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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Feb 27. 2023

내가 이 일을 만나려고 그랬나보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고 나는 또 일에 대해 생각했어 

설 연휴에 건축가 유동룡(이타미준)에 대한 롱블랙 기사를 읽고, 다시 그를 디깅하는 마음으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아 보게 됐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떠오른 한 가지 새로운 생각을 기억하고 싶어 기록.


이타미준이 예순이 넘었을 때 시작해 10년 가까이 진행된 제주 핑크스 리조트 (포도호텔, 수풍석박물관 등) 프로젝트는 그의 말년에 주어진 아주 큰 행운이었다. 마음이 통하는 건축주가 부여해 준 자유로운 결정권과 여유로운 예산 안에서 그동안 축적된 그의 건축적 오리지널리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행운! 


이 모든 조합을 맞이한 그가 얼마나 신명나게 일했을지 상상만 해도 부러운 한편, 그것이 건축 인생 30-40년이 지난 시점에야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대한 그의 소감은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상상한 그의 대답은 아마도..."내가 이걸 하려고 지난 30-40년을 쌓아온 거구나!" - 이건 일에 있어서 시간의 단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상상이었다. 


나의 얘기로 돌아오자면, 일을 시작한지 15년이 지났는데 솔직히 그동안 크게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직은 내가 바라는 모든 조건이 온전히 갖춰진 성취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선택하지도, 원하는대로 온전히 실현하지도,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거나 좋은 의미를 남기지도, 스스로 즐기거나 함께함의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일들도 사실은 ‘결과’과 아니라 ‘시도’ 이자 ‘과정’이라고 생각해보자. 내가 30-40년에 걸쳐 도달할 어떤 지점을 향해 17년쯤의 위치에서 걸어가고 있을 뿐이라면 아직 이룬 게 없는 느낌이 당연하다. 그리고 언젠가 어디서 누구와 어떤 형태의 일을 하며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될지는 아직 몰라도, “내가 결국 이 일을 하려고 그랬구나!”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깨달으며 무릎을 치는 완벽한 순간을. 


그렇게 생각하면 조급하거나 답답하기는 커녕,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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