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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n 17. 2019

예술이란 무엇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 블랙미러

*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시즌 1: 공주와 돼지>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공주가 납치되었다. 납치범은 공주를 풀어주는 대가로 총리와 돼지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고 방송할 것을 요구한다. 총리는 성관계를 하지 않고 공주를 구할 방법을 찾는다. 납치범이 인터넷에 접속한 흔적을 찾아 뒤쫓는다. 그러나 그것은 미끼였다. 납치범이 공주를 데리고 있을 것이라 추정했던 곳에는 의자에 마네킹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총리는 좌절한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참모들은 총리를 대신하여 돼지와 성관계를 할 배우를 고용하고, 컴퓨터 그래픽을 준비한다. 그리고 곧 납치범으로부터 '잘린 손가락'과 영상이 배송된다. 영상에서 납치범은 공주의 손가락을 자르는 듯하고,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민들은 분노한다. 총리가 정말로 관계를 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총리는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 그는 스튜디오로 가서 울부짖으며 돼지와 성관계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즐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경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납치범은 총리가 돼지와 성관계를 하기 30분 전에 이미 공주를 풀어주고 자살했다. 이유는 하나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총리는 정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내로부터 완전한 외면을 받는다.


"이게 무슨 예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납치범의 행위를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친구에게 장난을 치고는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장난이야." "재미로 한 거야." 이런 말들은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상황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든다. 긴장되고 초조한 상황에서 사소한 장난은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기분 좋은 장난을 잘 치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 지기도 한다.


그런데 심한 장난을 즐겨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 그는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장난의 정도가 심해 실제로 어떤 피해가 발생하거나, 기분에 상당한 손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는 "장난이야."라는 말을 한다. 그런 장난에 대해서는 이 말을 듣더라도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화를 내면 분위기를 망치거나 아주 진지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장난은 부적절하다. 누군가 장난으로 인해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다면 그 장난은 자제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장난으로 봐주기 어렵다.


'놀이'와 '예술'은 모두 장난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것들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 속에서 개별 사례마다 차별적 의미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벽에 낙서를 하면 '놀이'이고 앤디 워홀이 벽에 낙서를 하면 '예술'인 것이다. 흔히 예술과 놀이를 구별할 때 행위 주체의 내면적 동기와 개념 사이의 우열 관계를 논하고는 하는데 그런 말들은 다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개념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한 만족이다. 그것을 통한 지적 혹은 정서적 만족감만이 예술의 기능이고 목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과 놀이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구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행동은 물화된 목적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합리적인 농부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작물을 가지고 가장 효율적인 농사를 짓는다. 합리적인 건축업자는 수익성이 있는 위치에 가장 수익이 극대화될 수 있을 방향으로 설계도를 만들고 건물을 짓는다. 합리적인 영화 제작자는 시청 타깃을 정하고 마케팅 행위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나 물화된 목적성을 띤 행위가 존재하기에 반대로 예술은 고결해진다.


예술의 특성에 대해서는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명이 모두 다른 말을 하겠지만, 우선 이 글에서는 하나만 언급하였다. 물화된 목적성을 띄지 않는 행위 자체로서의 만족이다. 그 점에서 예술은 놀이나 장난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권위의 문제다.




그렇다면 <블랙미러 시즌 1: 공주와 돼지>의 예술은 어떤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납치범 당사자만 놓고 볼 때는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는 그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은 채 그 행위 자체를 위해 행동했고 행위를 마치고는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 행위 주체는 납치범에 국한되지 않는다. 적어도 돼지와 성관계를 한 총리도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그는 행위 자체를 위해 행동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돼지와 성관계를 했다. 이것은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람을 곤란한 상황에 빠트렸고, 특히 부부관계에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겼으므로 범죄다. 예술과 범죄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분 나쁜 장난은 장난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피해를 입게 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행위로 인해 비롯되는 불쾌감은 행위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을 차단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야말로 고결한 행동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삶보다 자신의 만족감을 우선에 둔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는 그런 방식에 대해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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