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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Sep 02. 2021

번아웃? 뭔지 잘 알죠. 근데 저는 그거 아니거든요…

번아웃 신호를 똑바로 직시하기

‘힐링’, ‘욜로’, ‘번아웃’이라는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트렌드를 설명하는 용어로 지나치게 소비되다보니, 정작 내 상황을 말할 때 사용하기 꺼려지게 된다는 것. 특히, 일에 대해 어떠한 실력도 의욕도 보여주지 않던 사람들이 번아웃을 이유로 퇴사할 때마다, 저 닳고 닳은 용어에 대한 거부감은 더해갔다. 나를 번아웃이라는 흔한 용어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


내가 단어의 진부함 때문에 번아웃을 직시하기 어려웠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번아웃 그거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들만 걸리는 거 아니야?’  

‘먹고 살기도 바쁜데, 지금 번아웃이라는 말은 좀 사치스럽지 않냐?’

‘저 팀이 더 빡세게 일하는 것 같은데 내가 번아웃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번아웃의 충분한 자격을 의심하는 것이든, 그와 연관되는 부정적인 꼬리표가 싫어서든, 이런 마음의 소리들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아차리기 힘들게 만든다. 그러니까 어쩌면, 번아웃의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의외로 그것을 자각하는 단계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내가 겪었던 번아웃 증상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번아웃 증후군을 자가진단 할 수 있도록 국내에서도 안전관리공단에서 제공하는 17가지 항목의 체크리스트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심각하다고 느꼈던 번아웃의 대표적 증상들을 따로 정리해봤다.



01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 데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우선 일에 시동을 거는 게 어렵다. 반복적으로 해왔던 사소한 일을 시작하는 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때로 그 시동이라는 건 ‘파일 열기’만큼 단순한 동작이었는데, 마음 속에서는 이미 ‘이 파일을 열면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정 작업을 들어가야 할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떤 일이 나에게 가져다줄 스트레스의 크기를 왜곡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파일을 열어보는 것 자체를 며칠씩 미룰 때가 있었으니, 일을 끝내기까지의 시간이 하염없이 늘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한번 시동을 건 엔진도 수시로 꺼졌다. 아마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소진된 사람에게 더 이상 어떤 과제도 처리하지 말라고 몸이 주는 생존 본능적 신호였을 것이다. 과전류 상태에서 전기를 차단하기 위해 퓨즈를 끊어버리는 두꺼비집처럼.


02 

공감능력이 떨어지다 못해 감정이 사라진 기분이다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영상을 TV에서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계속되던 야근을 앞두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식당이었다. 분명히 눈 앞의 화면에는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펼쳐지는데, 그로 인한 감정은 식탁 위의 음식을 보며 일으켜지는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식욕이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재난으로 인한 비극에 조차도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내 주변의 슬픔에 그렇게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것, 다시 생각해도 무서운 일 아닌가? 아직도 그 때 당시 식당에서 멍하니 TV를 올려 보던 내가 떠오른다. 너는 완전한 번아웃 상태였구나… 생각한다. 물론 슬픔에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번아웃 시기에는 기쁜 일을 함께하는 일도 생각보다 에너지가 든다는 걸 알게 된다.


03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흐른다    

이게 객관적인 지표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관찰해보면 나 외에도 정말 자주 보이는 케이스이다. 사람이 우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번아웃은 우울감을 동반하기 때문인지 원인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눈물이 계속 흐른다. 이번에도 퇴사 3개월 전부터는 거의 매일 마스크를 적시며 하루를 보냈다. 누구로부터 모진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고 일의 성과가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길을 걷고 있다가도, 지하철을 타다가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눈물이 흘렀다.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시정지를 누르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못하고 계속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해야하는 현실 사이의 심리적 저항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멱살 잡으며 끌고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괴로움 같은 것. 그러니까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눈물이 계속된다면 그것 역시 번아웃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뚜렷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전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세 차례의 번아웃을 겪었다. 마지막 번아웃은 퇴사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이 글을 통해 번아웃의 원인이나 해결 방법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얘기할 능력도 없고요.) 다만 일상의 트랙에서 벗어나 있을 때 비로소 지난 번아웃의 신호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는 말을 하고 싶다.


최근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위태위태하게 지내고 있는지 눈에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지인들의 SNS에 힘들어 보이는 글이 자주 올라오길래 ‘많이 지쳤구나. 휴식이 필요해 보여’라는 댓글을 달면, 그 글을 쓴 사람은 그때서야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한 발 벗어나 있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는 번아웃의 증상들을, 당사자가 가장 마지막에 깨닫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지.


어찌됐든 나에게도 번아웃은 또 다시 찾아올 것이다. 마치 감기처럼. 몸과 마음의 기초 체력이 든든해질수록 좀 더 쉽게 피해갈 수 있겠지만, 내 힘을 이길 정도로 큰 외부 스트레스엔 결국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앞에서 말한 신호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차리고 빠르게 나를 구제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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