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광고대행사에 근무 중인 싱글녀.
스마트하며 활발한 그녀는 외모가 눈에 띄게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유쾌한 성격과 유머로 모임에서 항상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만나는 남자가 있냐고 질문하자 그녀는 이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왜 제가 맘에 들어 하는 남자는 저에게 관심이 없고
제가 관심이 없는 남자는 저에게 들이 댈까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한다.
“전 상남자 스타일 좋아해요.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어깨가 넓고 키도 큰 스타일이에요.
드럼 동호회에서 만났는데 경상도 남자라 말수가 없어서 그런지
더 듬직하고 딱 봐도 남성스럽거든요.
예전부터 이런 스타일에 금방 빠졌던 거 같아요”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에 대해 묻자 바로 표정이 차갑게 변한다.
“역삼동에 금융권 회사 다니는 일반 직장인인데 같은 동갑내기에요.
교회에서 만났는데 어찌나 들이대는지…”
그 남자를 만나 볼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여자.
“전혀. 네버. 발전 가능성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에요.
여자처럼 말도 엄청 많구요. 몸도 너무 말랐어요.
카톡을 엄청 보내는데 제가 일부러 단답형으로 보냈는데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는걸 보니
눈치가 없는 건지 뭔지…휴”
영상 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하는 36세 여성.
“제가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런지 좀 듬직하고 남자다운 남자를 좋아해요.
작년부터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딱 상남자에요.
구릿빛 까무잡잡한 피부에 덩치도 크고, 복싱이나 오토바이 타는 게 취미에요.
제가 딱히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복싱을 하거나 오토바이 타는 모습을 보면
남자답고 멋있더라구요. 그래서 취미생활은 서로 존중해주면서 각자 즐기는 편이에요”
용인의 한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일하는 31세 여성.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남자 선생님들은 전반적으로 뭐랄까 좀 섬세하고 예민해요.
이전 학교에서도 같이 일하던 선생님을 잠깐 만나본 적이 있는데,
남자다운 맛이 없더라구요.
전 남자가 쪼잔하거나 너무 꼬치꼬치 캐묻고 하는 스타일은 피곤하더라구요.
좀 남자다운 남자를 선호하는 편인데 제가 인간관계가 좀 좁은 편이라,
자연스럽게 외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요.
고민 끝에 집 근처 헬스장 연간권을 끊을려고 생각 중이에요.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분들 운동 좋아하시잖아요.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가로 가야죠.
서른 넘으니까 조바심이 생겨서 좀 적극적으로 나가 보려구요.”
지구라는 행성에 남자, 여자 두 타입의 생명체가 살다 보니
이 두 타입의 생명체는 이성에게 감정적으로 성적으로 동물적으로 짝을 짓고 싶어 한다.
(예외의 상황도 있으나 핵심에서 벗어나므로 거론하지 않겠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본능이라면
나와 다른 성(性), 이성에 대한 욕망은 가장 본질적인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이고 수만 개 수천 개의 취향이 존재하기도 하고,
연령대 별로 선호하는 기준이나 가치관의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만
여태껏 그래왔듯이 꽤 많은 다수의 남자는 여성스러운 여자에게,
그리고 대부분 여자는 남성스러운 남자에게 더 끌린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남자들의 세계. 그것은 왠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고 매혹적이었다.
남성적인 취향이나 외모, 말투 등에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신체적으로 여자가 가진 한계, 그로 인해 보호받는 느낌,
나와 다른 존재로서 느껴지는 이색적인호르몬과 느낌들.
이런 것들이 좋았던거 같다.
소위 상남자들과는 초반에 불 같은 사랑은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성에 대하여 가지는 본질적인 호기심과 설레임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대체불가다.
남자다운 남자.
결국 그들의 남성미에 미치지 못하는 지적, 정서적 상태 때문인지,
그 이질감이 독이 되어 절대 좁혀질 수 없는 차이점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는지,
그들과의 관계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이를 꽤 먹고 나서야 섬세하고 다정하면서
감성이 풍부한 남자들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동안 만났던 남자들을 아주 심플하게 이분화해서 굳이 평가를 해보자면,
전자보다는 후자와의 관계가 훨씬 편하고 윤택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면
본능적으로, 육체적인 기준으로 남성미는 아직도 거부하기 힘든 매혹이다.
상남자.
남자 중에 진짜 남자.
상남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가 상남자를 만나려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헬스장을 가거나 오토바이 또는
격투기 동호회라도 가입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진짜 남자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수염을 기르고 오토바이를 타며 가죽공예를 하는 최민수의 모습?
자기의 여자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멋있게 구하는 유시진 대위 같은 모습?
진짜 남자.
진짜 남자란 무엇일까.
한때 히트했던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폭력적인 말이
남자답다, 여자답다, 엄마답다 뭐 이런 말들이라고 하던데
시대에 흐름과 현황에 따라 남자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보편적인 기준의
의미로 사용을 하게 된 거라고 변명을 해본다 하더라도
남자답다라는 언어.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SNS에서 한 편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여자답게라는 제목의 영상은 위스퍼의 광고 캠페인으로 리얼 형태의 인터뷰 영상으로
여러 명의 성인남녀에게 ‘여자답게 행동해보라’고 권유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새침떼기처럼 뛰거나 내숭을 떨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몇 분 후에 아주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같은 요구를 했을 때
어린 아이들은 전혀 다르게 행동을 한다.
“여자답게 달려보라고 했을 때 어떤 의미로 들렸나요? 라는 질문에
어린 6~7살 정도 무렵의 여자 아이는 대답한다
“It means run fast as you can” (최대한 빨리 달리라는 뜻으로 들렸어요)
여자답게라는 말이 여성의 행동에 한계를 가져오듯이
어쩌면 우리가 말하고 요구하는 남자답게라는 말들도 그들에게 모욕을 주지는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남자, 상남자. 남자답다라는 것은
능력이 출중하여 경제력에서 오는 여유와 자신감이나
울끈불끈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근육을 가졌다거나
거칠고 위험한 모험과 액션을 즐긴다거나
상대가 공격했을 때 으르렁대며 함께 싸울만한 성향의 것들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돌파하는 저돌성,
정당하게 승부하고 결과에 대해 승복할 수 있는 스포츠맨십.
한 여자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순정,
내 여자만은 울리지 않고 지켜주겠다는 귀여운 책임감과 의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린 소년같이 장난을 치며 웃을 수 있는 순박함.
여자가 신체적 위치에서 물리적으로 남자보다 약하다는
단순한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존재를 물리적인 환경에서는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잔소리를 하고 센 척을 한다 해도
여유 있게 봐주는 속 깊은 자신감. 뭐 그런 류의 것인 것 같다.
우리가 여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느끼는 피로도처럼,
남자들 또한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 대해 발끈하여
서로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진정한 이성의 차이점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남자다운 남자’라는 의미는
오토바이를 타고 말수가 없는 무뚝뚝한 근육질의 남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동물이 가진 우위에 대한 배려와 매너를 가지고 서툴지만 사랑을 할 줄 아는
진짜 멋진 남자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면 한다.
레이스 치마를 입고 애교나 내숭을 떨며,
조신하게 행동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여자다움이 아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