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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한 Jun 25. 2019

초연결 사회

넷플릭스 오리지널 : 블랙미러

*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시즌 5: 스미더린>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점차 사라져 비로소 초연결 사회다. 스마트폰을 들고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세계 각지의 이슈가 무엇인지 모두 알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손가락 움직임 몇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말도 못 하게 편리하다. 디지털 혁명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쉬지 않고 울려대는 알람, 퇴근 후에 하달된 업무 지시, 불편한 사람으로부터의 연락…. 때때로 초연결 사회는 우리가 편리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스미더린'에 인턴으로 입사한 그는 납치를 당한다. 납치범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가 인턴인 사실을 알고는 분노한다. 아마도 스미더린의 고위 간부를 납치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 눈치다. 납치범은 그를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려다 경찰의 추격을 받는다. 시골길을 지나다 납치범의 차량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이들과 마주치고, 도로를 이탈하여 멈춘다. 납치범은 인질에게 총을 겨누며 경찰의 접근을 저지한다.


납치범은 인턴을 협박한다. 스미더린의 대표에게 어떻게든 전화를 걸라며. 인턴은 대표를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납치범은 막무가내로 강요한다. 인턴은 콜센터에 전화를 걸고 자신을 관리하는 인사팀 직원과 통화에 성공한다. 사정을 말하니 직원은 영국 지사 사장에게 사실을 보고하고, 영국 지사 사장은 미국에 있는 본사의 총괄책임자에게 사실을 전한다. 총괄책임자는 대표에게 보고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망설인다. 인질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이런 일이 재발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 경찰은 인원을 증강한다. 저격수를 배치하여 위치를 잡았지만 자칫 인질이 다칠 우려가 있어서 섣불리 사격을 하지 못한다. 다가서지도 못하고 시간만 질질 끌고 있던 차에 FBI로부터 전화가 온다. FBI는 스미더린과 3자 통화를 제안하고, 경찰은 이에 응한다. 스미더린은 납치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FBI와 경찰은 그 정보를 알지 못했다. 경찰은 스미더린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납치범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납치범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 스미더린 대표와의 통화다. 스미더린 본사의 직원들은 산 꼭대기에서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대표를 찾아간다. 대표는 통유리 안에서 명상을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매우 평온해 보인다. 직원들은 사실을 보고하고 대표는 통화를 연결하라고 지시한다. 총괄책임자는 지시를 거부한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는 총괄책임자에게 화를 내고는 노트북을 꺼내 직접 통화를 시도한다. 이내 통화 연결에 성공한다.


납치범은 대표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여자친구를 태우고 운전하던 길에 스미더린의 알람이 와서 잠깐 확인하는 순간 사고가 났고, 여자친구가 죽었다고. 다음 업데이트에는 운전하는 도중에 알람이 울리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대표는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경찰은 납치범을 저격하는 데 성공한다.




초연결사회가 구축할 높은 상호연결성은 사람들이 더욱 긴밀히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공유하고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크라우드 슈밥, 다보스포럼(2016)


다보스포럼의 회장 크라우드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것이며 초연결사회가 구축될 것이라 선언했다. 벌써 3년이 지났고, 누구나 '초연결사회'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초연결사회'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힘겹게 이를 설명하려 하지만 이해가 잘 되지도 않는다. 실제로 초연결사회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런 종류의 의심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강하게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플라톤(BC427~BC347)이다. 플라톤은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로 이데아의 세계를 주장하였다.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의 세계는 보편이 존재하는 세계다. 보편이 무엇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준비했다. '의자'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의자'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쇠로 된 의자, 나무로 된 의자, 등받이가 있는 의자, 바퀴가 달린 의자…. 그러니까 실제로 보편적인 '의자'라는 것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플라톤은 '의자'의 보편 또한 이데아의 세계에만 존재할 것이라 말한다. 다른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보편 또한 이데아의 세계에만 존재한다.


플라톤과 클라우드 슈밥


그러고 보니 뭔가 닮은 것 같다. 이데아의 세계와 초연결사회. 현실의 물질세계와는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비슷하다. 실제로 그것을 주장한 인물들도 닮은 것 같다. 놀랍지 않은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초연결사회가 보편을 구현해냈다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의자'를 검색해보자. 여러 가지 의자가 나타날 것이다. 쇠로 된 의자, 나무로 된 의자, 등받이가 있는 의자, 바퀴가 달린 의자…. 심지어는 당신이 어떤 척추 질병을 앓고 있는지에 따라 의자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당신은 방금 의자의 보편을 말한 것과 다름없다.




이제 우리는 고대의 철학자가 주장한 세계를 구현하게 되었지만 그다지 기쁘지 않다. 그 이유는 초연결사회가 구현되는 원리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데아의 세계를 디지털로 구현해내게 되었을까?


다시 의자로 돌아와 보자. 포털사이트에 '의자'를 검색했다. 여러 가지 의자가 나온다. 작성자를 살펴보자.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누군가 사진을 올렸을 것이다. 사진이 아닌 게시물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초연결사회에서 보편은 개인들의 집합을 통해 구성되어 있다. 이때 개인은 개성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초연결사회에서의 하나의 점, 노드로 존재할 뿐이다. 몰가치적이고 전혀 기쁘지 않다. 노드에게는 더 이상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다.


<스미더린>의 납치범, 인턴, 경찰, FBI, 총괄책임자,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노드로 존재할 뿐이다. 생각해보자. 누가 납치범의 여자친구를 죽였나. 노드인가? 납치범인가? 혹은 노드로 이루어진 보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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