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리추얼: 음악>과 함께 올 한해 회고하기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융플리. (융플리는 '밑미'에서 혜윤님이 진행하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라는 리추얼 프로그램의 애칭이다.) 혜윤 님이 낸 <오늘도 리추얼: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을 읽다가, 융플리에 문을 두드리기로 마음먹은 순간을 오랜만에 다시 떠올렸다. 그의 인스타에서 본 이 문구 때문이었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밑미가 생긴 이후로 여러 리추얼 프로그램에 참여해 봤지만, 융플리는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는 선택지였다. 음악을 자주 듣는다고 할 수도 없고 (여전히 음악조차 없는 고요함을 좋아하는 날이 많다), 무엇보다 내가 이 모임의 에너지 레벨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일 거라는, 너무 활기차고 파이팅 넘치는 사람들의 모임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나중에 멤버들에게도 이 오해에 대해 여러 번 고백한 적이 있다.)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신청해 놓고도 시작하는 날까지 몇 번이나 취소할까 했던 나를 붙잡아준 건 저 문구였다. 안 어울릴 거라고 선을 긋지 말고 일단 어울려보자는 마음. 그리고 융플리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내 삶에 정말 좋은 무언가를 만났다는 확신을 얻었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리추얼 모임은 올 한 해 내 일상의 가장 큰 축이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음악을 내 일상에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놓는 리추얼이라고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루틴’이란 말이 다소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행동에 가깝다면, ‘리추얼’은 거기에 좀 더 의미를 담는 일, 그리고 의식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행위로서의 루틴이라고 할까. (혜윤 님은 이걸 '가장 작은 형태의 평화'라는 멋진 표현으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음악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루의 생각이나 감정을 쓴 글을 공유하는 것까지가 포함된다.
반년 동안 융플리에 참여한 덕분에, 나에게도 특정 순간이나 특정 장소에서 함께 하고 싶은 사적인 플레이리스트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크게 영향을 받은 건 이곳의 사람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내용도 ‘함께 하는’ 리추얼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는데,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밑미라는 플랫폼이 주는 특성이기도 할 것이다.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고 배움과 성장이 중요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을 필요를 못 느낄 만큼 이곳에서 책, 전시, 영화, 일 등 다양한 관심사들을 나눈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공감, 위로, 응원의 분위기는 저절로 만들어진다. 이 커뮤니티 안에 있다 보면 ‘느슨한 공동체’, ‘연대감’이라는 말이 더 이상 막연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주는 건강하고 따뜻한 에너지 덕분에 나는 좀 더 행동하는 사람, 좀 더 긍정적인 사람으로도 바뀌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인 혜윤 님. 지금 다시 봐도 나와 정말 많이 다른 사람인 건 맞는데, (한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 좋아하는 것들이 이렇게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난 처음 알았다고...ㅋㅋ) 내가 가지지 못한 그의 멋지고 빛나는 부분을 서서히 흡수하게 되었다. 다르다고 선을 긋지도, 단순히 똑같아지고 싶어 애쓰지도 않는, 나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융플리의 영향력 덕분에 내가 올해 행동에 옮긴 것 중에 하나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인터뷰이고, 이번 생에 포기하기로 했던 몇 가지(운전, 수영, 자전거)를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이고, 몇 년간 찍은 달 사진을 모아 별도의 인스타 계정을 만든 것이다. 이것들 역시 나에게 생긴 큰 변화들 중 가시화된 일부분일 뿐이지만. 그리고 리추얼 인증글과 함께 종종 그날의 달 사진을 같이 올렸더니, 어느새 융플리 안에서 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이번 책에도 언급되었다. 아직 책을 쓰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책에 이름이 등장하는 사람이 되는 영광을 얻었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대한 후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2021년의 아주 큰 부분 하나를 연말결산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