맘 필수품'이라는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렇게 집에 들어온 물건들의 유효기간은 딱 한 달이었다. 카드 할부기간 보다 짧았다.


생활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단 하나라도 내 취향이 아닌 물건을 소유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 후 3년이 고비였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과 내가 가진 물건의 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하며 산 물건은 대부분 엄마의 취향이었다. 당시 나는 그릇 등 살림에 대한 취향이 사실 제로였고, 바쁘다는 핑계로 모든 선택을 엄마에게 미뤘다. 집안 살림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기에, 지금은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다. 새로 들이는 것만큼은 철저하게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취향을 반영할 것.


하지만 '소비 기계'가 되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돈을 쓰지 않게 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소비 기계라는 말이 섬뜻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끔 돈을 쓰기 위해 버는 것인지, 벌기 때문에 쓰는 것인지 헷갈리고는 한다. 친구들과 종종 '피부가 나빠져서 피부과에 월급을 다 쏟아부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니까 저절로 좋아졌어' 등의 말을 주고받는다. 나는 여전히 마음에 드는 것에는 망설임 없이 카드를 내고, 그 카드값을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 출근도장을 찍는다. 하지만 오늘도 비우다 보면, 언젠가 그 쳇바퀴에서 벗어날 일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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