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코로나 끝나면 가족이랑 어디로 제일 여행가고 싶어?". 15년 전, 밀라노에서 인터밀란과 ac밀란이 축구경기를 하는 라이벌전 '밀란더비'에서 옆자리로 만나 아직까지 연을 이어온 동생이 갑자기 전화와 아무 인사도 없이 어딜가고 싶냐고 툭 묻는다.
"너 취했냐??ㅋㅋ백년만에 전화해서 왠 뜬금포야" 라고 받아 쳤더니 "그래!! 나 취했다!! 어쩔래?" 라며 받네 이 어린놈의 시끼가.
워낙 오랜만에 전화라 15년 전 그때로 돌아가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형, 나 너무 답답해" 라며 다 큰 시커먼 놈이 훌쩍 훌쩍. 들어보니 몇년 전 시작한 장사는 코로나가 찾아와 문을 닫게 됐고 그 정리한 돈으로 주식과 코인에 넣어놓고 밤낮으로 핸드폰만 보고 있다 보니 몸도 맘도 너무 망가져 버렸단다.
나름 노력도 많이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다 자부하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항상 걱정과 바쁨 속에서만 살고 있는 자신이 넘 초라해 보였단다. 그래서 한잔하며 자기인생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인지 생각하다 갑자기 나랑 함께했던 그 시간이 떠올랐단다. 대학교 1학년때 이탈리아에서 걱정없이 여행하고 축구장에서 미친듯이 소리도 질러보고,거나하니 취해서 옆자리 외국인들과 어깨동무하고 방방 뛰며 응원도 해보고. 날이 밝으면 테라스 카페에 나가 햇빛 받으며 세상 맛난 카푸치노로 하루를 시작하고 밤이 되면 게스트하우스 친구들과 유명한 성당 뒤에 와인한병 치즈한조각 사가 노상에서 먹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자버리던 자유롭던 그 시절. 세상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행복했던 그때와 세상 가장 답답하고 걱정많은 지금이 비교되, 그나마 자신의 그 시절 그 순간과 낭만을 가장 잃지 않고 사는게 형인 것 같아 위로 좀 받으려 전화했단다.
한참을 그냥 듣다가 막상 나도 잘 살아내고 있지 못한데다 내 내공으론 위로해 줄 말도 없어 나름 고민해서 꺼낸 한마디 "야, 우리 치킨먹을래?".
형은 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렇게 치킨을 처먹냐며 빵터져가지고는 막 다시 수다를 떨다가 이제 끊으며 "우리 코로나 끝나면, 이탈리아 가자. 꼭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